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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쁜 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정 (삼상 2:12-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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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정 (삼상 2:12-17, 22-26)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도박에 빠진 어느 변호사의 몰락”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2천년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민변출신의 변호사인데 도박장을 출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 사무실 운영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2010년 5월 캄보디아의 한 카지노에 도박을 하러 갔답니다. 돈을 다 잃자 자신을 "변호사 사무실 2곳을 운영하는 대표변호사"라고 소개하며 "돈을 빌려주면 3일 뒤 한국에 가서 바로 갚아주겠다."고 말해 약 7500만원을 빌려 다 탕진했답니다. 57세 나이로 사기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였습니다. 57세 변호사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나이에 도박 중독으로 비참한 인생이 된 한 가장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이분의 부모와 부인, 자녀들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요즈음 중독으로 전쟁을 치루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게임 중독된 아들로 PC 방을 불사르고 싶다는 분도 계십니다. 국민 8명당 1명꼴이 알코올· 인터넷· 도박· 약물 등 4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독자 수는 약 618만 명으로 알코올 중독자는 155만 명, 인터넷은 233만 명, 도박은 220만 명, 약물 중독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것을 3인 가족으로 환산해 보면 얼마나 많습니까? 618만 곱하기 3을 하면 1854만 가정이 나옵니다. 2010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총 가구 수는 17,574천 가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거의 모든 가정이 중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 가 발표한 한국의 알코올 중독률(18세 이상 성인 중 알코올 의존·남용자 비율)은 6.76%로 세계 평균 3.6%의 1.8배 수준입니다. 도박 중독 유병률(사행산업통합감독위 2012년 자료)도 6.1%로 영국(2.5%)· 프랑스(1.3%)· 호주(2.4%)의 2.4~4.7배 수준에 이릅니다. 

국내 카지노 이용자는 2001년 153만 명에서 2010년 504만 명으로, 경마 인구는 같은 기간 1,336만 명에서 2,181만 명으로 늘었고, 복권 매출액은 7,112억 원에서 2조 5,255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알코올중독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 수는 2003년 7만 2,938명에서 2010년 10만 8,340명으로 7년 만에 49% 늘었습니다. 중독포럼에 따르면 4대 중독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109조 5,0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습니다. 

중독으로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와 국가 전체의 안정성과 경쟁력이 저하되고,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중독이 된 것입니다. 술로 인하여 실수를 하고 술을 먹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술을 먹는다면 알코올 중독이 된 것입니다. 게임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져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계속 게임을 하고 있다면 게임 중독이 된 것입니다. 

마약이나 도박에 의해 구속되었는데도 풀려나 다시 도박이나 마약에 손을 대면 이미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것입니다. 텔레비전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영상 중독이 된 것입니다. 중독이 되면 스스로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도덕심이야 양심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문제가 생깁니다. 죄책감, 수치심, 분노, 자기 증오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인 관계가 손상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직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재정적으로 손실됩니다. 

