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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05:35

노아 방주의 교훈 (창 6: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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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방주의 교훈 (창 6:13-22)

여러분 혹시 광명 87호 전재용선장님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이 전재용 선장은 원양어선 400톤급을 인도하고 인도양에 참치 잡이를 나갔다가 이제 부산으로 귀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말라카해역을 지날 때에 목선을 타고 손을 흔드는 보트피플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트남 다시말하면 월남의 난민들입니다. 목선을 타고 살려달라고 구조해달라고 소리치는데 본국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그냥 지나치라는 것입니다. 정부에 물어봐도 관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재용 선장은 이 400톤급 큰 배를 몰고 길을 가다가 그는 마음의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저들을 그냥 두면 목선이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굶주려 죽거나 침몰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내가 저들을 구조해줘야지. 그래서 그는 모든 선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합니다. 회사의 지시는 이렇지만 나는 내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그냥 자나칠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저들을 구조하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리고 뱃머리를 돌려서 그 보트 피플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처음에는 배가 작기 때문에 한 열두 명쯤 될 줄 알았어요. 끄집어내는 지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데 96명이 올라왔어요. 

이미 40여대의 배가 지나갔지만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을 배로 구조를 했습니다. 부산까지 도착하는 14일 동안 그들을 잘 섬겼습니다. 굶주린 그들을 먹이고 쉬게하고 안락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도착해서 그들은 이제 난민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에 가서 일년여동안 거주하다가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미국으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영국으로 다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 전재용선장을 해고 통지를 내렸습니다. 회사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당신은 해고다. 이래가지고 이분은 저 통영이라는 곳에 가서 멍개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그 아름다운 뜻이 기념되어서 2009년 국회 인권포럼이 수여하는 올해의 인권상을 수여했습니다. 또 그는 TV프로나 뉴스에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또 그분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장호감독이라는 유명한 감독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교회의 협력을 받고 또 뜻있는 사업가 집사님들의 협력을 받아가지고 광명 87프로젝트라는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낸 이 아름다운 일이, 바로 이 사람이 한국인이라는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사람을 구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인간구원을 위한 배를 하나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혹시 그 배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무엇입니까? 노아의 방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라고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배경을 좀 생각해봐야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알다시피 온 우주 만물을 6일 동안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그 만들어 놓으신 우주를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마지막 6일째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름답게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이 범죄하게 되었다는거예요.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인간의 죄가 온 천하에 팽배해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온 인류는 다 포악해지고 강포해지고 죄로 물들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그 때 인간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어요. 자 우리 창세기 6장 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오죽하셨으면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을 보고 마음에 근심하시고 후회를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6장 11-13절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이 부패했다. 포악했다. 포악함이 가득 찼다. 이 부패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썩었다. 그런 뜻이예요. 그들이 썩었다. 또 포악했다라는 것은 공동번역에 보면 무법천지가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이 다 썩어버리고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결심을 하시죠. 13절에 보니까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겠다. 내가 인간을 심판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가 알다시피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서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인간을 심판하시기 전에 그래도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범죄하였지만 이제 내가 그들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게 할 것이다. 내 말을 순종하고 방주를 타는 자마다 보호함을 입고 구원함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어요. 그 당시에 아주 당대의 의인이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건설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방주를 어떻게 건설하였을까요?

자 오늘 우리 성경 창세기 6장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이 고페를 나무라는 것은 요즘 말로 말하면 잣나무 또 어떤 주석가는 전나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은 이것이 배를 만드는 목재로 아주 적합하다고 합니다. 고페로 나무로 너희를 위하여 배를 만들되, 그 방주 안은 칸 칸으로 막아라. 그리고 뭐예요?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역청이라는 건 뭐예요? 역청, 물이 세지 않도록 이 콜테르 같은 것을 기름덩어리 같은 것을 칠하라는 것이죠. 이 역청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죠. 

출애굽기 2장에 보면 모세를 낳았다가 3개월이 지나 더 이상 숨겨둘수가 없어서 갈대상자를 만들고 갈대상자에 역청을 칠해서 물이 세지 않도록 하고 모세를 거기 담아서 나일강에 떠내려 보냈더니 바로의 공주가 목욕을 하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구원하게 되죠. 여러분 그래서 이 갈대상자라는 말과 이 방주라는 말은 어원이 같아요. 모세라는 말은 물에서 건짐받은 자라는 것이죠. 방주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설계하신 배였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배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하십니다. 이 역청을 칠하라는 건 뭐예요? 그건 바로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하는 거예요. 방주가 교회를 상장한다면 그 교회는 세속의 물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피뿌려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오면 세상의 악한 영들이 우리를 해치지 못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피뿌림을 받은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출애굽기에서도 그렇잖아요. 마지막 열 번째 재앙 때 장자가 죽음을 당할 때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기둥에 바른 또 출입구에 바른 가정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여러분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이 건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이 공동체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칠해져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방주에 타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오면 거기 구원이 있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적 공동체에 속한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방주를 만드는데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설계를 하셨어요. 어떻게요? 자 15절 16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아멘 

