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갈 5:22-24)

by 운영자 posted Oct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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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갈 5:22-24)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저술가인 워치만 리가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습니다.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시니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는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하나님께서 내앞에 있는 바위.즉 원수나 시험 등을 치워달라고만 부르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내게 주신 분복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엑스광선과 같은 성령

엑스광선은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의 발견하였던  방사선이다. 이선은 동물의 근육을 꿰여 드러나보는 광선으로 예를 들어 동전을 넣은 가죽부대를 엑스광선 앞에 비추어보면 그 가죽 부대는 보이지 않고 동전과 철물같은 것만 보이는 것이다.그러므로 사람의 폐같은 곳에 기름이 들거나  무슨 이상이 생기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  엑스광선은 많은 방면에 실용적으로 쓰이지만 특히 의학계에서 큰 공헌을 하여 환자에게서 병의 근원을 탐색할 수 있게 하는데 신앙계에서의 엑스광선은 무 바로 성령의 빛인 것이다.인간의 감춰진 죄와 허물은 성령의 조명으로서  볼 수 있으면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장에서 부른 사랑의 노래

로마 제국의 박해가 극심하던 초대교회의 일입니다.로마의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순교한 한 성도의 유시 한 편이 역사를 두고 모든 신앙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고 내게 침을 뱉으면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이고  구타하면 신음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이며 나를 찌르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이고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면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이며  나를 불태우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죽음의 형장에서 부른 사랑의 노래입니다.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사람의 감정이,지식이,어떤 합리적인 생각이 이토록 강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한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생겼겠습니까?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릿,도인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의 법,성령의 법을 무시하고 형식적이고 감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주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성령을 무시하면서 기독교를 전하는 사람은[가짜성도]입니다.오직  믿음의 법을 따르고 성령의  법을 따르는 올바른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그렇지 않고는 미혹의  영이 횡행하는 이 말세에 믿음을 굳건히 해나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

너무 합리적 생각을 하다가보면 기도할 것이 하나도 없어지고 믿을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주님은 사랑으로 조건없이 특별히 주시지 않습니까?우리는 초자연을 믿고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은혜를 믿어야 합니다.특별 법칙을 믿어야 합니다.주님과 나 사이는 특별 관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자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

진정으로 영적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갈망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갈망은 생명을 주게 하며 또 절제하고자 하는 깊이 내재한 심오한 소원인데 영적인 사실에 있어서 어느 것이 중요한지 순서를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편의상 아래와 같이 구분해봅니다.

1.첫째의 갈망은 행복해지려는 것보다는 거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자신에게는 일시적으로 불명예나 손실이 올지라도 자기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영적인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기 원하는 사람입니다.

