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제자 삼으라 (마 28:19-20)

첨부 1


제자 삼으라 (마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봄은 가히 부활의 계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불타버린 잔디에서도 새 싹이 나오고, 겨우내 죽어버린 듯한 나뭇가지에서도 파릇파릇 새 잎이 움트고 꽃이 피어 만발합니다. 작년 여름 영복교회가 이전을 하면서, 백목련을 두 그루 우리 교회에 기증을 하여 예배당 정문 입구에 심었는데, 이식을 하는 중 뿌리도 상하고 몸살을 많이 하여 다 죽어가는 것을, 김상술 장로님께서 발근촉진제를 다섯 번이나 주어가며 살려내어 드디어 금년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같은 자연계의 부활 역시 어쩌면 예수님의 부활의 예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도 확실하여 부인할 수 없지만, 부활을 부인하는 몇 가지 이설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경비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서,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도둑질하여 갔다고 하라는 말대로 퍼뜨린 도거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이설은 그 외에도 숀 필드라는 사람이 주장한 예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살아났다는 기절설이 있고, 키로솝 레이크라는 사람이 주장한 예수님이 묻힌 장소에는 여러 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여자들이 주일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예수님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비어 있는 다른 무덤을 찾아갔다는 착각설이 있으며, 불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주관적인 환상으로 본 것인데, 그 환상이 너무도 생생하여 실제로 부활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 환상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다 터무니없는 거짓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손과 발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문만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도 놀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직접 보았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주님의 유령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으나, 제자들은 너무도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반신반의하여 기이히 여기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주님이 유령이 아님을 증명해 주신다면, 우리가 부활을 믿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만일 주님이 음식을 잡수신다면 틀림없이 부활하신 것이요, 유령이 아닌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죄송하지만 진짜 부활하셨다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래 무슨 증거를 원하느냐?” “예, 이 음식을 잡수어 보십시오! 그렇다면 틀림없이 믿겠습니다.” 이 같은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예수님께서 반신반의하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자신이 유령이 아니시고, 부활하여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가진 분이심을 증명해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눅 24:42-43에 보면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제사를 지내본 경험들이 있으시지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제사상을 차려 놓은 후 하루 밤을 지내고 나면, 밥그릇도 비어 있고, 국그릇도 비어 있고, 조기도 한 토막 없어지고 하던가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그래서 제사는 헛된 일인 것입니다. 귀신이나 유령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친히 잡수시면서, 자신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임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사십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적어도 십여 차례 이상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은 복음의 세계적 전파와, 그리고 복음 전파의 목적을 제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주님을 따르는 자로 만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목적은 죄로 물든 영혼들, 어둠과 절망 중에 탄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뜻을 좇아 사는 법을 가르쳐 훈련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마침내 혼자서도 능히 주님의 가신 길을 뒤쫓을 수 있는 성숙한 제자로 양육시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하고 있는 ‘캐리 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제자란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전도의 열매를 맺으며, 초신자들을 잘 양육하는 성도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죄 사함 받고, 죽은 다음 천국 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뱀파이어 신자’(Vampire Christian)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흡혈귀 신자’라는 뜻이 됩니다. 조금 심한 표현이지요?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보혈만이 아니라, 주님의 정신과 영혼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께 배우고, 주님을 본받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죽고 희생하기를 바라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마 16:24절에서 자신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제자도 곧 제자의 도리, 제자의 길, 제자의 정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제자도의 첫 걸음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의지와 뜻을 부정하고, 또한 자신의 욕구와 육체의 유혹을 허락지 않고, 단호하게 물리치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이전에는 사탄의 권세 아래서 사탄을 섬겼던 진노의 자녀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에 원하던 바를 행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로 인해 죄 용서를 받아 구원받은 지금, 죄의 종노릇하던 사탄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한다면, 육체의 죄악 된 유혹과 의지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물리치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처음 믿기 시작한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직장에서 모시던 상사가 있는데, 아주 독실한 교인이었습니다. 그 상사는 자기를 만날 때마다 교회에 다니라고 권했습니다. 아침에 결재를 맡으러 가면 죽 훑어보고 도장을 찍어 주고는, “그런데 이 과장, 언제 교회 나갈래? 올 해는 넘기지 말아야지? 