방주를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설계 하셨어요. 노아가 만든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그 모든 설계도를 내려 주셨어요. 그 길이는 삼백 규빗. 일 규빗은 여러분 팔꿈치 길이예요. 여러분 손끝에서부터 팔 접는데 까지가 한 규빗이예요. 그래서 팔이 긴 사람은 45cm 보통 작으면 40cm, 이 40cm로 치면 300규빗이면 얼마나 될까요? 120m입니다. 이 방주의 길이는 초등학교 운동장 길이정도! 굉장히 길죠! 100m 달리기 해보셨어요? 120m 길입니다. 그리고 이 방주의 너비는 50규빗! 얼마일까요? 20m 50*40cm 하니까 20m! 20m의 넓이라면 저 끝에서 성가대 끝까지 가지 않겠나요? 그 다음에 높이가 어느 정도 될까? 높이는 몇 규빗이예요? 30규빗. 30규빗이면 3*4=12. 12m 아마 우리 교회 천장 보다 조금 더 높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비슷할까요? 

그리고 3층으로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 끝에 3층 높이의 창문을 일 규빗짜리 창문을 하나 두었어요. 그리고 옆에 문을 하나만 달았어요. 창문은 왜 위에 있을까요? 하나님만 바라보라구요. 만약에 옆에다 내었으면 물도 들어올 수 있었겠지만 죽어가는 시체들을 보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몰라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창문은 위로 있어요. 그리고 옆에 문을 하나 내었어요. 문은 하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방주의 크기는 상당히 크겠죠?! 그 무게는 약 2만 톤급 쯤 될 것이다. 그렇게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유조선 있지요? 앞에가 길쭉하고 몸이 날씬하고 큰 유조선을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이것을 해양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까요. 이 구조가 풍랑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조라는 것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 과학자 중의 과학자시구나!라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설계도를 하나님이 내려 주셨어요. 그리고 여기에 이제 이것이 완성이 되면 암수 한 쌍씩 모든 짐승을 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7장에 보면 구체적으로 정결한 것은 일곱 쌍씩 부정한 것은 두 쌍씩 싣도록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 방주는 우리가 알듯이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겁니다. 특별히 이 방주는 특징이 있어요. 나침반도 없고 키도 없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요. 또 동력도 없어요. 무슨 동력을 돌려서 앞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엔진 제트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그저 물에 흘러가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그 방주를 인도하시는 분은 누구에요? 하나님이세요. 오직 그들은 위에 난 창문을 열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뿐이예요. 그리고 방주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자! 그런데 이 방주가 결국은 물에 뜨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방주가 역사적으로 존재했겠느냐? 이 러시아와 유럽의 아라랏 산이라고 하는 곳이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8장 4절에 보니까 일곱 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이 아라랏산 근처에서 방주의 흔적을 보았다는 보고가 한 100여건 보고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자 우리 창세기 7장 11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 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아멘. 노아가 육백세가 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120년이 지났어요.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겠지요. 그 작업이 다 끝났을 때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 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 이건 뭐지요? 2월 17일입니다. 육백세 2월 17일 날짜까지 더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 이것은 이 바다 밑에서 샘이 올라오고 하늘의 문이 열렸다! 여러분 우리가 서울에도 집중 호우가 내릴 때 보면 보통 한 시간 두 시간 막 비가 내리면 하늘에 뚜껑이 열린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 시간만 집중호우가 내리면 강남은 침수가 돼요. 신길동은 침수가 안 돼도 강남은 빨리 침수가 되더라구요. 낮아서요. 여러분 이런 곤혹을 많이 치러봤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얼마동안? 40주야, 낮과 밤으로 40일동 계속 쉬지 않고 비가 내리면 온 지구촌이 물에 잠기겠다는 것입니다. 왜? 밑에서 물이 올라오고 위에서 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40주야를 비가 쏟아 졌다고 7장 12절에 이야기 하죠. 그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의 아들 셈, 함과 야벳 그리고 노아의 아내와 그의 며느리들이 총 8명이 방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생명 있는 짐승들이 다 일렬로 정비해서 방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짐승들이 다 들어 간 다음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7장 16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아멘!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열 자가 없어요.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어요. 이때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은 방주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문을 닫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거예요. 그 때에는 돌이킬 수 없어요. 

자! 그리고 계속 물이 넘쳤어요. 일백오십일 동안 물이 넘쳤고 그 물이 넘친 기간이 무려 일 년 377일 동안 물이 넘쳤어요. 자 그런데 오늘 성경에 아주 무서운 이야기가 있지요. 여러분 창세기 7장 22절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아멘 

오직 구원 받은 사람이 누구예요? 오직 노아와 방주에 있는 가족들!! 노아의 가족들, 그리고 짐승들만 결국은 남았더라. 그들만 구원 받고 그 외에 생명 있는 것은 다 죽었다! 어떤 사람은 그래요. 그거 널빤지 하나 붙들고 살지 않았겠느냐고?! 일 년 동안 널빤지 하나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굶어 죽지! 또 어떤 분들은 그래요.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왜 죽냐고? 여러분 이유가 있어요.

