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창세기 18:9-15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첨부 1


본문: 창세기 18:9-15
제목: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엘 케고르는 말하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이라는게 뭡니까? 절망은 소망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뭔가 해볼려고 해도 해 볼수가 없는게 바로 절망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당한 고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을 보세요..욥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과 마귀가 욥을 놓고 내기를 하는데 욥은 영문도 모른체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욥기 1장에 보면 이게 잘 나오는데 하루아침에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재산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구요...자녀들도 한순간에 다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가 몸에는 악창이 나서 기와로 벅벅 긁을 수 밖에 없는 처절한 모습이 된거에요.. 그렇다고 욥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외통수에 빠지고 만것입니다..이런게 바로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리앗을 때려죽인후 다윗은 국민영웅으로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왕의 사위도 되고 사람들의 재물도 엄청 많이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이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왕인 사울이 다윗이 잘되는것을 보고 질투를 해서 시도 때도 없이 다윗을 죽일려고 하는거에요..그래서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도망을 다니는데 심지어 살기 위해서 미친척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보세요...한때는 정말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있던 것을 다 잃어버렸는데 재산도 사라지고 그토록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도 다 자기 살겠다고 도망을 가고...다윗은 오도가도 못하고 아둘람 굴에까지 도망가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것입니다....사도 바울과 실라도 그랬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는데 내일이면 꼼짝없이 죽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 도와줄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나 잘되겠다고 그런것도 아니고 오직 복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게 고작 감옥에서 죽어야 하는거에요.... 자 이런 상황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희망이나 소망보다는 실망스런 현실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더 많이 처하게 됩니다.  도무지 길이 안보이고 앞이 안보이는거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현실을 한번 생각해봅시다...고린도전서 1:26절에 보니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할때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보세요..우리가운데 세상가운데 이름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어떤 사람들은 부모 잘 만나서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 충분한 재산을 물려 받았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뭔가 해 볼 수 있는 젊음이나 건강이 있어야 하는데 머리는 백발이고..뭔가 좀 해볼려고 해도 고뱅이가 쑤시고 버는 돈 보다 병원비가 더 들어가요... 정말 이러한 현실을 보면 그냥 콱 혀깨물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죠.... 자 이러한 절망스런 현실속에서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떤 사람이에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서 하나님께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자녀에 대한 약속을 받았는데 자녀를 많이 나서...하늘의 별처럼...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에요... 한마디로 하나님의 복은 다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자손이 번창하기는 커녕 겨우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하나 건진상태였습니다.  재산도 그래요...거할곳이 없어 이곳저곳 유랑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힘도 없어서 부인을 빼앗기기도 하고...살기 위해서 몸을 낮춰야만 하는 인생이었습니다....하나님 말씀대로라면 아브라함은 지금쯤 가나안땅에서 아들 딸 쑥쑥 낳아서 떵떵거리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았다는거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75세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게 25년이 지난 세월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거에요... 거기에다 이젠 기다리다 지쳐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린 상태였습니다.   
  이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된 해에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창세기 17:1-8절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당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뭔말이에요? 아브라함이 복을 받게 되고...여러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거에요...그래서 이름도 아브람에서 열방의 아비라고 하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보세요...이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만합니까? 아니면 도저히 믿지 못합니까?
 사람들은요 연약해서 믿을만해야 믿고 말이 되는 말을 해야 믿을려고 합니다...다시말해 사람들은 믿을만하지 못하면 믿지 않고...말이 안되면 안믿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믿음이란 믿을만해서 믿는게 아니라 도저히 믿지 못할거 같고 말이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없이 믿는게 진정한 믿음인것입니다...
 아부라함을 보세요...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을만 하지 못했습니다...왜요?  말이 안되니까?  아무리 아브라함이 생각해 봐도 이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17:17절입니다..“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주실려면 진작에 주셔야지...이젠 다 끝난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뭘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것이지요... 누가봐도 이건 말이 안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니까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할 수 있는것만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뭣하러 하나님으로 믿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 이심을 믿습니다...왜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표적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귀신을 내어 쫓으시며...죽은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니까 사람들이 ‘아...이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구원자 이시구나’ 하고 인정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생각은 인간적으로 합리적으론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것이고 되는 것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이게 누구의 생각이에요? 아브라함!!!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는것.... 자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과연 우리들은 합리적이고 극히 이성적인 내 생각을 믿을것인가? 아니면 말도 안되고 믿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누구의 생각을 더 의지해 왔습니까?  여러분들은 누굴 따르겠습니까?
