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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도 한 달란트입니다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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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달란트입니다 (마 25:14-30)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나 성공이 아닌 하나님 당신의 성공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번 주간 시편 23편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 가운데 한 부분이 제 마음에 깊게 다가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실패나 성공에 크게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그 분이 준비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분이 인도하시는 길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지금 가는 길이, 여러분의 일주일, 여러분 앞에 놓인 어떤 길,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분의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어떤 선택도 그 분 안에 있는 여러분을 절망하게 하거나 실패하게 하거나 하지 못 할 것입니다. 시편23편은 계속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믿음은 다윗의 믿음이었으며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해마다 겪어야 하는 나일 강의 범람, 그 대자연과의 싸움이 오히려 태양력과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을 발달하게 했습니다. 대자연의 벽 앞에 주저앉았다면 그들은 문명을 이루어 내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대자연과 싸웠고 그럼으로 그 힘든 과정이 결국 이집트에겐 가장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리에 대해서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도 그의 [역사의 연구]란 방대한 저서에서 ‘도전과 응전의 원리’ 로서 설명하지 않습니까? 인류사에 수많은 문명이 등장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명들 중에 잉카문명, 마야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문명, 인도문명, 이집트 문명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을 연구한 결과 토인비는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 같은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해 버렸지만,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도전을 받았던 문명 등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연 법칙’의 지배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부름에 대한 인간의 응답’ 이라는 ‘하나님의 법칙’ 아래서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 안에는 주인에게 달란트를 위임받은 세 명의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명의 종중에 한 사람은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남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려운 마음에 그것을 묻어두지요.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대로 한 달란트를 가지고와서 내 놓습니다. 

여러분!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 입니까? ‘왜 누구는 다섯 달란트 주고, 누구는 고작 한 달란트입니까?’ 이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누가 가장 많이 남겼느냐, 누가 얼마나 남겼느냐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무엇을 했고 얼마를 남겼고 거기에 관심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는 그 자리에 난 얼마를 남겼다고 자랑할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그 자리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 아마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모두 다 하나 같이 한 달란트를 받아들고 두려워서 땅에 파 묻어둔 그 종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몇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까? 다섯 달란트입니까? 아니면 두 달란트요? 전 한 달란트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청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청년들 중에 누가 자신을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누구일까... 다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20대의 자기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도 한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전하십시오! 부딪히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분의 꿈과 비전은 더 멀고 더 높으면서도 왜 가만히 있습니까? 일어나서 달려가십시오! 이루어 내십시오! 뭘 해야 할지도 알지요? 이게 맞을까를 너무 오래 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것은 다 맞는 것이 됩니다. 틀린 것이 아닐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 멋지게 응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할 때 까지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 고민할 시간이 있다면 도전하고 움직이십시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속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여러분 앞에 준비해 두셨는지는 지금 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의 얼마나 성공했느냐, 아니면 얼마나 죽을 쓰고 있느냐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전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서 용기 있게 도전하고, 여러분의 비전을 향해 젊음이라는 열정을 쏟아 붓는 모습을 통해 그 놀라운 미래, 그 희망의 세계를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9절의 말씀처럼 ‘있는 사람은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그 있는 남은 것마저도 빼앗기는 것’ 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남은 것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들이 써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두려움 없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가을입니다. 원서의 계절, 취업의 계절, 삶의 자리,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계절입니다. 그 안에 젖어들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더욱 용기 있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하나님 그 분 안에서 마음껏 여러분의 내일을 향해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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