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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으로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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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으로 (출 17:8-16)

오늘 본문 말씀이 되는 출애굽기 17장에는 르비딤에서 있었던 두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 7절까지의 전반부에는 마실 물이 없어서 불평했던 맛사, 므리바 사건이 나오고, 후반부가 되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 말씀은 ‘그때에’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이 ‘그때에’라고 하는 시점은 앞에 있는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기갈의 문제가 해소된 이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후였습니다.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툼이 그곳에서 있었습니다. 갈증의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라고까지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원망과 다툼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그 문제가 해결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문제는 해결됐고 하나님의 역사도 체험했으니까, 다시 평탄하게 가나안을 향해서 행군해가면 좋을텐데, 또 하나의 문제,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닥쳐왔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하나 해결되고 나서 이제 홀가분해지는가 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고, 그래서 이제는 그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도 믿음으로 다 이겨나갈 것 같은데, 막상 닥쳐 보면 또 그렇지 못하고, 또 어려운 문제 앞에서 낙심하게 됩니다.   

므리바 물 사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닥쳐 온 문제는 아말렉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지, 다른 나라를 정복할 것처럼 군사들을 거느리고 전쟁 준비를 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노예로 일만 했지, 제대로 군사 훈련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민족과의 싸움은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에 대한 선전포고가 있고, 서로 전열을 준비해서 서로 맞닥뜨려서 일제히 싸웠다면 그래도 나았을텐데, 이 싸움은 그렇지 못하고 아말렉의 일방적인 기습공격이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출애굽 때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면서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곤함을 타서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여행으로 인해서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있었고, 특별히 노약하거나 유약해서 뒤에 쳐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말렉은 그런 그들을 무참하게 살륙하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겠습니까? 므리바 사건 때처럼,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냐고 하면서 난리를 쳤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8절 말씀과 9절 말씀 사이에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습관대로라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웠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총사령관으로서의 직책을 부여하면서 모든 작전권을 그에게 위임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미 이때에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신임 받는 충실한 보좌관 역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맡기면서 이어서 말합니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하면서 전쟁터로 내보냅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자신도 같이 나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전쟁에서 피해서 산꼭대기로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참 불합리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사지로 몰고 자신은 등산이나 하겠다는 것은 참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모세가 산꼭대기에 오른다는 것은 그저 등산이나 즐기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서겠다는 것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육체적인 전선에 내보내고, 자신은 영적 전선에 나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전쟁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 전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많은 군사, 좋은 무기가 있으면 육체적인 전쟁에서 이기기에 유리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세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산 밑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움을 합니다. 전쟁 중에 여러 사람들이 피 흘리면서 쓰러져갑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모세는 어떤 생각들을 했겠습니까? 나는 나이가 있어서 어차피 싸움도 못하는데다가 기도한다는 핑계로 다행히 전쟁터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는 내내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올라갔을 것입니다. 마치 시편 저자처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고백처럼, 산으로 올라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꼭대기에 올랐습니다. 산에서 내려다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전쟁의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손을 들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손을 들고 모세의 기도가 계속될 동안에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시간의 기도로 인해서 모세의 팔이 피곤해졌을 때는 이스라엘이 패배했습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고 기도가 중단되는 것에 따라서 일진일퇴하는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교훈하셨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그 기도의 사역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습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돌을 가져다 놓고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에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시간적으로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오후에 올라가서 저녁 때까지 기도했다면 몇 시간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침 일찍 올라갔다면, 거의 종일토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해가 지도록 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굳어지기까지,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한, 이 세 사람의 수고가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전쟁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영적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서 헌신적으로 기도하고 협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도 열심히 싸웠겠지만, 여호수아의 용맹과 탁월한 전투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세의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후원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제단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감사로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산으로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서는 것! 이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이 공격해 온 것처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가운데서 어려운 일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하고 불평도 하고 당황스러워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맞닥뜨려서 싸워야 하는 것처럼, 오직 직접 싸우는 것만이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마음도 편하고,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오직 내가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싸움을 합니다. 그러면서 놓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산에 올라가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같이 싸워야지, 모세와 같이 산에 올라가는 행동은 불합리하게 여겨지고, 비겁해 보이는 것 같고, 필요 이상이나 나중에 해도 되는, 차후의 대책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바로 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산꼭대기에 서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성경말씀을 또 하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주님이 가버나움의 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도무지 주님께 데려갈 수 없어서 지붕을 뜯고 병자를 달아내렸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이 말씀 전에 기록된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네 사람이 병자를 달아내리는 것을 보시면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슨 믿음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 이 사람을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만 하시면 이 친구가 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믿음 좋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붕을 뚫고서 친구를 달아내렸을 뿐이었습니다. 어떤 믿음의 행동을 보여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을 보시면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친구를 달아내린 행동! 그것이 주님이 보시기에는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 앞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주님께 데려간 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아말렉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될 거라고 믿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던 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말렉을 만날 때에 산꼭대기부터 올라가야 하고, 육적인 싸움과 함께 영적인 싸움도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말렉과 싸울 때에 1순위는 늘 육적인 싸움입니다. 우리는 혹시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일단 싸워보고 안 되면 그 다음에, 나중에 가서 할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운 문제로 인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병들고, 갖고 있던 재산도 다 허비해 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남은 것은 절망밖에 없어서 자살을 선택하려고 할 때에 곁에 있던 누군가가 얘기를 합니다.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안 해 본 것이 없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 당신이 기도해 본 적 있는가? 마지막으로 기도해 보라.’ 이런 충고를 듣고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통해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주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 일단은 내 노력대로 해보고 안 되면 기도하는 거구나.”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왜 온갖 노력을 다하고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게 될때까지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기도로 일어납니까? 처음부터 기도하면서 일을 했어야 됩니다. 처음부터 기도하면서 일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인간적인 노력만 하는 것은 인본주의이고 불신앙적인 모습입니다. 또 한편으로, 기도만 하고 아무런 싸움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주의나 신비주의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싸움과 모세의 기도!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하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싸움보다도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고, 세상 사람들과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전쟁에만 힘을 쓰면서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많은 군사들, 좋은 무기들만 있으면 될 것처럼 생각하면서 육적인 전쟁에만 골몰합니다. 하지만, 왜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을 수 없습니까? 산꼭대기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꼭대기에서 모든 만물을 움직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전쟁을 잘 한다고 해도, 산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승리케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을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세의 곁에서 아론과 훌이 도와줬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중보의 손길들을 붙여주실 것이고, 비록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의 천사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은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셔서 승리의 기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고, 하나님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아말렉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기 위해서라도 아말렉의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말렉의 공격에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아말렉을 향해서 대신 싸워주셔서 우리 또한 여호와 닛시의 단을 쌓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얼마나 쌓아 봤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내게 승리를 주셨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아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혹시, 우리가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을 수 없었던 것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았던 것 때문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여호와 닛시의 제단은 결코 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므리바에서 ‘하나님이 과연 우리 중에 계신가 그렇지 않은가!’하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므리바에서 여호와 닛시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산꼭대기에 서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삶 가운데 어떤 아말렉이 우리를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먼저 믿음으로 산꼭대기에 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산으로 오르지 않으면 르비딤은 므리바 되고 맙니다. 산으로 올라가야 르비딤이 여호와 닛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이곳이 모세가 올랐던 그 산이 되고, 이곳에 믿음으로 올라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나아가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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