끝없이 거짓말을 하며 중독에 필요한 돈을 구하게 되고 결국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 패인이 되어 스스로 인생을 파괴해 버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쁜 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1. 우리 가정 식구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중독으로 비참하게 끝나버린 한 가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두 아들이 한 날 전사하였습니다(삼상4:17).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제사장인 아버지 엘리에게 들여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그 충격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삼상4:18). 
아이를 밴 며느리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낳고 죽었습니다(삼상4:19-20)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라는 말입니다. 한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던 가정이 졸지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비참한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이 가정이 왜 이렇게 비참한 가정이 되었을까요?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엘리의 아들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일을 합니까? 제사드리는 고기를 삶을 때 갈고리로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고기를 꺼내어 가는 것입니다. 15절 이하를 보십시오. 억지로 생고기를 빼앗아갑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약물 중독과 같이 절제하지 못하는 음식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3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중독은 나쁜 습관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은 ‘신호-반복행동-보상’으로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분위기에 의해 혹은 호기심이나 우연히 술을 마시게 됩니다. 불로장생 약을 찾아낸 기분 같은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술 취하는 것보다는 술에 취한 기분을 열망하기 시작합니다. 술로 인해 주어지는 현실도피, 긴장 완화, 동료애, 망각 등 감정적 억압을 떨쳐내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술을 열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반복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련의 행동을 기계적인 관례로 변환하는 과정을 “청킹”이라고 합니다. 행동 덩어리가 습관화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처음 운전할 때는 좌우를 살피지만 운전에 익숙해지면 관례적으로 하던 습관에 따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뇌의 기저핵이 활동을 절약하는 방법을 찾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무차별적으로 습관으로 전환을 시킨다는 합니다. 습관이 형성되면 뇌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독된 습관을 가지면 결국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는 중독의 늪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맥주 사진이나 술집 사진 등 평소에 음주욕을 자극하던 신호를 받으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코올· 인터넷· 도박· 약물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기분 전환에 대한 열망, 위안에 대한 열망, 스트레스 해소에 대한 열망 등에 똑같은 보상을 주는 새로운 반복행동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끊게 하려면 신호와 보상을 찾아내 유사한 결과를 제공하는 새로운 반복 행동을 선택하게 하면 술을 끊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동일한 신호와 동일한 보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반복 행동을 더하라’라는 습관변화의 황금률을 말합니다. 컴퓨터게임, 담배 등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새로운 반복행동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담배와 관련된 신호와 보상을 찾아내서 유사한 결과를 제공하는 새로운 반복행동(금연 껌, 빠르게 시행하는 팔 굽혀펴기, 몇 분 동안의 스트레칭 등)을 선택하면 담배를 끊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습관의 힘 p121). 

모든 사람의 중독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지만 찰스 두히그는 “동일한 신호와 동일한 보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반복 행동을 더하라”라고 습관의 황금률을 말합니다. “담배를 끊고 싶다면 담배에서 얻는 열망을 대신 채워 줄 새로운 반복 행동을 생각해 내라. 그런 다음에는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이나, 니코틴을 멀리하고도 지낼 수 있다는 믿음을 당신에게 심어 줄 공동체를 찾아내서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라.”라고 말합니다. 

컴퓨터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의 습관을 면밀히 관찰하여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이유를 알아내고, 그 다음 PC 방에 가는 대신에 함께 운동할 친구를 만나 찾아가 보상에 대한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어김없이 옛 습관의 그림자는 나타납니다. 습관 교체 기법을 훈련받고 새로운 반복으로 보상받는 방법을 터득하고 금주한 사람도 어느 날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나 초월적인 존재를 받아들인 사람은 심각한 스트레스가 다가와도 술을 멀리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충분치 않고 습관을 항구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초월적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개조된 습관 고리를 항구적인 행동으로 굳히는 것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이겨낼 믿음이 있으면 훨씬 반복적으로 알코올 중독의 늪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독 탈출을 위해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약이 없습니다.

왜 엘리의 아들들이 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결국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식욕을 채우는데 하나님도 하나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습관이 달라집니다. 

모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중독은 결국 중독 대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식구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모든 중독에서 벗어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중독이 된 사람들은 없습니다. 친구를 따라 술을 마시다 아이면 호기심으로 술을 마시다 중독이 됩니다. 세계적인 알콜 중독 치료 단체인 AA(Alcoholics Anonymous)를 만든 빌 윌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단체를 통해 매년 210만명이 도움을 받고 있고 지금까지 1천만 명이 이 단체의 12가지 프로그램에 의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도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처음부터 중독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장교로 1차 대전 때 프랑스로 부임하기 전 장교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었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근처의 유지들이 장교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는데 한 파티에 참여해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답니다. 그전까지는 술을 만신 적이 없었지만 또 다시 초청되어 브롱크스 칵테일을 마시면서 불로장생약을 찾아낸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매일 위스키 세병을 마시는 중독자가 되어 39살에 결혼 생활도 파탄나고 모든 돈도 허비하여 지하실에서 비참하게 보내야만 했답니다. 클럽에서 싸움을 하다 일자리도 잃었고, 술을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한 것입니다. 술을 끊는다는 해독제를 먹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답니다. 부인에게 철석같이 약속하고 금주 클럽에 가입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를 만나 술을 권하니까 자신은 술을 끊었다고 먹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끊었냐고 물어보니까? “종교를 가졌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과 유혹, 죄와 악마에 대하여 자신에게 이야기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네가 매를 맞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걸 인정해야 하네 그리고 자네의 삶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겨야 하네.”라고 전도하더라는 것입니다. 

