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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마 27: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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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마 27:45-56)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때 거기에 너 있었는가」라는 제하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을 받으실 때 거기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둘러 서 있던 무리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면서 소리를 지르실 때 고통스러워서 엘리야를 부르는가하고 예수님께 해융(흡수성이 강해 솜처럼 사용된 바다 생물)에 신 포도주를 머금어 마시게 하므로 고통을 덜어 주려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마저도 못하게 막으며 저가 엘리야를 부르니 그가 와서 구원하는지 보자고 마음을 강퍅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되어지는 징조를 보고 진정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깨닫고 떨며 두려워하던 백부장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둘째는, 평소에 예수를 섬기며 따르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갈릴에서부터 좇아온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등이었는데 한결같이 멀리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하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다 안고 십자가를 지실 때 평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표적을 보고 따르던 자들이 그리도 많았건만 아예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무리는 더욱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수 더 떠서 오히려 예수님을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무리들도 많았습니다. 배신의 씁쓸한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 반면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밑에까지 나아가므로 그의 어머니를 위탁받은 사도요한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형장은 이미 지나간 역사라 할지라도 한 영혼이라도 건져내시려는 주님의 애타는 심장을 가지고 복음을 들고 나아가 전도하는 현장에 서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 곳이 고난의 현장이며 믿음의 사람들이 전도인으로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일진대 과연 거기에 내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때 거기에 너 있었는가 하고 주님이 물으실 때에 분명히 거기에 있었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의 그 자리, 그 복음전도의 고난의 그 자리에서 주님과 선배들로부터 받은 복음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도망간 제자들 

예수님께서 이렇게 붙잡히시어 고난당하실 때 제자들은 그 고난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였으며, 그 역사적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를 배반하여 제사장들에게 그를 넘겨주었습니다. 그가 왜 배반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생애는 자살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외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모두 도망가 숨어 버리고 말았고, 그래도 그중 베드로 혼자만이 용기 있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까지 예수님을 따라 갔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제자라는 하녀의 지적에 놀라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현장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 그의 시신을 장사지낼 때에도 그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현장에는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만 이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하여 그의 무덤에 장사지낼 때에 그 일은 마땅히 제자들이 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제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식후 첫날 이른 새벽 여인들이 무덤에 달려갔을 때도 제자들이 앞장섰어야 할 일인데도 그들은 두려워 숨어 있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빈 무덤에서 끝까지 남아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부활 후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에 있지 아니하고 모두 피하여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땅히 함께 참여했어야 할 고난과 부활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에게서 배우고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으며, 그가 당하실 고난에 대하여 미리 알고 있었던 제자들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다 예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역사를 외면한 교회들 

오늘날 교회들도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 언제나 빠져 있습니다. 삼일운동 때는 그래도 교회가 앞장서서 만세를 불렀었는데, 해방 후 교회들은 역사적 현실은 외면하고 그저 교회 확장에만 힘써 왔던 것입니다.

4. 19 학생혁명이 일어났을 때 교회가 부끄러움을 당하였고, 5. 16 군사혁명 이후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한참 민주화 운동이 전개될 때 대부분의 교회들은 오직 교회 성장에만 열중하였고, 광주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역시 교회들이 침묵하였고, 그후 집권한 정권에 대하여 교회는 한결같이 협조 내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그후 87년 6월 10일 일어난 항쟁 때에도 교회들은 이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88년에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하였을 때에도 교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이를 거부한 교단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대부분의 교회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제자들처럼, 철저하게 교회당 속에만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가 혹시라도 현실 비판 설교를 할라치면 듣기 싫어했고, 압력을 가하여 그런 설교를 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현실 비판적 인 설교, 예언자적 설교를 기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장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니까 교회는 정치에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하였고, 많은 사람 들이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찍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고난의 현장은 숨어 피하고 영광 받는 자리에는 앞장서 나선 꼴이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것을 자기들 멋대로 상상하면서 그때에 차지할 자리다툼을 하다가 막상 그가 붙잡혀 가시자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말았던 일을 연상하게 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도 고난당하는 역사의 현장에서는 다 숨어버리고, 영광 받는 자리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이런 기회주의적 선택이 결국 오늘의 부끄러움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한 교회가 어떻게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 영광만을 추구하다가 다시 몰락하는 수모를 지금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로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어떤 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고, 그의 정치적 과오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는 치명타를 입고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그 명령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결국 바다에 내던져졌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사흘간 고난을 당한 후에야 억지로 니느웨성을 찾아가 40일 지나면 그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고난의 역사 그 현장에 나가 외치기보다는 요나가 배밑에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교회당 안에만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147장은 바로 고난의 현장을 피하여 숨어 있었던 제자들이나 오늘의 교회들이 부르는 찬송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이 물음에 우리는 대답할 말이 없고 그저 그 일만 생각하면 떨릴 뿐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고난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

