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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한 속죄와 하나님 은혜 (마 1:21, 요 6: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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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속죄와 하나님 은혜 (마 1:21, 요 6:35-40)

얼마전 중국의 쓰챤성에서 또 다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도 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다지 많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중국은 지진을 대비한 內疹(내진) 설계가 없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지진을 대비한 내진 설계를 완벽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화동 제자가 교장으로 있는 신학교에 후원금을 보내어 신학생들을 피해 현장에 투입하여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찍어온 사진을 보니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너진 집 기둥을 보니 기둥 속에 철근이 몇 가닥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기둥은 철근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튼튼합니다. 집을 지을 때는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동시에 집을 세워주는 기둥이 든든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집을 세울 때, 우리 신앙의 기초이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의 기둥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기본 교리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세워야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지진이 닥치고 폭풍이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저는 몇 주 전부터 교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장로교의 핵심 교리인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세 번째 교리인 제한 속죄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지난 16일 주일에는 첫 번째 교리인 전적타락에 대해 살펴보았고 지난주에는 제 2교리인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알미니안 교리와 칼빈주의 교리는 첫 출발부터 다릅니다. 

알미니안은 전적 타락이 아닌 부분적 타락을 믿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완전 타락하지 않았기에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반응하고 응대할 수 있고 그래서 힘써야 구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도 무조건족인 선택이 아닌 조건적 선택을 믿는 것입니다. 

완전 타락하지 않은 ‘자유 의지’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고, 그러기에 하나님은 세상 모든 백성을 조건적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도록 모든 자를 위해 속죄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칼빈주의 개혁주의자들은 출발이 다릅니다.  
우리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자신을 구원할 만한 능력이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창세전에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고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공로도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를 받고자 하는 교리는 세 번째 교리인 제한속죄의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속죄 사역을 하셨는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느냐? 
아니면 선택받은 사람만을 위해서 바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만민을 위한 속죄냐? 택자를 위한 속죄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택자를 위한 제한 속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제한 속죄는 무엇이고 어떤 은혜가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 제한 속죄란 무엇인가요? 

1600년대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알미니우스를 따르던 알미니안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따른 개혁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아래 택함 받은 자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은총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일반 은총이고 하나는 특별 은총입니다. 

일반 은총은 믿든지 안 믿든지 누구에게나 다 임하는 은총입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든 불신자든 누구에게나 다 햇볕을 내려주시고 비를 내려주십니다. 믿는 자에게만 햇볕을 주시고 안 믿는 자는 안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일반 은총이라 합니다. 

그러나 특별은총은 좀 다릅니다. 특별 은총이란 하나님이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은총을 말합니다. 이것은 택함을 받은 백성만이 누리는 은총입니다. 

요1:12절 이하를 보세요.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制限(제한)속죄”란 속죄의 능력이 제한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속죄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기에 “제한속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贖罪(속죄)는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효력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제한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무조건적인 선택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 제한속죄 교리는 무조건적 선택 교리의 결과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자는 구원하고 불택자는 구원치 않기로 작정하셨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도 전 인류가 아닌 택한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택교리와 제한속죄 교리는 상호 동반된 교리인 것입니다. 

제한된 속죄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마땅히 죽어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그 은혜를 특별히 선택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제한 속죄의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요?

어떤 교리든지 성경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만민 속죄가 아닌 우리가 믿는 제한속죄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시간상 몇 구절만 살펴봅니다. 

1) 마1:21절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이 주의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 남편 요셉에게 통고를 합니다. 
따라서 하세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여기서 ‘그’는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의 백성이 아닌 자기 백성! 이들은 누굴까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십자가 구속을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그리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기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조건 없이 택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 즉 택한 자 만을 위한 구속이기에 제한 속죄라 하는 것입니다. 