잘 생각해 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상사가 퇴근할 때가 되면, 가끔 전화를 해 가지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과장, 오늘 회식이 있는데, 어디 물 좋은 데 좀 알아봐!” 그리고 술자리에서 그 상사는 믿음이 없는 사람 보다, 훨씬 더 추하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그 상사에 대한 기억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직장에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가 매우 꺼려진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개신교회의 상황을 가장 잘 조사하고 분석하는 연구소 중 하나가, ‘바나 그룹’(The Barna Group이라고 합니다. 이 그룹에서는 1995년부터 정기적으로 조사를 하여, 미국 기독교인들의 실태를 분석해 왔습니다. 중요한 윤리적 영역에 있어서 소위 ‘거듭난 신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추적해 왔습니다. 투기, 노름, 마약, 인터넷 포르노, 탈세, 절도, 혼외정사, 가정 폭력, 인종차별, 물질주의 등에 있어서,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떤지 아십니까? 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스스로를 ‘거듭난 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상태가 더 나쁜 경우도 있었습니다. 혼외정사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거듭난 신자들 사이에서 약 2-3% 더 높았습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너무 강조해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이 그런 사랑이 아닌데……남편의 가정 폭력에 극심한 고통을 받고 힘들어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다니는 교회에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번창하는 사업으로 인해서 교회에 가장 많은 헌금을 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에 이러한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권리’는 주장하면서 ‘자기의 의무나 책임’은 소홀히 여기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도 보여 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바라는 삶은 등한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가 져야만 합니다. 그 십자가를 바로 질 때에, 영광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나 힘들고 아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을 때에, 주님은 부활의 영광을 맛보셨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우리가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순종함으로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상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이든지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그 십자가를 바로 질 수 있는 강한 힘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의 꿈 이야기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너무나 힘들어서, 톱으로 자르면서 갔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했는데, 한참 후에 큰 강이 나왔고, 그 건너편이 축복의 땅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다리가 없는데, 소리가 나기를 너의 십자가로 강을 건너라고 하기에, 십자가를 다리삼아 걸치니, 자신이 자른 만큼 모자라서 한없이 울다가 깨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자기의 십자가를 바로지고 예수님을 따릅니까? 우리 모두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제자훈련의 방법은 모범을 통하여서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모범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킨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직접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자신이 행한 대로 서로 섬기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제자훈련은 모범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특정한 제자훈련 과정만 마치면, 제자훈련이 끝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자훈련은 하나님의 말씀과 리더의 모범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셨을 때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며 모범적으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모범적으로 제자훈련을 시킨 분이었습니다. 행 20:18에 보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아는 바니”라고 했고, 행 20:35에는 “범사에 내가 모본을 보였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제자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너는 잘해라 하는 식의 제자훈련은, 옆으로밖에 걷지 못하는 게가 자식들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자훈련 반드시 모범으로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고,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어 주님을 닮아 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진실한 스승이 진실한 제자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의 사역은 이 땅에 큰 교회당을 지은 것도 아니고, 명문 학교나 종합병원을 설립한 것도 아니고, 사회복지관을 건립한 것도 아니고, 오직 열 두 명의 제자들만 남겨 놓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유언으로 남기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명령을 받들어 열두 명의 제자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그들을 제자로 삼아서 주님의 구령사역을 계속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들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한 가지 우리가 먼저 잊지 말 것은, 다른 사람을 제자 삼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낮은 울타리’에 실린, ‘자식들도 감히 못하는 일을’이라는 글입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셨다. 평생 교감이나 교장자리도 마다하고 아이들 앞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하루 종일 재잘대는 아이들과 밀고 당기며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더없는 행복이었다. 정년퇴임을 하신 후,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운지 저녁이면 앨범을 펼쳐들고 30년 전, 처음 만났던 학생들 얘기부터 그리운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이 아이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지, 하루라도 안 싸울 날이 없었단다. 그래도 날 어찌나 좋아했는지, 나만 보면 떡볶이 사달라며 날마다 조르곤 했지! “유진이는 참 참한 아이였다. 홀어머니와 살면서도 늘 웃음을 안고 지냈지. 아프신 어머니 때문인지 늘 의사가 되겠다고 했었단다. 

