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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6) : 십자가를 진 시몬 (눅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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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님을 만난 사람들(6) : 십자가를 진 시몬 (눅 23:26)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의사인 박경철씨가 의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실화를 써 놓은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지만 참으로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산기슭에서 할머니와 며느리가 밭농사 일을 하고 살고 아들은 트럭으로 농수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며 살았답니다. 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외아들을 기르면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치매가 있어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할머니를 방에 혼자 계시게 하고 문을 잠가 놓고 일을 나갔답니다. 주로 밤에만 치매 증세가 심했답니다. 어느 날 며느리는 간난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시장에 갔다왔답니다. 할머니도 늦게 본 손자인지라 애지중지 하셨고 그들 부부도 아이가 유일한 행복이었답니다. 2시간 동안 시장을 보고 왔는데 어머니가 유난히 장보고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반겼답니다. “수고 했다. 배고픈데 어서 밥 먹자, 너 오면 먹으려고 내가 곰국을 끓여 놨다.” 

며느리는 곰국을 끓여 놨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갸우뚱했답니다. 부엌에 가보니 고기 끓는 냄새가 진동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솥뚜껑을 열어본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답니다. 그 뜨거운 솥에는 간난 아이가 들어 있었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난 가정의 삶은 그 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평생 동안 이 아픔을 어떻게 견디며 살겠습니까? 또 그 책에는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진우씨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미감아 출신이라고 합니다. 나병 환자의 자녀인데 부모는 나병인데 자녀는 나병이 아닌 아이들을 말합니다. 나병환자 수용소에서 태어났는데 특별관리를 받으며 성장하였지만 문둥이 아들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자랐답니다. 이런 십자가 지는 것 쉽지 않을 것입니다. 10년 동안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며 돈을 모았답니다. 오직 소원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서였답니다. 연애를 하여 자매를 코가 무너져 내린 부모님 앞에 데리고 갔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그것을 보고 결혼하였답니다. 그리고 풍산 들판에 들어와 산비탈에 논을 사고 아담한 집을 수용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런 십자가 지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만남을 통해 나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십자가가 다가 올 수가 있습니다. 결혼하였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자식을 낳고 사는데 어느 날 자식이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는데 어느 날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건강의 십자가, 경제의 십자가, 인간관계의 십자가가 어느 날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나타나는 현상은 대부분 4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도피 형입니다.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살함으로 도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떠남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살하면 영원히 자신은 그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자신과 관계된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을 져 줍니다. 상황을 떠나버리면 물리적으로는 짐을 던져 버릴 수 있지만 심리적인 짐은 평생 짊어져야 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둘째는 무관 형입니다. 아무런 상관을 갖지 않고 나만의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대로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의무 형입니다. 아내이기 때문에, 며느리이기 때문에, 남편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기쁨도 없고, 기대도 없지만 죽지 못해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넷째는 십자가 형입니다. 기대형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나의 십자가로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해쳐나가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급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떤 십자가 일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의 삶이란 이 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평가 받고 상급 받을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 10:38)”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우리 교회 집사님들 중에는 아프신 시어머니를 집에서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분들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이 상급 주실 줄 믿습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언젠가는 눈물 다 씻어 주시고 상급 주실 날이 옵니다. 

우리 이 장로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치매에 걸렸답니다. 형제들이 있는데 형제들에게 어머님을 모실 것이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다 모시지 않는다고 해서 “나에게 축복받을 기회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기쁨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온 구레네 시몬을 보십시오.

시몬은 예수님을 언제 만났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갈 때입니다. 그들은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 위해 끌고 가는 로마 군입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던 마지막 길을 우리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혹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 끌려가 심문을 당하였습니다. 로마 군인들로부터 채찍을 맞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사용한 채찍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끈에 납덩이를 매달거나 날카로운 뼈나 못을 박아 만든 것이었답니다. 한번 칠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혈관이 터지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유대 율법에서는 40대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로마인은 힘이 있을 때까지 때렸답니다. 