2) 출8: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끊임없이 “내 백성”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내 백성’이라 하실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조건 없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애굽 왕 바로도 사람입니다. 그가 통치하던 애굽 백성들도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는 정말 무자비한 심판을 하십니다. 거기는 인권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내 백성”이라며 특별대우하십니다. 애굽땅에 10거지 재앙이 임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고 구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누구는 버리고 누구는 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나요? 그 이유는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질문에 해답은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택함 받아 구속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요6:35~37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주께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도 모든 자가 다 주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일부는 안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6:3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무슨 뜻입니까? 누가 구원을 받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네게 주시는 자”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가 아닌 사람은 오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사람의 의지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여 예수님께 맡겨 주신 자들이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속죄는 만인을 구원할 만한 능력과 효력이 있으나 그 실제 효력은 택자를 위한 구속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의 구속의 효력이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구속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만일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전 인류의 구원을 목표로 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실패작이란 말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고 당신이 세운 계획을 실패하는 무능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속죄사역도 택자를 위한 제한 속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4) 요17:6절과 9절입니다.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자세히 보세요. 
“세상 중에서 네게 주신 사람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 기도에서 주님은 누굴 위해 기도하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선택된 자들입니다. 제자들과 그들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될 택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만약에 주님의 속죄가 만인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 기도를 왜 하시겠습니까? 

한절만 더 봅시다. 


5) 롬8:29~30절입니다. 

우리는 지난주 이 구절을 보았습니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 “미리 아신 자들” 이들은 누군가요? 하나님이 택한 자입니다. 

그들을 정하시고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누가요?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택자를 위한 구속을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3. 반론 성경구절의 해석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앍다가 보면 만인구원을 뒷받침하는 듯한 구절들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고후5:14~15절을 보세요.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기 분명히 “모든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본문을 해석할 때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본문을 문맥과 한 장 전체, 앞뒤 전후문맥을 살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를 통해 살펴보고 그 해당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기 식이 되는 것입니다. 코끼리의 다리가 마치 통나무 같이 생긴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마치 통나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해석한다면 틀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죽으신 대속적 죽음이며 세상을 위한 죽음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보이다 해도 그 본문의 전체적인 내용과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부분을 보세요. 롬10:13절 보세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누구든지’ 는 복음을 들고 주를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듣고 주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는 ‘아무나’가 아닌 ‘믿는 자’를 말하는 것임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여기도 “믿는 자마다”입니다. 아무나 다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택함 받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신 것이지 모든 인간을 구원하려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4. 제한속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인천의 어느 할아버지 집사님이 보신탕집에 갈 개가 도살장에 갇혀 있는 것을 불쌍히 여겨 돈 주고 사서 집에 데려와 길렀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몇 년 후 연세 많으셔서 병들어 죽자 그 개가 일주일 동안을 먹지 않고 지내다가 죽었답니다. 자기를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은 개가 주인이 죽자 자기도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울면서 말하더랍니다. 

“목사님 나는 개만도 못합니다. 개는 주인이 죽었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죽었는데 나는 사랑하던 남편이 죽었는데도 밥이 입에 들어가니....” 하며 울더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웃기도 했으나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속죄키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지옥 감옥에 들어가야 할 나를 아무런 대가없이 핏 값을 지불하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총을 받은 우리는 주님께 어떤 보답을 하고 사는지요? 

우리 하나님은 항상 끝까지 당신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시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은 반드시 구원해 내시는 분입니다. 요10:14절 이하를 보세요.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 “나는 내 양을 안다고 하십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택자 구원을 위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는 “너희는 내 양이 아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분명히 그들을 제외시킨 사실을 보면서 어떻게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에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임무를 가지고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예수’입니다. 그 뜻은 “건지다” “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의 속죄 사역은 택한 자기 백성만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부께서 택한 자들이 성자로 말미암아 구속되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농부는 자기 밭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밭에서 자라는 가라지 까지 귀중히 여겨 가꾸는 농부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은 좋은 씨앗인 천국의 자녀들을 위하심이지 결코 악마의 자식을 위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똑같이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에게 차별 없이 구속되는 자는 모든 사람이 아니고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택자를 위한 제한 속죄! 이 은혜를 감사하고 이 은혜를 힘써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아직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십니까? 그러면 혹시 여러분 자식이 부모인 여러분은 부끄러워하면 어찌할 것입니까?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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