 모세오경의 저자는 모세입니다...그런데 이것이 기록된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였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에요? 당시 세계최강인 앗수르를 멸망시킨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앗수르도 도저히 감당못할 태산같은 거대한 나라였는데..이런 나라를 바벨론이 멸망시킨거에요... 그렇다면 과연 이런 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연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70년이 되면 돌아오게 되리라....70년 후면 바벨론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온다는거에요....사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이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바벨론은 누가봐도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가진것도 없어요...그렇다고 남들처럼 배운것도 없어요...물려받은 재산도 없고....누가 날 도와줄만한 사람도 없어요...나이도 들어 이젠 일할 힘도 없고 기력도 없어요...그래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내 삶에 과연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가난이 부유함으로...한숨이 기쁨이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너는 40평 아파트에서 돈에 부족함이 없이 평안하게 살아갈꺼야....네 자녀들이 잘되서...한달에 용돈 100만원씩 주게 될꺼야....” 믿어지십니까?
 왜 안믿어어져요?  현실이 안그러니까....현실이 암담하고..현실이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까 믿을래야 믿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요...하나님은 오늘 이시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시편 128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아멘....
 18세기 미국에 죠나단 에드워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운것도 별로 없고..가진것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심으로 믿었습니다...비록 그는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가문가운데 복을 주셨습니다... 200년이 흐른 뒤 죠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을 조사해보니까 엄청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미국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대학총장 13명, 국회의원 3명, 시장 2명, 판사 64명, 교수 100명, 변호사 80명, 목회자 300명....  할렐루야...
 아브라함과 사라의 현실을 보세요...미래가 불확실한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사라를 통해 이루어 질래야 질수가 없는 절망스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21: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녀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남편이 아브라함도 늙었고..사라 자신도 늙었어요...더군다나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생리까지 끊긴 상황이었습니다..절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시니까 결국은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후사를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키신거에요...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별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걸 못믿어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던 사람들입니다....또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그걸 못 믿어서 속으로 비웃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왜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땅으로 가게 됩니다....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세요...골수에까지 원망과 불평이 가득찬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 근성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습니다.  뭔 문제만 일어나면 어떻게 했습니까?  “애굽으로 돌아가자..왜 우릴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죽게 하느냐....언제 우리가 가나안 땅에 간다고 했느냐....” 심지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면서도 툭하면 애굽을 의지하고 애굽으로 돌아갈 궁리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축복이나 약속의 주인공이 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 주시겠다는거에요...왜요? 그게 약속이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에요...우리가 사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뭔가가 있나요? 여러분들은 몰라도 저는 복받을 만한 자격이나 구원받을 만한 모습도 없어요....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의 주인공이 되고 구원받는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것은 오직 하나...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말씀을 듣고 읽을때, 마음에 확신이 되고 믿어지게 되는 말씀이 있으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인정하세요...그리고 그 말씀붙잡고 기도하세요....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 이 부부의 현실을 봅시다.  11절에 보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사라는 속으로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왜요?말이 안되니까...!!!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입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기한이 이를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전까지 이들은 자녀에 대해서는 절망한 상태였습니다.  그게 당연한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한번 도전한것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사실 이게 쉬운게 아니었습니다.   보세요..생리가 끊긴 상태에요....더군다나 아브라함은 늙어서...부부생활이 낙도, 즐거움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니까 이런말이 있더라구요...20대는 잘 때 남자가 여자에게 발베게를 해준다고 합니다...30대는 서로 마주보면서 자고...40대는 곧바로...그리고 50대는 등돌리고...60대는 딴방에서...그리고 70대는 서로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고 합니다...그런데요...90대에요....??뭔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땐 네몸이 내몸이고 내몸이 네몸인 상태가 됩니다...느낌이 있어야 합방이지...즐거움이 없는거에요....그런데 보세요...아들이 태어났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뭔말입니까? 합방을 했다? 안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인것입니다....안되는거 알아요...소망도 없고...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니까....말이 안되도 순종했던 것입니다....그리고 그랬더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이 90에 입덧을 하는 사라를 생각해 보세요...또 100세에 입덧하는 사라를 수발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세요....그냥 웃음이 나오는것입니다... 그래요...하나님은 절망의 현실속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기쁨의 웃음을 선물로 주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있다는 것이 바로 희망이고 소망입니다.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거에요....달리기를 하면 앞선 사람들이 있고 뒤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앞서겠습니까? 힘도 있고 건강하고 잘 달려본 사람들.....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들은 힘도 없고...건강도 약하고...뛰어본 경험도 없고...그래서 뒤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길...“인생 참 더럽다...난 왜이리 안되는걸까...”  그런데 갑자기 상을 주는 사람이 한마디를 하는거에요....‘뒤를 돌아 선착순’...그 순간 일등이 꼴찌되고 꼴찌가 일등되는 것입니다....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줄로 믿습니다...
 지금 뭔가 일이 안되고 보이는 현실이 캄캄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면....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미등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아브라함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세요,,,,“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