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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서 있는 신앙 (살후 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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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있는 신앙 (살후 3:6-15) 

지난 주 월요일에 미국 오클라호마에 토네이도로 인한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바람에 날려버렸습니다. 초등학교 두 곳과 병원까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자연의 힘을 보면서 마지막 날에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의 힘과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 지역도 바람으로 인해 전기가 끊긴 곳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기가 끊어지면 전화도 되지 않고, 냉장고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차고의 문도 열고 닫을 수 없고, 밤에는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는 한 없이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더욱 악한 모습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종말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을 접한 사람들은 이런 혼란에 쌓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방탕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도 있었고,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생활 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런 무질서한 삶을 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질서하게 산다는 것은 종말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팽개치지 말고 건전한 신앙 원리에 입각해서 성실하게 살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전쟁터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 생활이 오래 될 수록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교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질서 있는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질서 있는 신앙생활을 살기 위해서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6절 말씀에서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을 포기하고 나태한 모습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교회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서 "자기와 함께 전도여행을 한 동역자들이 스스로 일을 하던 모습을 본받아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질서한 것은 8절에서 말씀하는데, 공짜로 밥을 먹지 말고, 주야로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 가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나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할 때,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전도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고, 안디옥 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수고하며 밤낮으로 일을 해야지만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의 사역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자기의 모습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서 있게 살라는 말은 너무 게으르게 살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많이 벌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그것을 강조합니다. 

개역성경에는 이것을 규모 있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전한 신앙인은 오늘 예수님의 재림이 온다고 해도,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지름길로 가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성실하게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질서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다가 일상 생활의 일을 저버린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와 전도의 열정이 식어가면서 게을러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게으른 사람들의 모습이 성실히 일하며 선을 행하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게으르게 살며, 일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절 말씀에서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같이 붙어 있으면서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고쳐 주어야 한다며 무모하게 뛰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들을 쫓아내 버려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합니다. 무모하게 다가가지도 말고, 그들을 쫓아내지도 말고, 우리 스스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의 방법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한 삶을 살다가 다른 사람들의 신앙 생활을 보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지칠 때가 있고, 주위의 많은 반대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져서 회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질서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죄목은 게으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며 게으름을 피웁니다. 자기만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그들의 더욱 큰 심판을 받게 될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게을러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고 더 힘들게 만들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서로 힘을 합하여 열심히 일하고, 함께 나누는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동 생활을 하던 초대 교회에서 모두가 함께 일해야 하는데, 자기는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만 일하게 하고, 그들에게서 생활비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자기들은 재림 신앙을 갖고 기다리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들처럼 생활하기를 권하며 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6:9절에서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선을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더욱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을 위해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지혜롭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신앙 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을 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14절에서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앞서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떠나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과 함께하지 말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감정에 치우쳐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은 불순종하는 자를 감싸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야 할 것을 내가 대신 용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까지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 밖의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순종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을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교회 안에서 따돌리지 말고, 스스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말입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은 채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절대로 그 사람을 원수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불순종하는 자를 강력히 다스리면서도 이런 관계가 오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원수같이 여기지 말고 친구로 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질서 있는 신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은 스스로를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은 무위도식 하려는 행위를 버리고 성실하게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 게으른 사람이 있다고 해서 함께 게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악한 사람들이라고 경멸해서는 안 된다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 질서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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