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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 롯의 분열 (창 13:5-13) 

성경에서 애굽은 언제나 세상을 의미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세상의 유혹에 빠졌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아주 내려간 것은 아니고 잠깐 기근을 피하려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영적으로는 그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유혹에 잠시 빠졌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애굽에 내려가서 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일을 하게 되면 큰 위기가 오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브람은 죽고 그의 아내 사래는 바로 왕의 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를 건져주시고 아브람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생의 어려움을 당해도 우리를 도와줄 분이 계십니다. 환난 날에 만날 우리의 큰 도움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큰 위기를 겪었지만 아울러 수지도 맞았습니다.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창 12:16). 

바로 왕이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누이인 줄 알고 취하려고 했을 때 육축과 노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래를 돌려주면서 예물들을 다시 돌려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2). 

그런데 아브람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조카인 롯까지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창 13:5). 

그런데 둘 다 부자가 되니까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창 13:7). 

창세기 13장은 성경이 최초로 기록하고 있는 물질적 부요의 위험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것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재물이 많아도 그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나는 청지기라는 의식만 있다면 부자라고 해서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부요가 주는 위험성을 여러 곳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Ⅰ. 부의 위험성 

신약성서는 재물이 많아지게 되면 위험하다고 자주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9).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막 10:25). 

약대는 낙타를 말합니다. 그리고 바늘귀는 예루살렘에 있는 낮고 좁은 문을 말합니다. 그래서 낙타와 같은 큰 짐승이 바늘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부자들도 천국에 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재벌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부자이면서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마 27:57). 그는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돈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자신이 죽으면 쓰려고 사놓은 큰 바위 무덤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냥 일반 무덤도 아니고 바위로 만든 무덤이었으니 얼마나 비쌌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아브람도 부자였으면서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창세기 13장에서만 아브람이 여호와께 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두 번 나옵니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4).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 13:18). 아브람은 부자가 되었어도 마음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항상 예배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다윗 왕도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시 62:10). 

재물에 마음을 두면 허망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에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얼마나 힘이 있냐면 하나님과 주인 자리를 두고 다투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돈 중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교회 나갈래? 교회 안 나가는 대신 재벌 될래?” 이렇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고민이 많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재물은 경히 여겨야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부요를 겸하여 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이 가진 부요는 10년이 지난 후 아브람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 16:1). 애굽 여자인 하갈은 아브람의 여종이었습니다. 언제 아브람의 여종이 되었습니까?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 왕이 준 노비 가운데 하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75세 때는 하갈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85세가 되어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자녀는 태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아내는 점점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사라지자 아내인 사래가 여종 하갈을 취해 자녀를 낳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자녀가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람 가정에 불화를 가져다주었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스라엘과 다투는 민족이 되어 그 갈등이 여전히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워낙 그릇이 큰 사람이라 물질이 들어와도 금방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10년 뒤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워낙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부의 위험성이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창 13:5). 

아브람의 조카 롯은 아브람과 동행하며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양도 생기고 소도 생기고 하니까 독립선언을 한 것입니다. 롯은 아브람이 따라가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롯의 마음이 부요를 더 사랑하게 되어 마음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사람이 돈을 사랑하면 믿음을 떠납니다. 그리고 결국 많은 근심이 자신을 찌르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고 부를 사랑한 롯은 그 인생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다가 유황불비를 피해 도망가면서 아내도 잃고 딸 둘로부터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는 수치스런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롯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하려다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돈을 경히 여겨야 되겠습니다. 

Ⅱ. 부로 인한 분열 

애굽에서 얻게 된 재물은 아브람과 롯 개인에게 각각 위험한 것이기도 했지만 아브람과 롯의 관계도 해치게 되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창 13:6). 

동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유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싸운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올 때까지 긴 여행에서도 그들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왔을 때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죽을 위기가 와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물이 많아지자 가정의 분열이 생겨난 것입니다. 유산상속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형제들의 우애가 깨지고 소송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이것은 아브람과 롯 이후로 인류역사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부자뿐만이 아니라 작은 액수의 돈 때문에도 가족 간에 의가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브람과 롯의 분열은 작게 보면 가정 분열이지만 크게 보면 교회 분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교회 분열인 것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는 아브람과 롯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 롯이 갈라졌다는 것은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창 13:7). 