윌슨은 처음에는 그를 종교에 미쳤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34년 12월 윌슨은 종합병원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입원을 했답니다. 그는 병실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했고,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답니다. 금단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벌레가 온몸에 기어 다니는 것 같았고, 토할 것 같고 고통이 심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 때 그는 빈방에서 “하나님, 당신이 정말 있다면 저한테 당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럼 뭐든 하겠습니다. 무슨 짓이든”이라고 소리쳤답니다. 그 순간 하얀 빛이 방을 가득 채웠고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는 산꼭대기에 있는 기분이었답니다. 공기의 바람이 아니라 영혼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답니다. 한순간에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것 같았답니다. 다른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었답니다

그 후 그는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36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을 만들어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중독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2. 우리 가정 식구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중독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중독은 결과가 비참합니다. 나이와 학력, 외모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가 없습니다. 당시 최고 지도자인 엘리 가정도 무너졌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까? 

22절을 보겠습니다. 성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중독자들은 중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한 가지 중독은 또 다른 중독을 만들어 냅니다. 이 때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훈계를 합니다. 그 때 아들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 돌이키지 못하고 그 대가를 치루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쁜 중독의 고리를 끊으면 되는데 그것을 절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식 중독의 대체 행동을 중독을 끊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결국 결혼하여 부인을 둔 사람이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한 것입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 번 습관으로 굳어지면 좀처럼 우리 뇌가 그 습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뇌에서 도파민, 베타 엔돌핀, 엔케탈렌 등의 물질이 나오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자극을 받으면 다량의 물질을 내보내 논리적 사고로 제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 촉발기제인 흥분추구와 긴장 완화가 너무나 강력하여 이성적 행동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코올, 담배, 마약류 등과 같이 우리 몸에 섭취된 물질들에 의해 중독되는 물질 중독(Chemical Addiction)이나 도박, 성, 쇼핑 등과 같이 일련의 행동들과 상호작용들의 과정에 빠져드는 행동중독(Behavioral Addiction)에나 똑같습니다. 현대 사회의 영상매체로 인한 TV나 Video, 영화 중독, 컴퓨터 게임, 스마트 중독, 인터넷 중독과 같은 것은 기술 중독(technological addition)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특정한 행위가 그 사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것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합니다(집착과 의존성). 그 행위를 할 때에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행동을 사회생활이나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기분의 변화). 같은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양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내성). 

만일 그 행동을 중지하거나 행동량을 줄이게 되면 불쾌감이나 불안감, 우울증, 짜증, 불면 등의 증상이 생깁니다(금단). 특정 행위 때문에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주위의 인간관계, 사회관계가 나빠지고 문제가 생깁니다(갈등). 끊거나 조절을 한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도 언제든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은 형태로 또는 다른 형태로 재발이 가능합니다(재발). 

그랜트 마틴(Grant Martin)은 중독의 단계를 3단계로 나눕니다. 