4. 또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견해대로 보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5.영적인 사람은 잘못 살아가기 보다는 바르게 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6.한편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자기가 큰 댓가를 치뤄도 다른 사람이 성장하며 믿음에서 진보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 가운데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되어집니다.아무도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며 오직 성령께서 자유롭게 움직이시어야 영적인 스리스도인을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갈5:16 말씀을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고 명합니다.그러면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면,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갈5:18 말씀을 보면,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롬8:14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성령은 이미 우리를 인도하십니다.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주시라고,우리가 일부러 기도할 이유는 없습니다.단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는 생각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행동을 할 때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우리가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우리는 자연히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사실 육체의 욕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으려 합니다.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바르기 때문이 아닙니다.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의 온전한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칭의의 배후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칭의 후에는 절로 성화가 따라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성결한 삶을 살아갑니다.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으로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화의 배후에는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오늘 본문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결과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첫째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물론 우리가 노력한 결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성령이 우리 안에서 친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여기에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다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우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누구나 다 좋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로 나누어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열매라는 단어는 단수형입니다. 하나의 열매입니다.무슨 의미일까요?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성령은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것들 아홉 가지를 한꺼번에 다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한 가지씩 따로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아홉 가지가 다 주어집니다.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성령은 우리에게 아홉 가지의 아름다운 것들을 동시에 선물로 주십니다.그러니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입니까?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귀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들인데 물론 내가 노력해서 이것들을 한 가지씩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성 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것들을 친히 만들어내십니다. 그러기에 이것들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성령이 친히 맺으신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사랑의 사람,희락의 사람, 화평의 사람,오래 참음의 사람 자비의 사람, 양선의 사람,충성의 사람, 온유의 사람, 절제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둘째로, 법 이상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성령은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기에 자연히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며,또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우리를 칭송할 것입니다.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 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귀한 것들입니다.성령을 따라 행하면,법이상으로 살게 됩니다.우리 모두는 사소한 것까지라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시다.그리해서 마지못해 법에 끌려 다니는 초라한 삶이 아니라,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법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삶,고귀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셋째로,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해서, 또는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또는 교회에서 직분자로 봉사한다고 해서,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만이 참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죄에게 종 노릇 합니다.그들은 육체를 따라 살면서,온갖 육체의 욕심을 이룹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육체의 일들을 행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그들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다시 말해서 육체의 온갖 욕심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를 따르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롬6:6을 보면,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합니다.여기의 옛 사람이 바로 육체의 욕심을 가리킵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우리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2:20 말씀처럼,“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또한 갈6:14 말씀처럼,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합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행하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어 육체의 일들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도 풍성하게 맺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아직도 육체의 욕심을 온전히 떨치지를 못하고, 여전히 곤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장막을 벗는 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며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이미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에 끌려 다니면서,그 욕심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전연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어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고 오늘 본문의 동사는“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입니다.그런데 이는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입니다.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자신이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말하자면 이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육체의 욕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으려 합니다.그럴 때마다 우리는 단호하게 외쳐야 합니다.“나는 이미 너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결코 사로잡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호하게 육체의 욕심을 뿌리쳐야 합니다.그러면 성령은 기뻐하시며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아울러 성령은 우리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우리는 법이 상으로 살게 되는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 자비의 열매, 양선의 열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합시다.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우리를 돌보시며,우리에게 큰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날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흘러서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에 의한 생활

신앙인의 삶은 영적삶입니다.신앙생활은 성령의 인도와 안내와 돌봄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입니다.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도덕적으로,인격적으로,성경적으로 인도하십니다.그리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소망하고 사모하고 기다리며 목적삼고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성령은 내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나와 함께 동행하며 나를 성령의 생각대로 인도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또 하나님이 뜻대로 인도하십니다.그리고 성령은 나로 하여금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요구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엄청난 축복이고 은혜입니다.그런 삶이 이 세상에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성령은 나로 하여금 의롭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의 본성과 의지와 생각과 뜻을 포기하고 성령의 생각에 이끌려 살아가게 됩니다.그 삶이 신앙의 삶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입고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의 삶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입니다. 그 인정받는 삶이 내가 주안에서 의로워지는 일입니다. 내가 의로워진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의와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죄로부터 용서받고 구원받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구원받았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나의 신앙이 성장하게 되고 성결한 삶이 시작되고 의로운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주안에서 의로워질까요? 율법,금욕, 행위가 아님/내가 주안에서 의롭게 되는 일은 금식하고 금욕하고 절제하고 절식하고 수도원에서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그런 조건들로 의로워진다면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분들은 모두 의로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부터 신앙 안에서 수도하고 금욕하고 고행하는 일은 있어 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개하기도 하고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 자신을 시험하는 일로 구원받아 보려는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또 봉사와 나눔과 수고를 해서 뭔가 이루려는 몸부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일로 구원받아 보려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안식일이면 숨 막힐 정도로 철저하게 지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무엇인가 신앙의 선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신앙 안에서 의로워지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 그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성령이 나를 변화시키시고 의롭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절제하고 금욕하고 채식하고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고 해서 내가 구원받고 의로워지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흉내로도 아님

