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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증언하시는 책 - 마란아다 (계 2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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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하시는 책 - 마란아다 (계 22:16-21)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주님의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의 삶은 해당된다. 주님의 시간 밖에 머물 자가 없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의 섭리 안에 모든 사람의 삶이 얽혀 있다. 섭리란 하나님이 지으시고 돌보시고 관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다스림의 뜻이다.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았던지 신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의 종국은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자이고 성 밖에 머물게 될 자들이 있다. 도성은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아버지 집이다. 성 안에 있다는 것은 도성을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아버지 집이다. 성 안에 있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성 밖에 있다는 것은 버려둔 것이기에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즉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지막에는 분명히 나누어진다. 요14:1~4을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셨는데 주님의 집에 있지 못하고 성 밖에 있는 자는 불쌍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약속대로...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자. (계22:7)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계22:10)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 (계22:14)

주님은 곧 오시기에 그 주님을 기다리며 말씀을 지키고 말씀을 공개하고, 전하고 구원의 삶을 거룩하게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의 성취에 대해 이렇게 성경은 증언한다.


1. 사자를 보내어 증언한다. (계22:16)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예수님이 사자를 보내어 이것을 증언하게 하는 것은 교회들을 위해서다. 예수님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위하시는가?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요,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다윗의 뿌리란 예수의 신성을 뜻한다. 마22:41~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다음으로 자손이란 예수의 인성을 뜻한다. 롬1:3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렇게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 양성을 지니셨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신 분이다. 누가 이 분과 같을 수 있는가? 또한 광명한 새벽별이란 그분이 메시야임을 말한다. 민24:17을 보면 유다 민족은 메시야를 새벽별로 믿고 그 나타남을 기다렸다. 공중 재림하여 나타나실 빛나는 새벽별, 그는 기름부음 받으신 구원자인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교회를 위하여 이 존귀하신 예수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증언하도록 사자를 보내시는가? 교회는 예수님이 피로 값을 주시고 세우신 것이기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주님의 생명이다.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소유다. 그래서 이 소중한 진리와 기둥의 터인 교회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었다. 오늘 날 교회를 두 짐승이라고 가르치고 교회의 ㅁ고사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라고 가르치는 이 엉터리 가르침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가 우리 주변의 이단이다. 여기에 속아서 영혼을 팔아버린 자들이 많다.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었는데 교회를 헐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사단의 속임수에 빠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하여 사자들이 증언하는 책이다.

그러면 여기서 사자란 천상의 존재인 천사인가? 아니면 인간적 사신인가? 요한계시록의 사자는 대개가 하늘의 영적 존재다. 그러나 여기서 교회 사자는 교회를 돌보는 목사나 감독 같은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독일어 성서에는 아예 교구 주관자라고도 하였다. 이유는 지상의 교회를 하늘의 천사가 주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실제로 사람 지도자의 손에 돌보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이유는 책망과 경고의 말을 하늘의 천사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자는 요한이 알고 있는 수신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자를 사람으로 보아야 요한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사자가 이해되고 일곱 별, 일곱 금촛대와 어울린다. 여하튼 이런 면에서 사자는 하늘 천사라기보다 지도자들이다. 

우리는 그의 보내심을 받은 올바른 사자들이 되자. 주님을 제대로 모신 종들이 되자.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증언하자.
  

2. 성령과 신부가 증언하신다. (계22:17)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 초청하는 이가 누구인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증언하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성령과 신부이시다. 성령은 교회를 움직이는 보혜사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증언하는 구속의 대리자이다. 성령은 신부로 표현된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며 사람을 오라 하신다. 신부인 교회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오라고 증언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다. 요한계시록의 드라마를 시작하고 완성한 열쇠를 들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다. 보혜사 성령과 교회로서의 신부는 이 예수를 통해 얻는 생명수를 증언한다.

요한계시록은 결국 생명수이신 예수를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에 눈을 떼지 말라. 예수에게 귀를 기울이며 예수만을 기대하라. 예수만을 높여라. 예수를 자랑하라. 예수가 모든 열쇠를 쥐고 계신 지존자이시다.
  

3. 요한 사도가 증언하신다. (계22:18~19)

계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그렇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다. 아니 요한계시록의 말씀 속에는 구약을 348회나 인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 전체를 말하는 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증언하는 것은 이 말씀에 대하여 가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들 외에 더하는 자, 재앙을 더할 것이요 이것들 외에 빼어버리는 자, 생명나무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날 성경 이외에 성경을 완전하게 한다고 다른 경이나 다른 계시의 책을 붙이는 이들이 많다. 자신들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보혜사라고 말하면서 더하기 하는 이런 죄는 성경에 나오는 재앙을 덧입을 일이다. 그리고 성경의 기적 이야기를 믿지 못하여 과학적, 인본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성경의 사건을 가위질하고 난도질하여 빼어버리는 자들이 있다. 사람의 구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성서를 신화 책으로 돌리려 하며 성경 곳곳을 말씀이 아니라고 빼어버리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안전한 아버지의 집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님은 마24:35에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요한계시록도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요한은 두루마리 예언을 본 자요, 들은 자요, 기록한 자로서 증언하고 있다.
  

4. 예수님이 직접 증언하신다. (계22:20)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의 될 일을 증언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의 완성을 위해 이렇게 선포하신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진실로 속히 오시겠다는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의 끝은 속히 오시리라는 것으로 맺고 있다. 

이는 주님의 소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어서 와서 신부를 취하고 싶은 신랑의 간절한 소원인 것이다. 뒤죽박죽의 역사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역사의 종국이 희망과 사랑, 환희의 미래이기에 그 신부를 만나려고 하시는 주님의 간절함인 것이다. 그분이 오시므로 요한계시록은 다 완성된다. 오셔야 환난도, 휴거도, 천 년 왕국도, 백보좌 심판도, 도성 안에 거하는 천국도, 사탄이 들어갈 둘째 사망도 다 완성된다. 

주님이 속히 오시리라는 주님의 소원,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과 성취를 위해 오실 주님의 소원을 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고대하고 외쳐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세요.” 이것이 신자의 환희요 오늘을 사는 설레임이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신자의 순정이다. “오지 마세요. 아직은 아니예요. 조금 있다가요.” 등 이는 믿는 자의 기다림의 신앙이 아니다. 무엇인가 거리낌과 죄와 불신에 빠져 있는 문제아 성도의 자신 없는 모습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1은 축도로 끝을 맺는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부 하나님도 아니고 성령 하나님도 아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 요한계시록!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하고 끝을 맺는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시작도 계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 것이다. 고통을 받고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신랑되신 예수께서 역사의 주인공, 환난 시대의 주인공, 구원의 주인공, 심판의 주인공, 천 년 왕국과 천국의 주인공, 모든 것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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