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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기쁨의 함성을 외쳐라 (시 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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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기쁨의 함성을 외쳐라 (시 47:1-9)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안타까와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별한 사진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Sight Unseen: 보여지지 않는 시각’이란 사진전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작품들을 전시한 것입니다. 이 사진전은 11번의 세계 순회전을 통해 TIME, BBC 방송, HBO 다큐멘터리 등에서 극찬을 받았는데, 12번째 전시회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각 장애인이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이 사진전에 가 보면 시각 장애인 사진 작가들이야 말로 가장 꾸밈없고 명확한 시야로 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진을 촬영하기 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향기, 감촉 등 오감을 이용하여 앞에 무엇이 있는지 심안으로 떠올려 상상을 바탕으로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몇 작품을 보았는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사진전을 통하여 무언가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꼭 눈에 보이는 것만 실재일까?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산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산 사람의 삶이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일까요?

윌리엄 로우 (William Law)는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에서“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도는 가장 많이 기도하거나 가장 많이 금식하는 성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많이 구제하는 성도도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보기도로 새벽기도회가 새롭게 시작되는 주일, 주님은 우리 믿음을 새롭게 점검해 주십니다.
시 47:1 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하나님께 기쁨의 함성을 외쳐라. 
찬양을 하여도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은 기도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금방 “물론이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매일 기도 하십니까?" 라고 물을 때도, 즉시 “예, 매일 기도합니다.” 라고 대답할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 “당신은 하나님을 매일 찬양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당황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살면 마음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그러나 찬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기도를 열심히 하여도, 찬양하지 못하면 기도가 얼마 안가서 힘을 잃을 것이라는 하셨습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려는 것은 진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어떤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지를 분별해 주는 특징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송하는 것을 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표시가 납니다. 찬양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일평생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전도자들도 전도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전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기도는 다른 종교에도 있습니다. 우리 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찬양이 그친 것은 기도가 그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하나님은 그 영원한 나라의 왕임을 알게 되면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절 주님은 두려워할 지존자이시며, 온 땅을 다스리는 크고도 큰 왕이시다. 

5절 환호 소리 크게 울려 퍼진다. 하나님이 보좌에 오르신다. 나팔 소리 크게 울려 퍼진다. 주님이 보좌에 오르신다. 

스포츠 영웅을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고, 아름다운 봄 꽃이 피어난 산과 들을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는데, 하나님을 바라보고서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6절 시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시로 찬양하여라. 시로 우리의 왕을 찬양하여라. 시로 찬양하여라.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천국의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다만 인간이지만, 찬양할 때는 천사와 같이 됩니다.
찬양은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가장 분명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여전히 이 땅에 살지만 천국의 삶을 시작하였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기를 희망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낯선 사람에게 어찌 천국이 천국일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우리는 찬양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애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면서 왜 찬양을 하라 하셨는지 비로서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날마다 이 노래들을 연습했습니다. 죄와 고통의 세상에 있었을 때에도, 연약한 육체로 인하여 눌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 땅과 죄와 육체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으니 더욱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답답한 마음을 글로 올려 주셨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한 성도가 땅에 너무나 많은 것을 준비하며 사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여전히 땅의 것을 준비하는 그 분께 저는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이젠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써보세요." 라고 말입니다. 

그 분의 아내인 집사님은 옷이 수백 벌이나 되어 방 하나에 다 걸어두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괴롭습니다. 어떤 권면도 못하는 제가 말입니다.’

