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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고르반! (막 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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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반! (막 7:9-13) 

 
❚고르반!

요즘 제도의 본래 의도는 참 좋은데 사람들이 그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어떤 회사원이 1억 원의 빚을 지고 생계곤란 사유로 ‘개인회생신청’을 했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이 사람은 2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개인 빚보다 두 배나 비싼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팔지 않고 빚만 탕감 받으려는 얌체족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이 진 빚을 갚지 않거나 탕감해 주는 ‘개인회생신청’이나 ‘개인파산제도’는 재정적 어려움과 과도한 빚 때문에 힘들어 하는 서민을 위해 만든 좋은 제도인데 돈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를 빚을 안 갚는데 악용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네요. 심지어 거액의 재산을 가진 갑부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혹시 며칠 전 이런 뉴스 난 것 보셨습니까? 한 방글라데시 여자가 가짜 여권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해서 두 번의 위장 결혼을 하고, 허위 이혼을 하고, 허위 ‘한부모 가정’ 수급자 신청을 해서 매달 돈을 받아내는 등 한국의 행정, 사법기관을 농락했다는 것입니다. 푸슈파라는 이 여성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국제결혼 여성들도 이렇게 돈을 타낼 수 있도록 브로커 역할을 해 거액의 돈을 벌고, 게다가 그들에게서 매달 돈을 뜯어내다 구속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 여성들이 국제결혼을 해서 들어와 있고 이들을 돕기 위해 만든 여러 제도가 있습니다. 

부모 중 한 분만 자녀와 같이 사는 가정을 돕기 위해 만든 제도가 ‘한부모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데다가 이렇게 수법도 점점 교묘해져서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제일 나쁜 것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다 흐려놓듯이 이런 몇몇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 제도가 가진 너무나 좋은 의도가 흐려지고 자칫 사람들로 하여금 “왜 그런 걸 만들어서 괜히 귀한 혈세만 낭비하냐”고 비난을 받아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고르반’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고르반, 좀 더 정확하게 발음하면 ‘코르반’은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가리키는 낱말로 레위기 1장이나 민수기 7장에서는 ‘예물’이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점차 이 고르반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겠다고 맹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르반’이라고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다. 그러니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 

심지어 본디 이 예물의 주인인 나도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엄중하게 선언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르반’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일단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맹세한 예물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 정신이 얼마나 귀한 제도입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다른 용도로 절대 사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깝다고, 혹은 내가 급하다고 해서 다른 데 쓰면 안 됩니다. 또 일단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드려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 아까워서 못 드리겠다”든지 “내가 일단 급한 일이 있어 먼저 써야겠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일단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든지 그 누구든지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이 대신 차지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그런데 왜 이 좋은 신앙적인 제도가 문제가 된 것일까요? 사람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일단 ‘고르반’ 하고 맹세한 경우, 그것이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취소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못된 자식들이 이 맹세를 악용하여 부모를 공양하기 싫을 때 대는 핑계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재물이 있더라도 부모에게 드리기 싫고 부양하기 싫으면 그 재물을 앞에 두고 ‘고르반’ 하고 선언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하나님 핑계 대면서 부모 공경의 책임을 회피하는 참 참 못돼먹은 자식들이지요.

❚부모 공경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당연히 어버이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주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오늘 한 번만 하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어버이날에 한 번만 감사하고 꽃 달아드리고 선물 드린다고 다가 아닙니다. 평생 동안 계속해서 부모를 공경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성경 또한 이 부모 공경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서 수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구약의 모든 율법을 압축한 십계명의 제5계명이 이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십계명은 1계명부터 4계명까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명인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이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게다가 이 5계명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붙어있기 때문에 에베소서 6:2에서는 부모 공경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2)

이 계명이 더욱 특별한 것은 다른 계명은 모두 시한(時限)이 없는데 이 부모 공경 계명만 유효 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살인 간음 도적질이야 언제든지 안 하면 그만인데 부모 공경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만 가능하고 돌아가시면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이렇게 부모 공경을 말씀하는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두 가지로 살펴봅니다.

