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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라 (1. 창조주 하나님) (창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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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라 (1. 창조주 하나님) (창 1:1)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하나님께서 엿새에 걸쳐서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을 날자 별로 구체적으로 증언합니다. 천지만물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어떠한가를 말해 주는 증거물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에 만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고의로 부인하는 완악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잡한 이론이 필요 없이, 우리 각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코로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아있는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사실을 입증합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이 우주만물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만드신 이가 있으며 그 분이 바로 성경에 자신을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갓난아기 때 보육원에 맡겨져서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기의 친 부모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단지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이 사람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를 낳아준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갓난아기 적에 입양된 사람이 자기를 낳아준 친부모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부모가 없이 그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었듯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인간들을 비롯해서 이 우주만물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일컬어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모르는 고아와 같이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가 부모 없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히브리서 3장 4절에 이르기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예배당 건물은 저절로 여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목수들이 지은 것입니다. 강대상과 장의자들과 피아노와 앰프와 스피커, 마이크 할 것 없이 만든 사람들이 있지 원래부터 있었거나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방금 언급한 물건들은 하나 같이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물건들을 만든 기술자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주만물의 광활함과 정교함과 조화로움을 대하면서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우주의 직경이 최소 780억 광년이라고 하며, 계속해서 우주가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1광년은 빛이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 속도로 1년을 달리는 거리를 말합니다. 1억 광년은 빛이 1억년 동안 달린 거리를 말하고, 780억 광년은 빛이 그 같은 속도로 780억년을 달린 거리를 말합니다. 이런 수치는 학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주가 계속해서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는 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게 됩니다. 

현대 과학이 우주를 이해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으나 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과학을 들먹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은 무지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과학의 차원을 초월해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결국 사람들의 두뇌로 연구해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규명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수준이 높을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과연,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할까요? 그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결국,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아무 성과도 거둘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맨 눈으로 우주를 관측하려는 것처럼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무슨 방법으로 얻은 수 있는 것일까요?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두 가지 책을 주셨는데, 그 하나는 ‘자연의 책’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그 마음눈이 어두워서 자연의 책을 통해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해나 달, 별들, 바다, 강, 동식물과 같은 피조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지경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감으로 된 성경책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의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탁월한 두뇌를 갖고 모든 학문을 통탈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고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은 물질이 아니므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오감(五感)으로 하나님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은 그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낮은 차원의 인간이 무슨 수로 한없이 높은 차원에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계시란, 베일에 가려진 것을 베일을 걷어서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감추인 비밀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계시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해 놓은 책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내용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경험의 산물이 아닙니다. 

만약에 성경이 사람들의 저작이라면 세상의 다른 책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지은 책이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책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후서 1장에 이르기를 “20)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계시를 기록할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그런 다음, 그 선택하신 사람을 성령으로 감동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면 그 사람이 받아서 백성 앞에서 선포하고 또한 책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간 저자들이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일컬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술한 책들과 달리 신적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는데, 마태복음 5장에 이르시기를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라도 미래의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은 들어맞고 어떤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없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내용을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이 없이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성경의 종교입니다.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어긋나는 말은 아무리 그럴듯할지라도 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천지 집단과 같은 이단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가르침을 가지고 성경의 의미를 왜곡시켜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은 성경을 공부할 때 반드시 우리 교회 안에서 담임 목사나 담임 목사가 인정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공부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나 담임 목사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배우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이단들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금 창조에 관해서 살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순서로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 이하에 보면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즉시로 빛이 생겨났습니다. 사람의 말은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명령할지라도 풀 한 포기, 하루살이 한 마리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다 함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40장 26절에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절대로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있는 재료를 가지고 가공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므로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만상을 이끌어내시되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니 현실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11)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엿새에 걸쳐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을 존귀하게 대우하셨는지를 말해 줍니다. 창세기 1장 26-28절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전혀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이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메바에서 진화한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고릴라나 원숭이와 같은 부류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다면, 인간은 고릴라나 원숭이의 사촌이 되는 셈입니다. 그들과 다른 점은 좀 더 진화한 것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고릴라는 고릴라로 창조하셨고, 원숭이는 원숭이로 창조하셨으며, 사람은 사람으로 창조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은 전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다른 동물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상관이 없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도 사람과 같은 모양의 육체를 갖고 계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인간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성의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는 지구상에 인간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인정합니다. 반면에 진화론은 인간을 고릴라나 원숭이와 같은 차원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올바르게 알게 되어 인간의 본분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끝없는 욕망을 따라 살고 포악하고 흉측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 동물과 본질상 다를 바가 없다고 믿고서 짐승을 닮아서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인간존중의 사상을 실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의 차이란 하늘과 땅처럼 크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이르기를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를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차원에 놓고 본능과 욕망에 사로잡혀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살아갑니다. 욕망대로 살지 않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서 행합니다. 어느 편이 바르고 고상한 삶인지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하고픈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맞습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이론을 내세우니까 믿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먼저 나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의 고집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 주셔서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빌립보로 건너간 사도 바울이 어느 안식일에 강가에 있는 기도처에 가서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사도 바울의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16장 14절에 이르기를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루디아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것 같지만 실은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신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교만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3분만 숨을 쉬지 못하면 죽고 마는 미약한 인간이 무엇을 믿고 교만하게 굴 것입니까? 내세우는 지식도 버리십시오. 우리가 가진 지식은 한 줌에 불과합니다. 선입견도 버리십시오. 우리의 선입견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질 때가 얼마나 되던가요?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욥기 4장 19절에 보니, 우리 인간을 가리켜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무지하고 무능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히 보시고 우리 마음눈을 밝혀주셔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3)…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고 하셨습니다. 교만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먼저 회개하고 나서 믿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 아무리 오랜 세월을 교회를 출입할지라도 진실한 신앙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믿음을 얻기 전에는 무슨 일이나 육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만 판단했지만, 믿음이 생긴 후에는 무엇이든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이해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대로,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바라는 것들이 실현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큰 민족이 되려면 후손이 번성해야 하는데, 그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가 되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십 구세 난 할아버지와 팔십 구세 난 할머니가 무슨 수로 아기를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해서 볼 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죽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하신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에 보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서도 바라고 믿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나이 백세에 구십 세난 아내 사라를 통하여 독자 이삭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믿음의 위대함을 잘 보여 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이 같이 찬송했습니다.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 

믿음의 사람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 한없으신 능력과 지혜를 찬송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햇빛과 때를 내리는 비가 땅에서 온갖 초목과 곡식과 과목과 채소를 자라게 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합니다. 그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고전 10:31).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자기 영광을 위해서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게 된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심하고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서 살아갑시다. 창조주 하나님을 힘입어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는 권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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