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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따르라! (눅 9: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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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눅 9:51-62)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그 말씀은 다만 그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그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주님을 믿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히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각자 제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까? 또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까?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자기의 십자가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바로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는 도중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지극히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 성미 급한 야고보와 요한이 흥분한 채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허락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주님은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주님도 불쾌하셨을 것입니다. 매우 괘씸하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신다는 이유 때문에 주님을 배척했으니 얼마나 불쾌하셨겠습니까?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멸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지만 그래도 혼은 좀 내 주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너그러우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자세가 바로 관용, 즉 너그러움입니다. 주님도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상반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보다 너그러워야 합니다.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나름대로 베풀기를 좋아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용을 보여 줄 수 있어야 비로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극히 대조적인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먼저 어떤 사람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그리 평탄한 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의식주 같이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희생이 요구된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부귀, 영화, 권세와 같은 세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로는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눅 9:59 하반절)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어쩌면 그렇게 냉정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이 조금 전에 사마리아인들에게 보여 주셨던 그 너그러움은 다 어디 갔습니까?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륜을 저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을 따르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다 때와 시기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차일피일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결국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오늘 우리는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눅 9:61) 그러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과거나 현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과거가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삶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삶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에 얽매어 있을 것 같으면 결국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오늘 우리는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해야 합니다. 복음의 성격이 화해의 사역이므로 복음 전도자의 자세는 너그러워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사역이 인간 구원이라는 지극히 심각한 사역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도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그 흉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온갖 수치와 모욕과 고난을 다 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제자의 길을 걸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며칠 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습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하여 저가 항공기를 이용했는데 안전 점검이 덜 끝나서 약 40분 정도 출발이 지연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항공사 직원들끼리 뭔가 소통이 잘못되는 바람에 승객들이 셔틀 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두어 번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승객들이 화를 내고 심지어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공사 직원들이 일부러 그랬습니까? 출발이 조금 늦더라도 승객들을 안전하게 모시려는 것이 뭐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승객들 중에는 교인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목사도 최소한 4명 이상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너그럽지 못합니까? 사실은 저도 좀 부끄럽습니다. 물론 저는 화를 내지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를 쓰고 있는 항공사 직원들에게 수고한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입니다. 물론 저의 특기인 환한 미소로 그들에게 격려의 인사는 건넸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더 귀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이 복음을 좀 더 진지하게,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값비싼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좀 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로 이 귀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우리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도 너그럽게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귀한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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