천국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47편 말씀이 생소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천국, 만왕의 왕, 하나님, 이런 말이 어색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고 찬양이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한 청년이 제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21살이 된 자매입니다. 신앙은 모태신앙이지만 제게 주님은‘제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제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실 뿐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의 꿈을 이루어주시기만 갈망할 뿐입니다. 나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일이 제게도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제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주님이 물으실 때, 네, 라고 대답할 수 가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는 구절에 대하여도 같은 질문을 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찬양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저절로 찬양하게 됩니다. 이렇게 찬양하게 되어야 진짜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숩니까? 오직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빛으로 비추이기 시작하면 찬양이 시작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Rip it Up]이란 책 소개 글을 읽었습니다. 주문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리처드 와이지먼 이란 분이 쓴 책인데, 한 마디로 행동이 마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성큼성큼 걷는 이는 발을 질질 끄는 이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우울증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지 못하도록 주름이 생기는 부위에 보톡스 주사를 놨더니 효험을 봤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지금 삶이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지배하는 습관과 이별해 보라. 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면 노화도 늦춰진다. 습관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깊은 신앙의 책은 아니지만 제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영화나 연국에서 연인 역을 맡아서 연기하던 배우들이 실제 사랑에 빠진 사례가 많다는 것입니다.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함께 찍다가 사랑에 빠졌고,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도 2005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부부로 출연했다가 실제 연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은 배우들이 영화를 찍다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생면부지의 남녀를 짝 지우고 박자에 맞춰 함께 호흡을 하거나, 연인처럼 서로 눈을 오래 응시하게 했습니다. 몸이 닿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게도 했습니다. 실험 후, 참가자 대부분이 상대방에 대해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일부 남녀는 그 사이 시키지도 않은 키스까지 진도가 나갔다는 것입니다. 

엡스타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인처럼 행동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사랑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바꿀 때 최고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님이 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제게 도전하셨는지 깨달아졌습니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서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친밀함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신 주 예수님을 24 시간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냔 말입니다.

주 예수님과의 친밀함은 어느 날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보기로 결단하고 매일 24 시간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렇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신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기는 비밀이 찬양에 있기 때문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한번은 그 어머니 캐롤라인이 마침 남편이 전도 여행을 떠나고 집에 아이들 셋만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내용인 즉 가뭄으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다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신이 노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밤이 깊어지면 처치하자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캐롤라인이 질겁했습니다. 대책이 없어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멋쩍어하다가 하나 둘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시 찬송 중에 임하셔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찬양이 능력이 있는 것은 찬양할 때,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만 찬양드린다면 그것은 얉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때 그 분의 손에 키스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 거두어 가실 때에도 그 분을 찬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그 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수많은 난관을 거쳐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후 복수의 연쇄 고리를 끊어버리고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을 하나되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강경론자들은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그냥 용서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불평하였지만 그는 그들을 설득하며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평전에 보면 한 재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고는 반 드 브렉이라는 백인 경찰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열 여덟 살의 흑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바베큐 고기처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불에 그을린 사람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시인하였습니다. 게다가 더 끔찍한 일도 드러났습니다. 그 소년을 살해한 뒤 그 소년의 집으로 가서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불을 지른 다음 소년의 아버지를 묶어서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더 악질적인 것은 소년의 어머니로 하여금 그 장면을 강제로 지켜보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남편을 잃은 노부인에게 판사는 "법정이 반 드 브렉씨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 가지 요구를 했습니다.

1. 남편과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반 드 브렉 씨가 남편의 시신을 불태운 장소로 가서 그 재를 모아주었으면 좋겠다. 

2. 반 드 브렉씨가 가족들을 전부 죽였지만 나는 그와 함께 나눌 사랑을 아직 가지고 있기에 한 달에 두 번은 우리 집으로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다. 그에게 엄마 노릇을 해주고 싶다. 

3. 그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진심으로 용서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하기 위해 그를 한번 안아봤으면 좋겠다.

이 말을 하고 그 부인이 반 드 브렉씨를 안기 위해 증인석으로 걸어가는데, 법정 안에 있던 누군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 두 사람 그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반 드 브렉씨는 그 찬양을 끝까지 듣지 못했습니다. 졸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비참하게 죽였던 그도 그 상황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벽에 다 함께 모여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그러나 마음에 찬양을 부르며 모입시다. 찬양이 사라지면 기도도 사라지고 맙니다.
역경이 왔을 때, 원망 불평 낙심 대신에 찬양을 합시다. 
사단이 화가 날 때까지 찬양합시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괴롭혔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를 괴롭히기 원합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영적 분위기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찬송이 일어나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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