아브람과 롯의 목자가 다투는데 거기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함께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은 그 땅에 거하는 이방족속들이었습니다. 불신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아브람과 롯이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신자들이 믿는 성도들의 다툼을 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싸우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우리나 별 차이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다투고 싸우면 예수님을 전하는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의 가정이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저녁만 되면 싸운다고 해봅시다. 1년 중에 200일 동안 부서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때리는 소리, 우는 소리가 나고 조용한 165일은 알고 보니까 남편이 출장 간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 앞에 강남중앙침례교회 교패를 붙여놓고 주일이 되면 성경책 들고 교회에 가다가 아랫집 사람을 만나 예수님 믿고 교회 나오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이나 잘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횟수가 많아져서 남들이 보기에도 심각해지면 예수님을 전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내부에서 다툼과 싸움을 쉬지 않는다면 불신자들은 어디서 복음을 듣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려는 원수들은 밖에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와서 내분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두 종류의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주의 교회라는 집단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니까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몰래 들어와서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내분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단들입니다. 이단들이 자기들끼리만 이단교회를 만들어서 지내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포도원에 몰래 들어가 열매를 따먹는 여우처럼 교회에 들어와서 목회자와 성도 사이를 이간질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니까 이단을 막는 것입니다. 이처럼 외부에서 들어와 교회를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성도들 간에도 탐욕이 생기고 물질을 사랑하게 되면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Ⅲ. 아브람의 해결책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신자들도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분열의 위기를 해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고 해결하려고 나선 것입니다. 아브람과 롯은 둘 다 참된 성도입니다. 천국에 가면 롯도 볼 수 있고 아브람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신의 정도가 달랐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에게 100% 헌신되었고 롯은 반반이었습니다. 헌신의 정도가 달라도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남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교회에 오려고 하는데 아내가 헌신이 덜 되어 지각하면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는 십일조를 낼만한 믿음이 있는데 남편은 왜 교회에 그런 것을 갖다 주냐고 해서 싸우기도 합니다. 둘 다 불신자는 아니지만 헌신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롯도 헌신의 정도가 달라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둘 사이의 차이점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무조건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켜 강압적으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의 방식입니다. WCC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달라도 무조건 하나로 뭉쳐서 세계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합을 위해서 진리를 희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교는 WCC에 가담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WCC와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고 두 번째 방식을 취했는데 그것은 더 강한 자가 양보하여 평화로운 분열의 길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분열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분열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같이 붙어서 맨날 싸우고 이방인이 그것을 보고 교회를 욕하는 것보다는 평화스럽게 갈라지는 것이 최선책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화스럽게 갈라지기 위해서는 강한 쪽에서 먼저 양보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작은 아버지이지만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 13:10). 

그러자 롯이 그래도 작은 아버지가 어른이신데 먼저 택하시라고 빈말이라도 하지 않고 얼른 눈을 들어보니 물도 많고 땅이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쪽을 택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조카와는 싸워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먼저 선택권을 준 것입니다. 

이처럼 손해를 보더라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려고 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만 배, 억 배로 복을 내려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14~17).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시더니 동서남북 보이는 대로 너와 네 자손에게 다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쩨쩨하지 않으십니다. 말 한마디라도 후하게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두쇠처럼 쩨쩨하게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낭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인천 출신인데 어렸을 때는 인천을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인천사람들이 짜다고 소문이 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어떻게든 서울로 가려고 경기고등학교로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중동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쩨쩨한 것을 지금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셔도 짜게 주시지 않으시고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롯은 유황불비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롯이 잘못해서 심판이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큰 죄인이었는데 롯도 거기서 같이 살다보니까 심판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롯은 빠져나오게 하셨지만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의 두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자식을 낳는데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을 대대로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세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보려고 한 아브람에게는 하나님이 만 배, 억 배로 갚아주셨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 롯은 만 배, 억 배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 

아브람의 시선은 물질이 늘어나도 물질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물질로 시선이 돌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를 나와도 교회에 나오면 부자 된다고 해서 나오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면 감사한 것이고 주시지 않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부자가 되어도 우리가 그것을 바라고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하나님에게 둬야할 줄로 믿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어야 물질적인 부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10:22). 

롯의 길은 부를 얻었지만 근심이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길은 부를 얻으면서도 축복이 함께 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롯의 길을 따라가지 마시고 아브람의 길을 따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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