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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니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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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니 (마 5:13-16)


본문은 산상수훈 중 팔 복 다음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 당시 산상수훈을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즉 본문 말씀의 ‘너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산상 수훈은 5장 1절부터 시작됩니다. 1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그리고 2절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따라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 앉자 그들도 따라 앉았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오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1차적으로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2차적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입을 통한 언어로 전파되는 것이기에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제자들 주변에 있는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을 함께 듣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너희’는 1차적으로는 제자들이며 2차적으로는 제자들을 포함한 무리 전체를 뜻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자나 무리나 공통적으로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함께 산에 올라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듣는 최종적인 대상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기에 소금과 빛은 긍정적인 기능과 핵심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에 있어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방부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좋은 기능들을 합니다. 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결코 없어서 안 되는 핵심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는 ‘너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앞에서 ‘너희’는 제자들을 포함하는 무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리들이 누구인지 또 알아야 합니다. 이 무리에 대하여 마태는 4장 24절에서 25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이 본문을 통해 보면 아마도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대부분 약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적으로 소외 계층의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자들도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던 제자나 무리들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능과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너희가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16절에서 ‘너희 착한 행실’이란 표현이 있는데 실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행실을 행할 사람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착한 행실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배려 대상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소금과 빛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왔고 고칠 수 없는 질병과 장애로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 늘 짐이 되어 왔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실패와 좌절, 신분상의 차별로 늘 어두운 그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보았을 때 소금과 빛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받고 있기에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즉 “너희는 소금과 빛이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그들이 처음부터 소금과 빛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즉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소금과 빛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소금과 빛을 받아 마치 물에 소금을 넣어 소금물이 되듯이, 달이 태양 빛을 받아 밤을 비취는 보름달이 되듯이 그들이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 “소금이 만일 맛을 잃어버리면” 소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짜게 하는 것보다 맛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소금은 절대 맛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소금 통에 있는 소금은 몇 천 년이 지나도 소금입니다. 심지어 몇 십 만년의 시간이 흘러 소금산과 바위가 된 소금을 지금도 캐내고 있습니다. 이 소금바위를 암염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정법을 이용하여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헬라어 원어에서는 ‘맛을 잃는다’라는 것이 ‘맛이 없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소금 중에는 맛있는 소금이 있고 맛이 없는 소금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소금의 공통점은 둘 다 짠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또 소금 중에는 싱거운 소금도 있습니다. 이렇게 소금의 맛이 달라지는 이유는 소금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금에 섞인 불순물 때문입니다.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면 바로 판매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둡니다. 이유는 간수를 빼내기 위해서입니다. 간수를 빼지 않으면 소금에서 쓴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간수는 소금에 있어 불순물입니다. 

소금 통에 처음에는 순수한 소금만 들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불순물이 계속 들어가 결국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 소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소금을 받아 소금이 된 사람들이기에 불순물이 많은 세상에서 살면서 불순물이 섞여 들어갈 가망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짜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국 맛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순수한 소금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즉 순수한 소금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금만을 받은 사람이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운 사람은 세상을 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는 세상을 병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빛에 있어 중요한 것은 빛을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빛의 위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빛은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등불도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멀리 더 넓게 비출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천정에 전등을 달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천정에는 빛을 가릴 장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낮은 곳일수록 빛을 가릴 수 있는 장애물이 많기 때문에 낮은 곳에 빛을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빛이 산 아래에 있다면 산 뒤에 있는 마을은 늘 어둠속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등불이 만일 방바닥에 있다면 방안의 각종 가구와 물건들로 인해 빛이 가려 방구석 구석까지 비출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 자체이시기에 세상은 그 빛을 가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를 포함해서 그 당시 제자들과 무리들은 빛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빛을 내는 사람들이기에 장애물이 많은 세상의 장애물에 가려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지 못할 가망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빛을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관점, 유대인들의 관점, 서기관들과 바라새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대에 사회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불순물과 장애물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가난과 질병과 장애 고통 그리고 신분적 차별 속에서 살아왔던 그들 스스로 세상의 불순물이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바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불순물과 장애물은 너희들이 처한 환경과 여건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장애 속에서도 그리스도로 충만할 수 있다면 너희가 바로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불순물과 장애물은 가난이나 질병, 육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충만케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소금이 되어 세상에 짠 맛을 내봅시다. 그리스도께 받은 빛을 세상에 다시 한 번 비추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는 은혜로 세상의 불순물과 장애물들을 여러분들의 삶에서 제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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