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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 (왕상 2:36-46) -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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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첫 번째 재앙은 한국교회가 일제의 기독교말살정책 하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것입니다<소화 13년(1938년) 9월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한국교회 두 번째 재앙은 일본의 비호아래 성장한 조선신학원을 남부총회에서 그이름을 조선신학교로 개칭하여 남부총회 직영신학교로 가결한 일입니다(1946년 6월11일 조선예수교장로회남부총회, 승동교회). 

이 두 사건은 한국교회의 실패한 역사입니다. 한국교회 세 번째 재앙 W.C.C.운동을 피하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영적 떼죽음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용납하면 한국교회는 자멸합니다. 시므이는 세 번째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한국교회 세 번째 실패한 역사는,

Ⅲ.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 교회협의회) 제10차 한국총회를 부산에 유치한 일입니다. 

W.C.C. 제10차 한국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성명서가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2009년 9월 29일자 조선일보에 본교단(예장고려)에서 발표하였습니다. 

2009년 10월 12일 각 교단 총회가 끝난 후 서울 독산동 노보텔에서 합동, 합신, 고려 교단 대표들(합동 홍재철 목사, 강태구 목사, 김응선 목사, 남태섭 목사, 합신 박종언 목사, 고신 임종수 목사(위임), 고려 홍록두 목사, 강구원 목사)의 첫 연합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후 공식, 비공식적인 모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W.C.C.는 한국교회사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W.C.C.는 1959년의 한국장로교회 분열(합동과 통합)을 야기한 주범입니다. 이 단체가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50년대였고, 당시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말로 소개되었습니다. 
1950년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조국의 산하는 초토화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도움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국민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하고 가련하였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당들은 파괴되었고, 전후 성도들은 잿더미에서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습니다. W.C.C.(세계교회협의회)는 힘겹게 일어나는 한국교회를 돕고자 이 땅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각 교파나 교단이 믿는 신앙을 그대로 존중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돕고 협력하는 일에 하나가 되는 운동이 에큐메니칼 운동입니다. 

무엇을 믿든지 어떻게 믿든지 하나가 되자는 운동이 아무런 비판 없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이것이 함정이었습니다. 
장로교든 감리교든 성결교든 혹은 침례교든 구세군이든 각자의 신앙과 신학에 따라 믿고 오직 서로 돕고 협력하는데 하나가 되자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2절에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한 말씀은 하나 되는 운동에 공헌한 성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 에큐메니칼(범교회운동) 단체가 신앙적 차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한국교회를 돕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포장된 W.C.C.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W.C.C.와 합류한 세계선교협의회(IMC)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타종교에 대하여 긍정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선교사들 가운데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진화론을 수용하였고,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신성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고 부활을 부인하였습니다. 

그 선교사들 가운데는 무신론자들, 구소련권 중심의 공산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선교는 복음전파의 필요성을 약화시켰습니다.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막강한 재력의 힘 앞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W.C.C.가 무엇인가를 간파하고 있는 이상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W.C.C.에 대한 찬반논쟁은 한국교회를 커다란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당시 W.C.C.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그 분열의 과정은 한국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W.C.C.를 찬성 혹은 반대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차 성도들도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W.C.C.운동으로 인해 신앙과 신학의 대립으로 각을 세웠습니다. 

결국 이러한 대립은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성도들 간의 대립으로 교회의 분열로 첨예화되었습니다. 수많은 강단 위에서 교인들 간에 육탄전이 벌어지는 아수라장이 전개되었습니다. 신학교가 나누어지고 교단이 나누어지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W.C.C.로 인한 분열의 양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대거 등장하였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이 대부분 W.C.C.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더욱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릴 계획입니다. W.C.C.의 입장에 서 있는 일부 한국교회가 종교올림픽 운운하면서 이 총회를 유치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이 대회를 지켜보는 위험을 안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에서 재정을 뒷받침하고 부산 지자체에서 협력한다고 합니다. 이 대회가 마치 세계교회의 축제인양 치러질 모양입니다. 

W.C.C. 부산총회 유치는 또 한 번의 실패한 기독교역사로 기록되는데서 끝난다고 하면 그래도 불행 중에 다행이겠습니다. 
그러나 W.C.C. 총회를 한국교회가 비판 없이 유치하고 나면 한국교회는 죽는 것입니다. 

1) W.C.C. 부산 총회 유치의도입니다.
성경적 신앙과 신학(복음주의 개혁주의)를 버리고 W.C.C.가 주장하는 신학 곧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혼합주의를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2) W.C.C.의 신학입니다.

(1)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문화, 종교, 인종, 지역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모든 종교인들을 다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만인보편구원 사상에 기초해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W.C.C.안에 소수 종교인들의 주장이 아니라 이 단체가 몇 가지 문서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신학입니다.

(2) W.C.C.는 기독교 진리의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하는 종교대화주의를 표방합니다. 
타종교간의 대화에서 새롭게 참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종교의 진리를 손해보고 양보할 자세로 하라고 합니다. 종교 간의 대화는 일방통로가 아니라 쌍방통로라고 합니다.

(3) W.C.C.는 종교혼합주의를 추구합니다. 
기독교공동체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을 아우르고 하나로 묶으려고 합니다.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과 "거대 에큐메니즘"(macro-ecumenism)을 거론하고 이를 추구합니다.