그러나 엉뚱하게도 그 고난의 현장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구레네에서 올라온 시몬은 뜻하지 않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월절 축제 분위기와는 다른 흥분에 예루살렘 거리는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몰려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거기엔 세 사람의 죄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중 하나가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어째서 저런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대신 그 십자가를 지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로마 군인 하나가 나를 끌어내어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처음엔 당황하였지만, 완력과 기술은 시골뜨기인 나의 몫이기에 나는 별말 없이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습니다.

골고다 언덕은 이름 그대로 기분 나쁜 곳이었습니다. 그 언덕 위에 죄수를 못박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나는 무엇인가 모를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성전에서는 그렇게 위엄 있고 거룩해 보이던 제사장들이 무엇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얼굴이 그렇게 험악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다지도 야비할 수 있을까! 어린양을 잡아먹은 이리가 피묻은 입을 닦으며 만족해하듯 웃는 그 기분 나쁜 웃음,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성전을 찾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아,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떨려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던 로마의 백부장, 그는 가장 가까이서 그 십자가를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가 사무적으로 죄수를 처형 하는 일을 진행하였지만, 예수께서 운명하시며 일어난 현상들을 보면서 그는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백부장의 고백을 이렇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그분이 비틀거려 넘어질 때마다 채찍을 가하게 하였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부하에게 명령을 하였고, 그분의 피가 광야에 피어난 꽃처럼 그 황막한 언덕에 떨어질 때, 그 곁에서 그분의 옷을 가지려고 제지 뽑는 부하들을 지켜보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드리는 기도를 듣고도 나는 무감각하였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심장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피끓는 저 소리를 듣고도 나는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작렬하던 태양이 그 빛을 잃고 그 동산에 소요가 일던 때에, 나는 그분의 "다 이루었다"는 음성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분 이 사무적으로 처리해 버릴 그런 죄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태양이 빛을 잃고 어둠이 덮였던 날, 나는 가장 무지한 자로 그분께서 고난당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 하면 나는 떨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뜻밖에도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나타나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그 시신을 자기에게 내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부자였고 '존귀한 공회원'이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신분이나 처한 입장을 볼 때 감히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당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가 판 새 무덤에 모셨던 것입니다. 그가 신앙고백을 하였던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분을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으면서도 그분을 위해 변호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몸을 도사렸던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죽은 몸이라도 모시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빌라도 총독에게 그분의 시신을 인계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나를 위해 마련했던 무덤에 그분을 모셨습니다. 

나는 그때 슬픔에 잠겨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어쩌면 나의 모든 소망도 그와 함께 그곳에 묻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분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은근히 기대했고,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인데, 그분은 너무도 허무하게, 너무도 무력하게 가신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기엔 너무 인간적이었고, 너무 약했고, 너무 비참하였습니다. 

그분의 시체가 안치되고 무덤 문이 굳게 봉인될 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내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이 무덤을 뒤로 할 때는 다시 이곳을 의혹과 벅찬 기쁨을 안고 뛰어와 빈 무덤을 들여다 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의회원이라는 체면 때문에 날치기 재판이 진행되던 가야바의 집에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치던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분을 변호하지 못한 채 주저주저 하였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떨려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인들이 바로 그 십자가의 현장에 있었고, 부활후의 빈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갔고, 그중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갈릴리로부터 좇아왔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이 여인들은 제자들보다 강했고 용감하였습니다. 예상치 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 역사의 현장에 있어서 그 현장을 지켜보았고, 그 역사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 잠들어 있었고, 가야바의 뜰에도, 골고다의 언덕에도 있지 않았으며, 찬란한 부활의 아침이 동터 올 때 거기에 있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부끄럽게도 이 민족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언제나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다가 질책과 수모를 당하는 자리에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후 꼭꼭 걸어 닫았던 문을 열고 나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 제자들처럼, 이제 우리도 성령의 충만하심을 힘입어 교회문을 열고 나가 이 민족이 직접 겪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역사와 무관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역사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 가치가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예의 주시하면서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나 갈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중요한 역사의 길목에 빠지지 말고 참여하면서 그곳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며 그 뜻을 따라 살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마지막 날에 칭찬을 받으실 수 있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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