사람이 좋은 영적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신앙인들이 절도 있는 습관을 가지고 거룩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고상하고 조용히 묵상하며 살아가는 삶도 좋은 습관입니다.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워지고 성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나를 비우고 내 안에 성령이 나를 온전히 변화시키도록 내 삶을 내 맡기는 삶/

그래서 본문에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하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내가 주를 알고 결심하는 순간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그때 나는 마음으로 죽고 입으로 시인하고 그 증거로서 세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내가 죽어야 합니다.그래야 내안에서 꿈틀대는 정욕도 탐심도 죽일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신앙생활에서는 내가 죽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사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할 때 그 순간 “나는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야 성령이 내안에 임재하십니다. 내 안에 충만하게 개입하시고 나를 주관하시고 나를 활용하십니다. 그때 신앙생활에 깊이가 있어지고 뜻이 나타나게 되고 내용이 만들어지고 헌신이 뒤따르고 순종의 동기가 주어지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 받는 날 죽어야 합니다.

세례의 뜻이 죽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죽고 성령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옛길을 버리고 또 옛 습관도 과감히 버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주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때 죽지 않으면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게 됩니다.그때 성령이 나의 빈 마음을 채우시고 나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시고 인도하시고 활용하시는 것이고 그때 나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그 삶이 의로워지는 삶이고 부름 받은 삶이고 인도받는 삶이고 성결의 삶입니다.

그때 내가 욕망의 길로 가면 성령이 그 길을 막으십니다. 내 안에서 인간적인 욕망이 자꾸만 솟아 나와도 내안의 성령이 막아주시고 절제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성령의 돌보시는 삶입니다.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의 삶을 살 수가 없고 조그만 자존심이 꿈틀거려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신앙의 길에서 이탈하게 되고 이웃을 원망하게 되고 불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한번 알아보십시요. 내가 지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시험해 보려면 내가 지금 주안에서 죽었는가를 먼저 알아보면 됩니다. 내가 죽지 않았으면 성령의 전적인 인도를 받고 지배받지 못합니다.그러니까 내가 내 멋대로 행동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멋대로,내 생각대로,내가 좋은 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내가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성령이 안내하시는 궤도에서 이탈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는 증거입니다.그것은 내가 지금 거듭나고 의로워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면 내가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그 순종의 삶이 성령으로부터 인도받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번 자신을 한번 측정해 보십시오.
“지금 나의 삶에 주님이 얼마나 차지하고 계시는가”,
“지금 내 관심과 내 마음과 내 생각 속에 주님이 얼마나 점령하고 계시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주님을 얼마나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그것을 측정하는데 연애할 때를 한번 기준해서 생각해 보십시요.연애를 할 때는 “늘 마음과 생각 속에 그대뿐”입니다.그래서 방금 전화하고도 10분 후에 또 전화합니다.방금 헤어져서 집에 들어왔는데 또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노래 있지 않습니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 말입니다.그런 증상이 왜 나타나난 것입니까,그것은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온통 그대 생각으로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이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생활을 그대가 완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그 상태가 말하자면 충만한 상태입니다.그 상태를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그렇게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애를 썼습니다.그래서 고백하기를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그것이 성령이 이끄시는 삶입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의 신앙의 뿌리가 그만큼 크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에 뿌리가 깊었던 것입니다. 

이 신앙의 삶에는 무엇보다도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합니다.신앙의 뿌리는 복음이고 십자가이고 부활이고 재림이고 심판이고 천국을 신뢰하는 깊이 입니다. 오늘 신앙인들에게 이 뿌리가 깊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앙에 힘이 없고 용기가 없고 깊이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신앙인들 중에도 예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3대 성인중의 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러니 거기 어디에서 힘이 나오고 용기가 나오고 위해서 죽을 믿음이 솟아 나오겠습니까?신앙의 용기나 힘이나 동기는 순전히 신앙의 깊은 뿌리에서 나옵니다.이 뿌리가 참 중요합니다.분재는 나무의 중심 뿌리를 잘라내고 가느다란 실뿌리만 남겨두는 식물 재배법입니다.