(4) W.C.C.는 용공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민족주의 인민해방운동과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게 거액을 제공했습니다. 쿠바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를 들고 인종차별 정책을 펼치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W.C.C.의 용공정책은 폭력을 용인한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5)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표방합니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에게 이신칭의의 구원론 중심의 개종전도 활동을 금합니다. 우상숭배, 성인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가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다. 
선점先占한 이들 교회와 협조하여 인간화, 해방투쟁, 피조물들과 상생을 추구하는 등 이른바 "하나님의 선교"만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를 도외시합니다. 인민해방, 구조악 철폐, 빈자 구제를 선교와 복음전도의 지상至上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6) W.C.C.는 로마가톨릭주의화 되었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 일치를 도모하려고 종교개혁 신앙의 정신을 버렸습니다. 가시적 일치의 장애물인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전통론"이라는 모호한 이론을 대체하여 로마가톨릭교회 등 모든 기독교회와 그 전통이 유효하다고 봅니다. 
W.C.C. 신학은 "오직 의견수렴"의 원리에 따릅니다. 로마교 황제는 개신교를 기독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7) W.C.C.는 교회의 진정한 본질(essence)에 대항하는 신앙고백적 일치는 도외시하고 가시적 교회일치에 투신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성경적 신앙고백적 에큐메니즘을 사실상 무시합니다. 이러한 구도에서 이 단체는 실제로 하나의 세계적 교회(Una Sancta: One Holy)건설을 추구해 왔습니다.

(8)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역사서와 문학서와 같은 인간의 책으로 여깁니다. 다만 하나님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무엇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책이 권위를 지닌다고 합니다. 
성경이 무오無誤하다거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신언神言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 바르트주의 성경관, 급진주의 성경관을 묶어 자신의 것으로 표방하고 있습니다.

(9) W.C.C.는 인도주의 활동, 인간화, 혁명투쟁, 해방운동등 사회구원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기독인을 순교자로 추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신앙고백 차원의 순교에는 무관심합니다. W.C.C.의 순교자 정의는 시류時流에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이론에 따르면 선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선교의 초점은 하나님이 세상을 돌보는 활동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회운동, 인권운동 사회보장제를 위한 후생이 W.C.C. 주창자들이 성취해야 될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구원 이라는 성경적 신앙은 W.C.C.운동의 장애물입니다.
W.C.C.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은 저들의 사고에 없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름의 사회구원지상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10) W.C.C.는 신앙고백형식주의를 취합니다.
한 입으로는 예수를 주(Lord)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W.C.C.는 니케아-콘스티노플신조를 회원교회들이 고백해야 할 신조, 곧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조를 고백문으로 천거하던 그 해(1990)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표방문서를 발표했습니다. 

"성경"을 언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 진리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W.C.C.의 신학을 추종하던 유럽, 북미, 대양주 교회들은 퇴락했고, 조종을 울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W.C.C.는 복음주의자들을 앞세워 진리를 위협하는 "다른 복음"에 교회의 경계심, 민감성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 자유주의(Latitudinariansm)를 조장합니다. W.C.C.에 들러리 서는 복음주의자들은 이단보다 더 위해危害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시므이는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최소한 두 번 이상 용서받았지만 결국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과 마지막으로 약속한 예루살렘에서 이른바 금족령을 지켜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하면서 교회 부흥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W.C.C.를 용납하면 한국교회가 죽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W.C.C. 운동은 하나님과의 약속 밖으로 나가버리는 운동입니다.

성경은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후 6:14-16)고 말합니다. 
W.C.C.는 여러 면에서 사탄적 적그리스도 운동이며, 그러한 운동에 가맹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비진리와 타협하는 일입니다. 

W.C.C.는 다원주의적 신관神觀으로 여호와 절대 유일신관에 도전합니다(신 6:4). W.C.C.는 죄 사함을 위한 예수의 유일한 대속이 없는 인본주의적 구원관(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인권적 해방)을 주장함으로써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절대유일의 구원관을 도전하고 있습니다(요 14:6; 행 4:12). 

W.C.C.는 각 종교들에 나타난 여러 유類의 정령들과, 성경이 말하는 초자연적 성령의 인격성을 동일시하므로 참 진리의 영(요 16:13)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W.C.C.는 예수께서 명한 위대한 세계선교의 지상명령(마 28:19-20; 행 1:8)을 타종교와의 문화적 충돌로 착각하고, 선교무용론에서 선교사 철수령을 주장함으로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복음선교운동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W.C.C.는 절대구원계시로서의 성경 영감(딤후 3:16)을 부인하고, 단순한 인간의 역사문서와 같은 책이라고 함으로써 진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W.C.C.운동을 사탄적 적그리스도 운동으로 정죄하기에 충분합니다. W.C.C.운동은 적그리스도 영의 운동인 것입니다. 말세에 이러한 사탄적 적그리스도 운동이 일어날 것은 이미 성경에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큰 붉은 용(계 12:3)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무신론 권력; 계 13:1-10),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 곧 양의 옷을 입고 용의 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계 13:11-16)입니다. 

이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귀신의 영(계 16:14)으로서, 온 세상 열왕들(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붉은 포도주에 취하게 하여 하나님의 통일제국을 만들어 어린 양을 대적하는 것입니다(계 17:3-18; 16:14).
시므이는 죽음에서 두 번씩이나 살아난 경험이 학습화 되어서 닥쳐온 죽음을 담보로 하는 약속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죽음의 약속을 어기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자기 욕심 때문에 솔로몬과의 죽음을 담보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수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로 용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W.C.C.운동은 한국교회의 마지막 시험 무대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심히 근심하면서 주여 내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두 번째 말씀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장 24절에 『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다른 제자들과 같이 주여 내니이까 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근심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 면전에서 결정적인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은 30때문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귀는 한국교회를 넘어지게 하기 위하여 W.C.C.운동을 한국교회 앞에 유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보수주의 목사, 대형교회 목사, 저명한 신학교 교수들의 눈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W.C.C.는 참으로 양의 옷을 입고 용의 말을 대변하며 행동하는 "저 불법의 사람"(살후 2:3)의 배도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참된 교회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고 깨어 진리파수에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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