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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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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보내노라 (요 20:19-23)


1866년 8월,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선교사는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통역관의 자격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그는 가끔 뭍에 내려 조선인들에게 성경을 건네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셔먼호가 대동강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2일, 우려했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군관들은 배가 모래톱에 걸려 꼼짝을 못하자마자 솔가지와 유황을 던져 불을 질렀습니다. 불길에 휩싸이자 배에 탔던 선원들이 헤엄쳐 나오기 시작합니다. 군관들은 모조리 그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한 아름 가지고 나온 토마스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朴春權)에게 무릎을 꿇고 성경책을 받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받지 않자 모래사장에 머리를 대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주여, 조선 땅에 복음을 편만케 하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시킨 후에 천국에 가려 했으나 이제 주님의 품으로 가려나 봅니다. 그러나 주님, 성경만큼은 이들에게 전달하게 하옵소서. 지금은 저를 죽이려고 하오나 성경을 받고 돌아가 예수를 믿게 하시고 조선 땅에 부흥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게 하옵소서. 주여, 간절히 부탁합니다. 

저가 성경을 받아 구원의 복음을 읽게 하옵소서.” 박춘권은 기도를 드리고 난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베었습니다. 이렇게 만26살의 젊은 선교사는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교는 한국교회 부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박춘권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죽어가면서 까지 나에게 건네주려 했을까?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길래 나에게 주려 했던 것인가?” 그는 현장에서 성경을 가지고 돌아와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영주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을 조카 이영태에게 주어 주님을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이영태는 평양 숭실대학을 졸업한 후 한글성경의 3분의 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결국 토마스의 순교는 교회 부흥의 불길을 만드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토마스 선교사로 하여금 목숨을 걸만큼 열정을 갖게 하였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명자를 부르실 때마다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부르고 이 백성에게 보내노라.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나의 복음을 전하라.”

본문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문을 안에서 잠그고 있기에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들어와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예수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또 부활하신 몸이 새 몸이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는 그의 사심을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명령을 주셨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기의 보내심은 선교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본래 선교를 의미하는 미션(mission)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라틴어 ‘missio’에서 온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바로 나를 보내셨기에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상황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머물게 되는 곳이 어디든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심을 전해야 합니다.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결코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나를 보내십니까?
 
첫째로 평강을 전하려

솔로몬(Solomon) 왕이 현자(賢者)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무엇인가?” 현자 호마가 말합니다. “부귀입니다” 솔로몬이 다시 묻습니다. “왜 부귀가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하는가?” 호마가 대답하길 “부귀란 견고한 성과 같아 마음이 든든해질 뿐 아니라 어떤 힘이라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지략가 아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백발의 아쉬가 대답합니다. “저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 지혜라고 생각하는가?” 솔로몬이 묻자 아쉬는 대답합니다. “지혜는 선한 길로 인도하며 영혼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혜를 가진 자는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랍비 피쉘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피쉘은 느린 말로 입을 열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덕입니다. 덕이 많으면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말을 듣고 솔로몬은 한숨을 내 쉽니다. 현자들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왕께서는 큰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솔로몬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평강이라고 생각하노라” 의외의 대답을 들은 현자들이 묻습니다. “왜 평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솔로몬은 주변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합니다. “많이 가지면 무엇 하겠는가? 궁궐에 산들 무슨 낙이 있겠느냐? 걱정과 근심이 있으면 다 소용이 없지 않는가? 지혜가 많으면 무엇하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깜박깜박 잊는 것을...덕은 또 무슨 유익이 있는가? 때로는 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우선 마음이 편해야 되지 않겠는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최고의 학문을 배웠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중에 가장 큰 복은 평강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신 첫 마디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샬롬 알레헴’으로서 유대의 인사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하신 말은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사실 예수를 부인하거나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은 살아나신 예수를 대면하는 일이 죄책감과 질책 때문에 마음이 편할 리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예수이시기에 먼저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두려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가운데 반신반의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확인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됨을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거듭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누리는 현재의 기쁨이 헛된 기쁨, 근거 없는 기쁨,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기쁨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주시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이 되어야 함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근원인 평강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을 전하려

미국의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은 1924년 10월 1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 플레인즈에서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66년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여 실망하고 있을 때 여동생 루드와 함께 수마일 떨어진 웹스트로 차를 몰고 가던 길이었습니다. 동생이 몇 년 전 부흥집회에서 체험한 뜨거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차를 세우고 “나는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없니? 네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나도 가지고 싶어!”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묻습니다. “오빠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아들일 결심을 하기로 하셨나요?” “그렇다”라고 대답하자 두 사람이 함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후 카터는 대통령이 되었어도 오직 자신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여 각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보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다시 사신 예수께서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불안해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믿음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환경을 뛰어 넘지 못합니다. 죄와 어두움의 지배를 받아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내쉰 숨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문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문 밖의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상황과 환경을 바꾸는 시작이 되어 결국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도록 이끄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전하라고 우리를 보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죄사함을 전하려

11세기의 성자 제롬(Eusebius Hieronymus)이 베들레헴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롬은 기뻐서 예수께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주님께 무슨 선물을 드릴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다 내 것인데 네가 무슨 선물을 내게 주겠느냐?” 제롬이 말했습니다. “이 성경을 다 번역해서 그것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나에게 선물을 주겠느냐? 그러면 한 가지만 다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죄와 고통을 다 내게 다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사함 받았고 서로 용서하며 죄사함을 주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는 우리에게 사람을 정죄하고 용서할 권한이 주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죄의 용서와 자유를 선포하는 한편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를 것이기에 죄사함을 전할 사명이 분명히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두 종류의 크리스챤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Worldly Christian(세속적 신자)와 World Class Christian(세계적 신자) 입니다. 세속적 신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로서 구원은 받았으나 자기중심적입니다. 은혜 받고 복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기도는 본인의 필요, 축복,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반대로 세계적 크리스천들은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았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임무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흥분합니다. 열정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염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항상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부디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상으로 우리를 보내시는 이유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평강을 전하라고, 성령을 전하라고, 사죄함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귀한 사명 주셨음을 믿고 잘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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