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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끼치며 감사합시다 (엡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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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끼치며 감사합시다 (엡 4:29)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한 불우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에 이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죽음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구호단체 유니세프의 도움을 통해 소녀는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녀는 장성하여 세계적 영화배우가 되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입니다. 유명한 배우가 되었을 때 그녀는 유니세프의 홍보대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구호를 도왔습니다. 말년에 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번 그 머릿결을 어루만져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걸으라.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어가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자요 잔인하고 패역한 사람이었으나 다메섹도상에서 부활의 주를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충성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성도는 서로 지체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덕을 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새사람의 윤리는 오직 덕을 세움에 있다고 강조하며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더러운’(사프로스)은 ‘썩은’,‘부패해서 사용하기에 부적절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더러운 말’(로고스 사프로스)은 아무런 쓸모없는 말이며,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교회 공동체에 덕이 되지 못합니다.

한 유대인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두 아들이 장례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장남이 차남에게"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기 때문에 마차를 50대 준비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차남이 말합니다."50대를 빌리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우리가 아버지 장례 치르고 파산할 일이 있습니까? 그냥 25대로 합시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러자 장남이"그럼 장례 집례는 유명한 랍비를 모셔서 하자."고 하자 또 다시 차남이 말을 받아서"형님, 유명한 랍비는 사례비를 많이 줘야 하니까 시골에 이름 없는 늙은 랍비를 모시고 합시다."사사건건 형제가 의견이 맞지 않는 모습을 누워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임종직전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합니다."얘, 둘째야! 내 바지를 가지고 오너라."두 아들이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내 발로 걸어서 묘지까지 가마 그러면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을 것이다."하고는 터벅터벅 걸어 나가더랍니다.
  
더러운 말은 거짓말이기도 합니다.
지헤자는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라고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고 합니다.

거짓은 마귀의 특징이요,마귀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전히 거짓을 말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자녀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크 할수 있습니까?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 교회의 훌륭한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한 날에 죽임을 당하는 참으로 참혹한 일을 당해야 했습니까? 이제 아나니아를 향해 힐책한 사도 베드로의 책망의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아직도 그의 마음에 누군가를 속일 마음이 있다는 것,그것이 행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에게는 사단이 가득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단의 자식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은 분노의 말이기도 합니다.
전도자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고 합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 37:8)고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고 합니다.

미국 뉴욕발레단에 스무살의 천재 무용수가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이름은 월터 패트릭 비셀.청년은 동료 무용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비셀은 팬들의 박수갈채 속에 연 2억원의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았습니다. 

어느날 뉴저지의 한 아파트에서 비셀의 싸늘한 시체가 발견됐습니다.사망 원인은 과다한 약물 복용이었습니다.그런데 톱스타로 부상한 비셀의 약물복용을 눈치 챈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비셀의 어머니 패트리시아였습니다.그녀는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습니다.비셀을 향해 분노를 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가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매질을 했습니다.어머니는 직장생활에 너무 바빴고 비셀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비셀의 성격은 차갑고 괴팍했습니다.그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했습니다.비셀의 유서내용은 `약물로 망가지고 있다.될대로 되라'였습니다.패트리시아는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비셀,네가 바로 4대째 희생자다.너의 죽음은 조부 때 부터 내려온 어른들의 분노와 무관심의 결과다” 천재적인 무용수를 자살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잦은 분노와 매질이었습니다.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며 은혜를 끼치라고 합니다.

‘덕을 세우는 데’(오이코도멘)는 ‘집’(오이코스)과‘세우다’(데모)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집을 세움’이라는 뜻이나 여기에서 집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건축의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며(엡4:12),교회 공동체가 견실하게 성장해 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강조점은 말에도 있지만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용되는’(테스 크레이아스)은 ‘알맞게’,‘적당하게’라는 뜻이며 ‘선한’(아가도스)은 ‘적절한’’‘쏠 만한’이라는 뜻으로 경우에 합당하고 꼭 필요한 말,공동체 전체를 살리고 세우는 말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말이 바로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인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이런 관점에서“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고 하였습니다.