이러한 매질은 십자가 처형에 앞서 죄수의 힘을 빼기 위해서 시행하였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어떤 때는 매질만으로 사람이 죽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이었겠습니까? 몸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왕권을 상징하는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 고통을 주고 조롱하였습니다. 가시가 머리를 찌르는 고통을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갔습니다. 탈진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의 출신지역은 어디입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 지방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는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당시 로마 다음으로 제 2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와 그 인근에 위치한 구레네에는 많은 다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그래도 연고가 있어야 동정을 하고 십자가도 지어주는 것인데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이분이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이었다면 유월절을 당하여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십자가 행렬을 보았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죄수가 형장까지 가는 도중 지쳐 쓰러져 일러나지 못하자, 구경꾼들 틈에 끼어 그도 그 신기한 행렬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이 때 한 로마 군인이 그를 잡아다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마27:32)”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막15:21) 자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성경 세 곳에서 그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그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당하다고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이런 짐스런 예수님을 만났냐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런 사람 만나 혹 하나를 더 붙였느냐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시어머니 만나 수모를 당하냐고 도망가는 아내와는 달랐습니다. 왜 이런 장애아를 주어 평생 고통스럽게 사느냐고 도피하는 부모와는 달랐습니다. 

왜 이런 교회를 만나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느냐고 부담없는 교회로 도피하는 교인과는 달랐습니다. 왜 이런 직장을 만나 혼자 야근까지 하고 월급도 적느냐고 떠나는 직원과는 달랐습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십자가를 왜 지게 하냐고 의문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도망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회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들을 사랑했던 스승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처음 보는 자신이 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떡으로 배부름을 당한 사람도, 문둥병을 고침받은 사람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도, 갖가지 질병에서 고침받은 사람들도 그곳에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조롱과 핍박을 받으며 걸어갈 때 다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은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4)”라고 말씀하는데 오늘 이런 짧은 한 줄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몬을 복음서 기록자들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복음서를 처음 읽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당할 때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 때문에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형을 당하였습니다. 짐승의 밥이 되어야 했습니다. 자식들이 눈앞에서 화형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고통과 고난이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너희들도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많은 사람이 찾는 품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 비법을 소개하는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신뢰할 만한 상품인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적당히 학위를 사 붙이고, 자신이 거느리는 직원을 시켜 책을 쓰게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여 자신의 업적을 포장하고, 돈을 주고 기독교 언론 매체에 이름을 내어 자신을 좋은 상품이라고 판매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를 상품화하여 버스에 광고판을 붙여 선전하고 있고 각종 좋은 종교 상품을 만들어 성도 마케팅에 나서는 교회를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팔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처럼 십자가는 단지 상품에 불과하다고 숨김없이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 상품화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독교는 타락해 가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어떤 교수가 목거리로 십자가를 차고 다니는 한 여학생에게 “십자가는 앞에 차고 다니는 장식품이 아니라 뒤에 짊어지고 가는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가끔 뛰면 뒤로 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상품이 아닙니다. 내가 진리로 생명으로, 길로, 복음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 신문에서 거룩한 부담,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가끔 나옵니다. 