어떤 주석가는 그래요. 민물에 살던 고기는 바닷물이 들어오니까 짜서 죽었고 바닷물에 살던 고기들은 민물이 들어오니까 섞여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예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온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 것이 일 년! 그리고 일 년 후에 결국 방주가 아라랏 산 위에 머물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라는 방주를 통해서 보호받고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우리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으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방주에는 나침반도 키도 방향키도 없어요. 동력 장치도 없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오직 방주에 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방주 안에서 무엇을 하겠어요. 여러분!! 

우리는 내 힘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서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가 뭐 착하냐? 공부를 많이 했냐? 부자냐? 이런 것 중요하지 않아요. 방주에 탔느냐? 타지 않았느냐? 그가 누구든지 방주에 탄자는 보호 받았어요. 그가 누구든지 예수의 몸 된 교회에 들어 온 사람들은 구원 받았어요. 그러나 그가 아무리 착하고 의로운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에 방주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보호하신 것처럼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과 그 짐승들을 보호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보호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갈 길을 몰라 할 때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범죄 할 때는 성막에 가서 죄를 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외로울 때는 말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을 때는 비처럼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는 반석이 터져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대적을 만났을 때는 기도함으로써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방주에 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여러분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염려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보고 절망하면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보고 좌절하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안된다고 해도 여러분은 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해도 여러분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제가 불황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해도 여러분은 이제 잘될 것이라고 말하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이제 망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이 더 좋은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방주에 탄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왜냐하면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 하셨어요. 

내가 누구 한 영혼도 마귀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방주에 탄 자마다 내가 그들을 다 보호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약속에 신실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점 일 획도 틀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그 말씀을 실언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 19절에 보니까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19,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아멘.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바로 이 노아 홍수의 심판 가운데 이제 그 생명을 방주에 잘 타게 해서 보존하게 하라. 어찌 보면 오늘 우리에게도 그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뭐에요? 전도해서 생명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 방주와 같이 세우신 거룩한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세파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이 전도의 명령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다가 40일 후에 승천하시면서 주신 말씀이 뭐에요? 마태복음 18장 19절 이후 말씀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할렐루야.

이게 바로 전도의 명령이에요. 너희는 가서 그들을 가르쳐서 세례받게 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게하라. 이것이 전도의 명령이에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이 전도의 명령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교회는 전도해야 할까요? 교회는 이 시대의 구원의 방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이야기 해볼까요?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시대에는 방주를 만들게 하셔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하게 했다면 이 시대에는 오늘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를 통하여서 영혼을 구원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교회는 이 시대의 방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조선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유람선 놀러다는 곳이 아니에요. 교회는 구조선이에요. 죽어 가는 이를 건져내는 구조선이 돼야 한다. 여러분 교회는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데가 아니에요.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조하는 구조선이 돼야 합니다. 전재용 선장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방주인 교회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또한 왜 전도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기에 우리 자막으로 좀 볼까요. 요한복음 10장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아멘.

예수님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은 오직 유일한 구원이 문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어요. 방주에는 문이 오직 하나 밖에 없다. 만약에 문이 세 개라면 다르죠. 문이 세 개라면 마호메트, 석가모니, 공자를 믿어도 구원받고 그러면 전도할 필요가 없죠. 그러나 방주의 문은 하나밖에 없어요. 구원의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나아올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장 12절 함께 보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하나님은 주신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아 방주처럼 때가 되면 하나님게서 역사를 심판 하실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영혼들은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전도해야 하는가 세 번째는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에요. 기분나면 하고 기분 안 나면 안하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여러분 전쟁터에는 부탁이라는 것이 없어요. 김일병 자네가 앞으로 전진해주게나 부탁이야. 싫으면 그만 두고 이런 거 없습니다. 명령이면 끝이라는 거죠. 명령입니다, 부대장의 명령이 있을 뿐. 거기 설득이나 부탁은 없습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죽느냐.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런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 이건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오늘 이 명령 앞에 노아는 어떻게 순종했습니까? 방주를 만들어도 좋고 안 만들어도 좋고 이런 거 아닙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야만 했어요. 자 우리 6장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아멘.

노아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기에 그 가족이 구원받았고 수많은 짐승 때들을 구원할 수 있었어요. 노아는 성경에 보니까 전도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에 보니까 “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의를 전파한다는 것은 무엇이에요. 노아가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판이 옵니다. 물의 심판이 옵니다. 이 방주에 타셔야 합니다. 아무도 노아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런 사람 많을 거예요. 전도를 하다보면 그래서 그게 부끄러워서 어떤 분들은 전도안하죠. 그러나 노아는 믿고 순종했어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 아들과 세며느리 모두를 구원했어요.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니까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은 일에 아직 홍시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일에 120년 동안 노아는 배를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아마 노아의 가족만이 120년 동안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2만톤짜리 배를 만들려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그 일에 협력 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교회와서 건축하는데 건축인부로는 일했지만 구원받은 데는 참여하지 못했어요. 왜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준비했어요. 오늘 이 시대에도 심판이 있긴 어디있어 전도 뭐 필요해 괜히 하는 것이지 이렇게 믿지 않고 불신하는 자들에게는 방법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시대 방주로 교회를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전도함으로 그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런 아름다운 전도의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이용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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