첫째 단계는 내적변화입니다. 중독 행동의 결과로 인성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유쾌하지 못한 느낌이나 상황을 피하고 안위감을 얻기 위해, 감정적 욕구를 도피를 통해 채우려고 합니다. 일단 무엇엔가 중독이 된 사람은 그 중독에 의해 형성된 인격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둘째 단계는 생활방식의 변화입니다. 중독자는 기분 전환이나 습관적 탐닉 대상 혹은 행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중독으로 인한 인성에 의존하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중독자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특정한 방식의 개입이 없는 한 중독자들은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인터넷 중독, 사이버 교제 중독, 온라인 섹스나 폰섹스, 포르노에 몰두하는 사이버 섹스 중독, 사이버 도박. 주식. 쇼핑, 게임 중독은 신체적, 경제적, 가정적, 학업적, 직업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첫째, 중독은 죄로 시작하여 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의 우상, 두려움, 불안, 교만, 잘못된 자아 정체감, 탐욕, 현실로부터 도피, 쾌락 추구, 돈에 대한 집착, 소유욕, 승부욕, 폭력의 우상, 성공의 우상, 존경의 우상, 보답의 우상, 편함의 우상, 자기중심적인 자기애" 등과 같은 인간의 죄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중독은 환경 문제이기 전에 영적,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둘째, 자신의 중독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치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중독을 인정한 다음에는, 중독행위를 고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중독 사이클에 내재된 그릇된 사고를 성경적인 사고로 바꾸어야 합니다. 습관화된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하루, 주간, 월간 시간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뒤, 새로운 시간 계획을 짜서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엘리 아들들은 이것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중독될 수 있습니다. 중독되면 중독에서 머물지 말고 깨달아 알았으면 누군가 지적을 하면 가족에게 피해를 주면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회개란 완전히 돌이켜 새로운 길로 가는 것입니다. <희망 있음>이라는 책을 쓴 차현철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회자의 아들로 7년 동안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중독치료병원에서 중독자를 돕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춘기 시절에는 억압된 종교생활이 너무 싫어 자살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신학교에 가서는 헤비메탈과 만화방과 바둑, 컴퓨터 게임에 빠지게 됩니다. 아르바이트하다가 한 아가씨를 만나서 프로포즈를 했는데 목사아들은 싫다고 거절당했답니다. 스토커가 되어 아가씨를 괴롭히게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스토커라는 자각에 자기혐오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결혼 몇 달 전에 갑자기 어머니는 병명도 모른 채 돌아가셨습니다. 아내에게 무리한 믿음과 사랑을 요구했고 아내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결국 이혼하게 되었답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면서 심리학책과 게임에 빠져 지내다가 청년 리더의 말에 술 취한 버스기사가 운전한 버스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말에 사표를 내고 나옵니다. 중독으로 폐인처럼 살다가 갑자기 지옥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에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받았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 앞에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깨닫고 회개하고 힘을 얻게 되었답니다. 말씀 묵상해 나가자 점점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독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욕망을 섬긴 마음의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대부분 중독자들은 자신은 중독이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중독을 합리화하고, 핑계를 댑니다. 부인합니다.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망각하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간접적으로 시인하지만 축소화해 버립니다. 짜증을 내고 만류하는 사람에게 증오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중독의 길은 죽음이라는 심각한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중독의 늪에 들어가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3. 우리 가정 식구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치관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는 당시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이며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삼상1:3,9)하였습니다. 자신도 들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 듣고 달려온 사무엘을 시기하지 않고 올바르게 지도할 만큼 사심 없는 신앙이었습니다(삼상3:1-9) 슬픔에 찬 한나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자비를 구할 만큼 사랑과 긍휼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1:17). 

그런데 엘리와 그의 자녀들은 말년에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백성의 존경 못 받지 못했습니다(2:22,23;3:13) 두 아들과 엘리는 비명횡사하였습니다(삼상4:5-11,4:18) 물질적 궁핍하였습니다(31-34, 36). 제사장 직분을 잃어 버렸습니다.(35) 무엇보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자식들의 잘못된 습관 중독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인 엘리에게 말씀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하십니까?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엘리에게는 좋은 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생각의 암덩어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암덩어리, 우선순위의 암덩어리였습니다. 이것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것을 수술하지 못한 것입니다. 

30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합니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사랑의 하나님의 무서운 말씀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이 실제적으로 가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가정에서는 진정 크리스천이 아니라 직업 종교인 정도로 살아간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인 엘리까지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분명 그렇습니다.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사명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간음하고 하나님의 제물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그를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행실이 나쁜 불량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12). 신성한 제사제도를 문란케 합니다(2:14),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합니다(2:14), 제물로 자기 배를 채웁니다(15,16).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16),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합니다(17), 성막에서 간음죄를 범합니다(22), 백성들의 범죄를 조장합니다(24). 이 사실을 엘리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자기 자녀의 행실을 소문을 듣고 나서야 알 정도였습니다.(삼상2:24) 그 만큼 자녀에 대한 무관심하였습니다. 불법을 습관적으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 제사장인 아버지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23절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소문이 다 퍼진 후에 백성들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정도로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만큼 징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삼상3:13)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삼상3:13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위장된 사랑과 방임주의,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상한 병이 중독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이 여기는 우선순위는 단호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주를 자처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변화가 가능한 모임에 가입할 때, 변화 가능성을 훨씬 높아진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헤더턴은 “변화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변화를 볼 수 있을 때 정말로 변한 것이란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무엇보다 지원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친구와 가족 등의 지원공동체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예전에 마약 중독자가 우리 교회에 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새벽 마다 나와 기도했습니다. 남편도 출소해서 새벽기도회 나왔습니다. 교회 식구들을 사귀면 친구삼고 신앙생활 위주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가니까 아내가 월세도 못 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드렸더니 그것을 남편에게 준 것입니다. 