그러면 나무가 중심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라지를 못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밑동은 굵어지지만 키는 그대로 있는 것이 분재라는 것입니다.그것은 중심 뿌리를 잘라내서 그렇습니다.어떻게 보면 참 잔인한 식물 학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잘 자라는 식물을 갖다가 중심뿌리를 잘라내서 아주 기형적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도 때로 식물인간이 될 때가 있습니다.그 상태가 생명의 뿌리가 잘린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는 핏줄과 신경만 살아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상태는 사람이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그것이 식물인간입니다. 그래서 요즘 식물인간을 놓고 그 상태가 살아 있습니다고 보아야 하느냐 죽은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리는 것입니다.신앙도 식물신앙이 있습니다.

식물신앙은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아는 것이 대부분 잡지식이기 때문에 깊은 신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안에 따라 흔들리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깊은 중심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신앙의 깊은 지식이 있습니다면 그렇게 가볍고 얕고 흔들리는 신앙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그런데 자신이 생각할 때에는 믿음의 깊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평소에는 내 믿음이 좋은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니까 마구 흔들립니다.그때 찾아오는 생각이 뭔가 하면 “그동안 내가 무엇을 믿었는가” 하는 믿음의 허상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살아가다가 큰 병을 얻게 되고 사고를 당하여 재산을 잃고 명예를 잃게 되면 믿음은 간데없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감만 가까이 다가오게 됩니다. 것이 말하자면 식물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분문은 말씀합니다.“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신앙인의 삶은 주안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삶을 말합니다.신앙 안에서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비운 다음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그렇게 내가 다시 태어나면 성령이 나를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주관하시게 됩니다.그 삶이 가장 편안한 삶이고 행복한 삶이고 은혜의 삶이고 주를 따르는 신앙인의 삶입니다.그리고 그 삶이 가장 힘이 있는 삶이고 용기와 능력이 주어지는 삶인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그렇게 내 마음과 생각과 삶에 주님으로 가득 채워진 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그것이 성령으로부터 인도받는 삶입니다.

그때 주님의 인도는 나로 하여금 잘 조성된 하나님의 형상에 가장 가깝게 그리고 아주 성숙한 인격의 신앙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그 삶이 영적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그림을 그리는 화가 지망생이 이미 세상을 떠난 이태리 대 화가의 집에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열리자 그 소년은 작고하신 화가 부인에게 '돌아가신 대 화가의 붓을 제게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화가가 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가와 같은 화법을 갖기를 원했습니다.부인은 붓을 그의 손에 쥐어주고 '그림을 그려 보라'고 권하니 그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자기가 평소에 사용하던 붓으로 그린 것보다 더 잘 그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때 부인은 학생에게 '돌아가신 분의 정신을 이어받지 않고는 위대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신자가 되고 싶어도 그리스도의 영 없이는 잘 믿을 수가 없습니다.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하면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로마서 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호도 과자를 사먹었는데 과자안에 호도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서 실망도 되고,또 화가 나서 주인에게 '여보시오.호도 과자안에 왜 호도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까?'그러니까 주인이 하는말 '손님,붕어 빵에 붕어가 들어 있나요? 빈대떡에 빈대가 들어 있나요? 총각김치에 총각이 들어 있나요?'

그래서 손님은 아무 소리 못하고 호도가 없는 호도 과자를 억지로 꾸역 꾸역 먹었답니다.

여러분 죄송한 질문이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진정으로'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교회를 오래 다니고,목사,장로,권사,집사일찌라도'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인간은 10대에는 '먹는 것'에 20대는 '사랑'에 의하여  30대는 '쾌락'에 ,40대는 '야심'에 50대는'탐욕'에 60대에는'명예심'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요20:22]'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고,하늘 나라에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 부탁,마지막 유언이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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