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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기뻐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 (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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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 (고후 6:1-10)


오늘 본문 첫 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합니다. 이 말의 뜻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그 바로 앞에 쓴 5:19-21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과 함께 볼 때 본문 1절 상반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한 말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하라고 부탁하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1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죄인 삼으시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의인으로 인정받게 하실 뿐 아니라 이 놀라운 화목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도록 사도를 통해서 권면하시고 간청하시는 그 엄청난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은혜가 헛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자체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헛될 수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는다는 말은 아마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으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전하는 복음을 배척하거나 귀로만 듣고 응답하지 않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내세우셔서 부탁하신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권면과 간청을 외면하거나 불순종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이 화목의 복음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을 한 사도 바울은 그 당위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49:8에서의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사도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때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르렀다고 쓰며 이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을 헛되이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듣는 것 자체도 은혜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듣고 이에 응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복음을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전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자신의 직분이며, 그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부탁하신 일이며,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는 일이라는 확신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한 비범한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고 봅니다. 그가 그의 직분을 어떻게 대하며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 본문 3-8절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첫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의 직분이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본문 3절 상반절). 그리고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에 있어서나 그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으려 했습니다(본문 3절 하반절). 또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했습니다(본문 4절 상반절). 억지로 마지못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숱한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들이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본문 4절 하반절과 5절이 보여주는데 곧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이었습니다. 이런 고난은 아무나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며 변화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은 자로 여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의 직분이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고 무슨 일에 있어서나 그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온갖 고난을 견딜 뿐 아니라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 또는 힘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본문 6-8절 상반절이 보여줍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이러한 도구 또는 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직분을 바르게 수행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무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복음을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전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신 직분으로 여기고, 그 직분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는 일로 확신하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은 항상 기뻐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8절 하반절부터 봅니다: “...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도 바울은 거짓말쟁이라는 비방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도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 무명한 자 즉 사도의 자격이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헐뜯는 소리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15:9)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으며, 둘째는 성도들로부터 열두 사도들을 능가하는 사도, 전도자, 신학자, 교회개척자, 교회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후세에 길이 남는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모로 죽은 자 같았습니다. 실제로 돌에 맞는 등 죽을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세상적인 욕망이나 소유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았고 끊임없는 비방과 모략과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살았으나 죽은 자같이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죽은 자 같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살아있었습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의 소망과 확신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수많은 이들을 구원에로 인도하며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늘 온갖 위험에 놓이곤 했기 때문에 많은 근심에 싸여있는 자 같았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었고 자기 자신은 가난한 자 같았으나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였던 것입니다. 실로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며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현세에서는 박해를 받더라도 내세에 영생을 받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일 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의 말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온갖 비방과 고난을 당하며 죽은 자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 앞에서 자랑할 것을 다 버리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온갖 근심으로 가득 찰 것 같았지만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본문 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의 확고한 소명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본문 3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그 무슨 일에서든 그 누구에게든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원하여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고 세상의 꾀를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본문 6-7절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의 일을 오직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서는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주의 일을 하며 “영광과 욕됨으로” 하고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주의 일을 하며 때로는 영광을 얻을 때도 있고 욕을 먹을 때도 있지만 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나쁜 소문을 들을 수도 있고 좋은 소문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그만을 의지하며 행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라면 우리 또한 사도 바울의 그러한 삶의 자세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에게도 항상 기뻐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살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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