결국 남편은 술집에 나가게 되었고 또 마약을 한 것입니다. 단호해야 합니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중독은 자기 스스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성경을 통해 가르침 받고, 기도회와, 예배에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친구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가상공간보다 현실적인 신앙적 공간에서 욕구를 채움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 받아야 합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특별한 다운로드 프로그램이나 프로그램파일들을 제거합니다. 미디어 금식을 합니다. 유해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유혹관리를 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공개 장소에 설치해 놓습니다. 유혹과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중독 물질을 철저하게 차단합니다. 봉사활동을 합니다. 온 가족이 대화하며 함께 대체 취미를 개발하여 공유합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참여하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신앙생활이 가정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자녀가 중독되지 않고 잘되게 하는 최대의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나님 믿게 만들면 그 자리를 중독이라는 것이 차지합니다. 자녀가 잘 믿는 것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교회 생활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행사하는 것을 우습게 아시지 말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우선순위를 안두면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참 곁길로 간 뒤 후회하면 그 땐 이미 늦습니다. 이왕 믿을 바에는 잘 믿는 아들 딸 만들어야 합니다. 잘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여야 중독에 빠지지 않습니다. 중독에 빠지는 것도 누구와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중독에 빠져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반복행동을 길들이여 습관을 교체하는 것이 중요한데 혼자는 잘 되지 않습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옛습관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예전에 저희 교회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 당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부인 집사님께서 저에게 고쳐달라고 상담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얌전합니다. 새색시 같습니다. 그러나 술만 드시면 기물을 부수고 난리를 칩니다. 아내가 술을 먹지 못하도록 돈을 주지 않고 카드를 없애도 결국 술을 사다 장롱에 감추어 놓고 베란다에 감추어 놓고 먹습니다. 

제가 대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 새벽기도회를 나오고 평일에도 교회에 나와 지내라고 했습니다. 한 동안 잘 하시더니 또다시 술을 드시고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알코올 치료 전문병원에 보냈습니다. 그 후 나와 교회 생활 잘 하시면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죄하지 말고 환경을 만들어 주고 짐을 서로 져 주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하나님을 존중하는 가정 문화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경외한다고 손해 보는 것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도 보십시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까? 잘 못사는 나라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나라가 아닙니까? 

언제가 경향신문에 우리나라 최고위 공직자 100명의 종교를 조사한 내용이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개신교 42명 천주교 20명 불교 9명 무종교 2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바보 천치이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뒤지고 못사는 사람이 됩니까? 아닙니다. 16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종교를 조사한 것을 보니까 273명 중 개신교인이 91명이었습니다. 무려 33%에 달하였습니다. 

한 해에 두 아들이 사법 고시에 합격한 분의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남자만 6형제를 두었습니다. 다섯째 아들은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습니다. 막내는 사법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자식들이 그렇게 잘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김진성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할 것만 당부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앞에 기도의 본을 보이려 힘썼을 뿐이지요.』

그들의 기도제목은 자식들이 꾸준한 신앙생활로 모두 장로 직분을 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까? 자녀를 큰 인물로 키우길 원합니까?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보다 더 큰 신경을 하나님에게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상급이고 방패이십니다. 자녀를 학교 석차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신앙으로 평가하십시오. 부모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자녀의 우선순위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이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세상이 두 쪽이 난다하여도 우리 가정은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살겠다는 다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엘리의 자식들은 물질을 우선순위에 두니까 성전의 제물까지 훔쳐 먹습니다. 쾌락에 중심을 두니까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간음하였습니다. 사람 중심 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 세상 중심보다는 교회 중심의 가정, 현세 중심보다는 내세 중심의 가정, 쾌락 중심보다는 섬김 중심의 가정을 만들면 하나님께서 나쁜 중독 없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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