허버트 험프리 (Hubert H. Humphrey)는 미국 부통령을 지낸 거물입니다. 그의 장례식 때 닉슨 전 대통령이 참석하였습니다. 닉슨 대통령과 험프리는 서로 험담을 하던 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험프리가 죽기 3일 전에 잭슨 흑인목사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험프리가 부탁하기를 "죽기 전에 닉슨을 만나게 해 달라" 고 했습니다. 잭슨 목사가 놀라면서 "평생의 원수인데 왜 닉슨을 만나려고 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험프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닉슨에게 꼭 사과를 하고 하나님께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용서의 말을 하며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참된 말이 은혜를 끼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 25)라고 합니다.

새사람의 특징은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통한 상호간의 신뢰 대신 거짓으로 생겨난 불신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합니다. 그러나 참된 말이 있는 곳은 신뢰와 은혜가 풍성케 됩니다. 마귀는 거짓을 말하게 함으로 가정과 교회를 흔들고 파괴시킵니다.

아라비아의 격언은 "만일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세 개의 문을 통과하라. 첫 번째 문은 사실의 문이다. 그것이 사실인가?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은 그것이 사실인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필요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는가? 세 번째는 유익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나와 그 사람과 내 가정과 이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이 세 개의 문을 반드시 통과하라."한다 합니다.

참된 것을 말할 때 비로소 평화와 기쁨이 충만케 됩니다. 부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자가 되어 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칭찬의 말이 은혜를 끼칩니다.

잠언 27장 21절에서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칭찬으로 사람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쁜가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칭찬하는 말과 인정해주는 말을 들었을 때라고 합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때때로 ‘칭찬받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속으로는 칭찬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칭찬과 격려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난 후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시기에 좋았다(It was good)’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후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It was very good)’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일뿐 아니라, 그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2차 대전의 영웅을 일 뿐아니라, 6.25 전쟁 때 총사령관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분입니다. 그도 어릴 때에 말할 수 없는 개구쟁이였습니다. 말썽을 피우고 사고를 치고 아이들을 떼 지어 몰고 다니며 골목대장노릇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그의 장래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만은 “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 났어. 군인으로서 크게 성공할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맥아더는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눈이 확 뜨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 때문에 위대한 군인이 된 것입니다. 

   
축복의 말이 은혜를 끼칩니다.

민수기 6장 22절부터 27절까지 말씀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그 중에 27절을 보면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비록 불순종과 불신앙을 보이며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백성들로서 축복보다는 꾸중을 받아야 할 백성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마음속에 축복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웃에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같은 교회 공동체에 소속된 교인일 수도 있고, 나를 향하여 돌을 던진 원수 같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축복하면 축복할수록 그들에게 베푼 축복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포한 축복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혀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도 있고,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빌어먹을 녀석’이라고 할 수 있고, ‘크게 성공할 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몹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을 듣고 싶습니까? 저주의 말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축복의 말을 듣고 싶습니까? 이 자리에 저주의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 축복의 말을 듣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을 원하실까요? 저주의 말일까요? 축복의 말일까요?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축복의 말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대로 역사하십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21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부흥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게 하는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저 애가 커서 뭐가 될런지..”하며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할머니만은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개성만 살리면 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말썽꾸러기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의 말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의 말이 은혜를 끼칩니다.

엡 5:4절에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 대신에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불평하는 입술이 아닌, 감사하는 입술에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반대로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불평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불평하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만 열면 불평이 나옵니다. 자기가 금방 불평해놓고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반대로 감사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Mothew Henry)라는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매를 맞고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 일어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간신히 일어나 집에 들어왔더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하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어 강도가 되지 않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심리학 교수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는 12세에서 80세까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감사 일기를 매일 적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그냥 아무 것이나 적도록 했습니다. 한 달 후에 조사를 해보니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해지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 더 좋은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감사를 하면 그만한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과 성품은 동반자입니다. 평소에 거짓을 버리고 고운 말, 아름다운 말, 감사의 말, 참된 말을 하면 얼굴도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지고 환경도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먼저 감사의 조건을 헤아려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과 상황이 닥친다할지라도 먼저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따질 일이 있다 할지라도 먼저 감사하며 은혜를 끼치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말이 은혜를 끼칩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고 합니다.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 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 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하면서 사장은 다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 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교회 80주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되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라는 말씀대로 은혜를 끼치며 감사하되 참된 말, 칭찬의 말, 복을 비는 말, 감사의 말을 하며 은혜를 끼치되 더욱 생명을 살리는 전도의 말을 하며 은혜를 끼치며 감사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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