첫째,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부모를 존경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없이 억지로, 건성으로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거나 좋은 선물만 사 드린다고 효도가 아닙니다. “어버이날이니까 상품권 하나 드리고 말자.” 아니면 “돈이나 조금 부쳐드리자.” 이런 것은 참된 부모 공경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요즘 효도는 부모를 잘 부양하는 것만 생각하나 개와 말도 모두 부양은 하고 있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개 말을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얼핏 들으면 요즘 누가 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중국의 공자가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와 말도 먹을 것을 주어 제 부모를, 새끼를 부양합니다. 그런데 부모에 대해서 부양만 하고 마음으로 공경하지 않는다면, 개나 말과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이 세대를 꾸짖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 세대를 두고 꾸짖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둘째,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또한 물질적으로도 부모를 섬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부모를 부양하고 돌보아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제일 먼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자신의 모든 수입, 수확한 곡식이나 과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제일 먼저 바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에게 일부를 드려서 부모가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그 양이 10분의 1이나 10분의 2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내 수입 전체 중에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부모님에게 10분의 1이나 10분의 2 드리고 나면 나한테 돌아오는 몫은 70퍼센트도 안 됩니다. 게다가 예수님 시대는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였으니 로마에게 세금 내고 뭐 떼고 뭐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은 이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에이 너무 아깝다. 이거 갖고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이야? 하나님한테 드리는 십일조도 사실 별로 드리고 싶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 눈치가 있으니 안 할 수도 없고, 로마에게 세금 안 냈다가는 당장 요절 날 테니 안 낼 수도 없고...”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제일 만만한 게 바로 부모 공양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더라는 것이지요. 부모에게 드리는 수입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궁리를 했지요.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이 아까운 재물도 안 드리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욕도 안 먹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기가 막힌 묘안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게 바로 ‘고르반’ 제도입니다.

특히 예수님 시대에 이 ‘고르반’ 제도는 정말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르반은 “말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7장 11절 말씀을 다시 읽을까요?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여기서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할 때 “하기만 하면”이란 “말만 하면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께 고르반 예물로 바치는 것도 아니고 말로만 “이건 고르반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겁니다.” 하고 말로만 하고 끝났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그 예물은 당연히 부모에게도 안 드리지만 나중에 하나님께도 안 드리고 슬며시 떼어먹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참 머리 좋아요. 이런 데는 정말 기가 막히게 머리 잘 돌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고르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고르반을 지킨다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을 사람이 만든 제도와 계명을 따른답시고 하나님이 정한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먼저지, 어떻게 사람이 정해놓은 제도나 계명이 먼저냐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르반이라는 사람이 만든 제도 핑계를 대며 악용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약속 있는 첫 계명, 하나님의 엄중한 계명을 불순종하는 못된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대판 고르반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고르반을 악용하고 핑계로 삼아 부모 공경을 무시한 못된 자식들이 있었지만 오늘날도 이 ‘현대판 고르반’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고르반은 바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핑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부모를 마음으로 공경하고, 물질로 공경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 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홀로 되신 아버님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도 자주 못 드립니다. 한 마디로 불효자지요. 자, 그렇다면 저에게 고르반이 도대체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이 ‘바쁘다’는 핑계, “목회하느라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아세요?” 하는 핑계가 바로 ‘고르반’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고르반이 있습니까? 저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공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가 고르반이지요. 혹시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키울 때 바쁘다는 핑계를 대셨던가요? 아니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가장 먼저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돈이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고르반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우리를 기를 때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팽개쳤던가요? 아니요. 오히려 가난해서 당신들은 굶주리더라도 자식은 먹였습니다.

그 다음에 현대판 고르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자식들 키워야 하니 부모님 섬길 여력이 없다”는 핑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도 자식들 키우려니 너무 힘들어요. 요즘 애들 키우는 일이 옛날하고 얼마나 다른지 아세요? 요즘 유치원 보내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애들 피아노 시키고, 영어 가르치고, 태권도 가르치고, 또 수학을 너무 못해서 수학 과외 시키고 등등... 애들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뼈 빠지게 벌어 와도 맨날 적자에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부모님 드릴 돈이 없습니다.” 누가 자식 잘 키우지 말라고 했습니까? 손자 손녀 잘 키우고 잘 가르치는 일이야 할아버지 할머니도 당연히 기쁘게 생각하시지요. 

하지만 이게 핑계가 되어 내 사정, 내 형편 때문에 부모 공경하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부모님에게도 죄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형편이나 사정 때문에 어기는 큰 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모님에게도 죄지만 하나님께 더 큰 죄라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고르반을 생각해 내고, 그 고르반을 핑계로 부모공경의 계명을 저버리고 있는지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데 아무 핑계도, 고르반도 없으셨던 분들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고르반’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고르반은 우리가 생각해낸 핑계입니다. 하지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영원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시한(時限)이 있는 계명입니다. 바로 지금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나의 고르반은 무엇인가? 오늘 나의 온갖 핑계들은 무엇인가” 깨닫고 이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계명인 부모공경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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