와병 중인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11년 동안 노모의 수족이 되어준 47세 여성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2년 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결혼을 포기하고 노점상을 하며 틈틈이 들어와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주고 대. 소변을 받아낸다고 합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어머니를 생각하며 짬이 날 때면 이웃 노인들의 집을 찾아가 청소를 해 주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 주는 등 자신의 부모처럼 섬기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전신 마비가 된 아버지를 4년째 병수발하는 한 대학생의 거룩한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택시 운전기사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눈만 뜰 수 있을 뿐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식물인간이 되자 하루도 빼지 않고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밥을 먹여주고 몸을 씻어주었으며 대. 소변은 받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이런 부담이 당연한데도 크게 보이는 것은 오늘 현실이 혈연의 부담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억지로 십자가를 진 그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겠습니까?시몬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한 번 나옵니다. 그에 대하여 마가복음에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 15:21)”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루포에 대하여 성경은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롬 16:13)”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로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기록된 시점으로부터 약 30년 전 십자가 행렬 현장에 있다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신 시몬의 아내가 바울의 영적 어머니라고 언급할 정도로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루포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택하심을 입은"하는 말은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것 뿐 아니라 "탁월할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구레네 시몬을 가리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불리워질 만큼 초대교회에서 유명한 신자가 이미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했을 것이고 그 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가족에게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아프리카를 복음화 시키는 씨앗이 되었을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내 인생에 주어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 인생에 복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가정의 십자가를 지면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자녀의 십자가를 지게 되면 자녀들이 미래가 밝아집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교회의 십자가를 지게 되면 교회가 부흥하고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억지로라도 내가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지면 민족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모세가 십자가를 짊어지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룻이 가정의 십자가를 짊어지자 그 가정에서 다윗이 나오고 메시아가 탄생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십자가를 짊어지자 민족이 구원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시몬은 유월절 때 예루살렘에 갔다 예수님을 만나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다 은혜를 받아 자식도 아내도 구원받게 만들고 온 가족이 예수 믿는 모범적인 가정으로 변하고 존경받는 가정이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해영 선교사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척추 장애인으로 전국장애인기능대회 기계편물 금메달을 따고 세계장애인기능대회 기계편물 금메달· 철탑산업훈장 수상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사람으로 미국 나약대학교 졸업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분입니다. 지극히 가난한 집에서 2남 3년의 맏으로 태어났답니다.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척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을 낳자 친척들이 미역을 사가지고 가자 할아버지가 '딸인데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모두 혼을 냈다고 합니다. 그 때 자신의 아버지가 술을 먹고 왔는데, 홧김에 아이를 밀쳐내어 꼽추가 되어 버렸답니다.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쓸데없이 태어난 가시나'라고 말했고 키는 자라지 않아 134㎝에 불과했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생 네 명의 치다꺼리하고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해야만 했답니다. 너무 가난하여 준비물을 마련하지 못하고 육성회비를 내는 날은 아예 학교에 갈 수 없었답니다. 엄마의 학대를 받으며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어머니를 피해 월급 3만원 받고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무료 직업훈련원에서 양재 편물을 배워 기계편물 3급 자격증을 땄다고 합니다. 학원에서 최영숙 선생님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답니다. 극한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상처가 주님을 통해 치유가 된 것입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비전이 달라진 것입니다. 경기도 용인시의 편물 하도급공장에서 일을 할 때 교회에 나갔는데 척추 장애인이라 매일 허리통증을 앓고 있었지만 새벽기도, 금요철야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답니다. 그 때 사모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챙겨 주었고 그 교회를 떠나던 날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답니다. 

"주님, 이 딸이 이제 이곳을 떠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두 손으로 만든 옷이 세계 최고의 옷이 되게 해 주시고, 이 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돕게 해주옵소서. 또한 해영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자신의 비전이 되어 세계장애인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가서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14년 동안 편물을 가르치며 선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질병과 가난, 전쟁과 기아와 무지 속에 사는 그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고 척추의 통증이 살아졌고 다리가 정상이 된 기적을 체험받았다고 합니다. 가정 식구들이 다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하여 변하였다고 합니다. 믿는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두 동생이 선교사가 되었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무학에, 우울증, 맏딸 장애인, 남편자살, 청과물 시장 일용 노동자로 사는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자녀 다섯 중 세명 선교사 둔 어머니가 되었고 국민훈장 수상인 맏딸을 둔 어머니, 꼽추로 미국 유명 대학 컬럼비아대원 석사가 된 딸을 둔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만나 진정 구주로 영접하면 이렇게 가정과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장 5절) 

오늘도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누구에게나 인생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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