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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슨 말을 더하리요 (히 1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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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더하리요 (히 11:32-38)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을 지냈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주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교회와 교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 갈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세력과 이단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복음의 순수성과 믿음을 지키려다가 20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도시로부터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단들과 타락한 교회와 로마 황제는 자객을 보내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아타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를 지켜보았던 그레고리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정말 겸손하고 낮은 데 마음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덕행은 비길 데 없을 정도로 숭고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쉽게 그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설교할 때 온유했고, 친절했고, 열정적이었고, 그리고 상냥했습니다. 더욱이 그의 삶은 천사이었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부드러웠습니다. 결코 난폭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삶은 항상 설교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닮고 싶어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유한 자들의 부정을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겸허한 자들에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선배들에 관한 기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나의 기쁨이었어. 믿음의 사람, 너희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야.” 결국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오히려 위로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본서의 기자는 선배들의 믿음을 소개하며 그 이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본문 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믿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였다고 말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는 어중간한 교인이라고 하겠습니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을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믿음의 모습을 보였기에 이러한 말이 가능하였습니까?  

첫째로 믿음으로 행하니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쳤을 때 당시 선교단체들이 그를 중국으로 파송해 주지 않았습니다. 실망했지만 허드슨 테일러는 조지 뮬러(George Muller) 목사를 생각하였습니다. 뮬러는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상황에서 주일에도 돈을 벌려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인들에게 더 이상 설교로는 믿음을 가르칠 수 없다고 느끼고 믿음으로 행함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기도로 믿음을 행하며 고아들을 먹이고 입힐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행하는 뮬러에게 웅답을 주셨으며 고아원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테일러는 뮬러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교사로 부르셨으니, 친히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실 것’ 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테일러는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의를 행하기도 하며”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에 통치자는 아합왕이었습니다. 강력했지만 부패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 우상의 제단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우상을 강요했습니다. 연약한 개인이 강력한 통치자 앞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의를 외쳤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데 쓰임 받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고난과 불가능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처럼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기적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이기니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가까운 대정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순교기념비가 있습니다. 1948년 제주도에 4.3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도종(李道宗)목사가 대정교회에 계셨습니다. 그는 17세 때 이기풍 목사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이 목사의 권유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제주 출신 1호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주도에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고, 제주도 전역을 다니며 열심히 순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해 6월 자전거를 타고 화순교회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가던 도중, 산속에서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우고 구타를 하고 크게 파 놓은 구덩이에 생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생매장을 당하는 순간에 찬송을 불렀으며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고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도종 목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3절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땅을 기업으로 삼기 위해서 많은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당당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가 마침내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 여호수아, 다윗, 모두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긴 자들이 되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참으니

폴리캅(Polycarp) 교부가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많은 로마인들이 처형당하는 폴리캅을 보기위해 운집해 있었습니다. 화형을 위해 나무더미를 쌓아 놓았습니다. 집행을 위해 군인들이 묶으려 할 때 폴리캅은 말했습니다. “견딜 수 있으니 묶지 마시오.” 그래서 군인들은 손만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폴리캅 주위에 원형 막이 생겨 불이 몸을 태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로마 군인들은 그를 칼로 찔렀습니다. 그러자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와 주변에서 타오르는 불을 꺼버렸습니다. 이때 폴리캅의 장엄한 순교를 목격한 로마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모습은 순교적 삶을 살며 모든 것을 참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참아야 합니다. 인내로 거룩한 삶을 견지해야 합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의 사람들은 구차하게 살기 위해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좋은 부활을 소망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믿음으로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사야가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의 칼에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더러는 박해를 피하여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피해 다니며 광야를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지키며 버티고 인내했습니다. 보이는 기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버티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변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참고 버텨야 합니다. 모든 것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였습니다. 1902년 6월11일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 회의에 참석키 위해 승선했던 배가 군산 앞바다 어청도 부근에서 사고로 침몰하게 됩니다. 그는 승객 23명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당시 생존자였던 탄광 기술자 보울비는 증언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물에 잠기면서도 한국인 비서와 여학생을 구조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감당 못할 신앙은 죽음을 각오한 신앙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참고 버티며 순교하는 믿음이야말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장애들을 극복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왜곡시키거나 신앙을 흔드는 문화라는 이름아래 믿음을 무너지게 하는 일들이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합니까? 호레이스 만(Horace Mann)은 “순교자로 죽는 것보다 순교자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순교는 순간적으로 끝나버리지만 순교자의 신앙으로 사는 것은 지속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을 보일 때 비로소 ‘무슨 말을 더하리요’ 라고 그 믿음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만연하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도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탁월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디 어려운 시기에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믿음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믿음으로 참아 ‘무슨 말을 더하리요’ 라고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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