내가 가끔 집에 찾아가서 유진이 몰래 고기며 쌀이며 사다 놓곤 했었는데…” 줄줄 이어지는 추억담은 늘 자식들 마음을 촉촉이 적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다녀오시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폐암 말기란다. “한 평생 칠판에 쓰고 닦고 하시더니 폐암이 되셨구나.” 희망이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와 치료를 계속했다. 종종 아버지 제자들이 소식을 듣곤 찾아오곤 했다. 그럼 아버진 또 한참을 옛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만큼은 아버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아버지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기침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시는 날들이 잦아지고, 가래 끓는 소리도 거칠어졌다. 그때 마침, 진료 받던 병원에서 의사 한 명을 보내주었다. 20대 후반의 여의사였는데, 가래가 끌면 젖은 가재로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주곤 하면서, 가족만큼이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왔다. 병세가 악화되어 말씀을 제대로 하실 순 없었지만, 여의사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도 유난히 표정이 밝아졌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침이 무척이나 심해져 얼굴은 핏발로 벌게지고, 목은 가래가 들끓어 숨쉬기조차 답답해하시자, 손으로 가래를 꺼내던 의사는 난데없이 음료수 빨대를 가져오라고 했다. 대체 빨대로 무엇을 하려나 하고 의아해 하며 가져다주자, 그녀는 빨대 한 끝을 아버지 목구멍에 넣고, 한 끝은 자기가 물고 가래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이었다. 자식들도 감히 못하는 일을 젊은 여의사가 하고 있었다. 폐암 환자였기 때문에, 가래에서 냄새까지 났다. 그러나 여의사는 모든 것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빨아내기를 여러 번 하자,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몇 달 후 아버지는 여의사의 헌신을 멀리한 채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네? 의사 보내드린 적 없는데요?” “분명히 여기 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요?” “의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 “아무튼 저희 쪽에서는 의사를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여의사의 이름도 몰랐던 나는 헛걸음만 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얼마 후 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온 편지였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참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가끔 저희 집에 쌀이며 반찬이며 놓고 가셨던 거, 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만… 그 못난 제자가 의사가 됐어요. 

이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수소문해 찾았을 때, 많이 아프시다는 걸 알았어요. 20년이란 긴 세월을 넘어 침상에 누워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 가운을 입은 저를 보면서 ‘어서 오렴!’하고 반겨주시듯 제 손을 꽉 잡아주신 선생님… 저 알아보신 거 맞죠? 언젠가 제 꿈이 의사라고 하자, 선생님은 “유진이는 예수님처럼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의사가 될 거야!” 하셨죠. 그 말씀 지키려고요…. 이곳 황무한 아프리카에서 메마른 영혼들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그 여의사의 편지를 아버지의 묘소에 고이 놓아드렸다.>

이토록 눈물겨운 제자가 있는가 하면, 또 이렇게 못된 제자도 있습니다. 4월 10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지난 해 서울 강북지역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은 20대 여교사 A씨는, 제자인 B양에게 물을 떠다 달라고 부탁해, 종종 수업 시간에 목을 축였으나, 알고 보니 그 물이 양변기 물이었다는 것입니다. A교사는 그 해 10월 한 학부모로부터 뒤늦게 내 막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병가를 냈고, 정신과 상담치료도 받다가 결국 휴직했다는 것입니다. A교사는 평소 B양을 예의 바르고 착실한 모범생이라 여겨 충격이 더 컸다고 합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양변기 물을 떠다가 선생님에게 준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학생들은 선생님이 그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고 또한 믿고 싶지도 않는 일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가 쓴 “제자입니까?” 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제자입니까? 제자이면 어떤 제자입니까? 스승의 은혜를 잊지 못해 가래를 빨대로 빨아내는 제자처럼, 주님의 은혜를 갚는 제자입니까? 아니면 물 좀 떠다 달라는 선생님에게 양변기 물을 갖다 준 제자처럼, 주님을 억지로 섬기는 선데이신자입니까? 우리가 먼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또 다른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삼기 바랍니다. 특별히 제자대학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은, 기필코 반드시 탁월한 재생산 사역자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