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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증인이 되자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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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증인이 되자 (행 1:6-11)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행2장)에, 오순절에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전파는 먼저, 예루살렘 안에서 행해졌다. 그 내용이 (행2장-7장)에 나온다.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처럼 큰 박해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흩어졌고, 그 곳에서 복음을 두루 전했다(8-12장).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적대시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자, 그런 감정은 문제되지 않았다. 장벽을 넘어, 복음이 계속 전파되어, 그 당시 땅 끝인, 로마까지 전해진다. (13-28장)까지 내용이다. 성령님이 임하니까, 제자들을 속박하는 로마인에게까지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권능을 받았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임하였다. (고전12:3下)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이 임한 우리에게는, 이미 권능이 주어졌다. 문제는 우리의 순종이요 충성이다.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충성스런 증인이 되어, 전도의 열매를 맺기 바란다. 

1. 잘못된 관심을 버려라(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여쭈다’는 미완료형으로, 계속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질문이 처음이 아니다. 
제자들은 이미 여러 차례, 이 질문을 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로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아서라도,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요6:15). 

이 소원이, 제자들에게도 있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면, 그들도 덩달아 높아지리라 여겼다. 그때 그들 사이에, 누가 크냐는 다툼까지 생겼다(막9:34). 더군다나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인사 청탁을 한다(마20:21). 
또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들의 기대는 사라지고 마는 듯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후에,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 내사,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다(3).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했다. 자연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바람과 관심이, 제자들에게 되살아났다. 그래서 그들은 또, 예수님에게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제자들은 곧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기를 바랐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직접 답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이, 잘못되었음을 깨우치려고 이렇게 말씀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물론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때가 있다. 이미 정치적으로, 영토적으로는 회복되었다. 이천년 만에 회복되었다. 더 나아가 (롬11:26)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날이 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기 바로 직전이다. 구원받은 이방인의 수가 충만하게 차면, 그렇게 된다(롬11:25).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지는, 간단하다. 분명히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때를 알려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때와 그 시기는, 하나님이 자기의 권한에 두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막13:32)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씀을 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과 때는, 하나님이 자기 권한에 두셨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해야, 항상 주의하며, 깨어 있게 된다(막13:33). 뒤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의도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예기치 않은 때에, 예수님이 도둑 같이 임한다고 말씀했다(살전5:2, 벧후3:10, 계3:3). 때와 시기는, 우리의 알바 아니다. 때와 시기에 관심을 두지말자.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며,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와 시기를, 억지로 추정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인위적으로 지정하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미혹되어, 직장을 버리고, 학교를 떠나며, 가정을 등지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연 다른 것이다.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데려감을 당하기도 하고, 버려둠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는 날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상적인 일을 충실하게 지속해야 한다. 예수님은 다시 온다. 단지 우리는,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홀연히 다시 온다. 그러므로 늘 주의하고 깨어 있자. 어느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시더라도,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2. 오직 예수님이 증인이 되자(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런 후에 이제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올바른 방향으로 옮긴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오직’ 그들이 해야 할 사명이었다. 그들이 해야 할 사명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복음은 없다. 씨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이단이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함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계획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있다고 하면 이단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그들에게 필요한 사항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하나님 나라의 일도 들었다. 또 즉시 나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그들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거나,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또한 부인했다. 이처럼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요16:7中)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보혜사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돕는다.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약속이 무엇인가? (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제자들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는 것, 곧 보혜사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여, 하나 됨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 했다. 제자들은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면, 권능이 주어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다. 
예수님이 승천한 후, 10일째 되는 날은, 오순절이었다. 이날 보혜사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했고 제자들은 권능을 받고, 담대해졌다. 예수님이 잡힐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행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했다. 

이제 공회 앞에서도,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다.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먼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온 유대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또 그들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 후에는 땅 끝인 로마까지 가서, 그들은 복음을 전파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십 년 안에 다 이루어졌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권능을 받았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입을 열어, 복음을 전파했다. 

물론 많은 박해가 있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파하던 중, 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헬라어 증인(마르튀스)에서, 영어의 순교자를 뜻하는 단어 마터(martyr)가 나왔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임했다. 우리도 권능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다. 
문제는 증인의 사명을, 착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느냐, 아니면 악하고 게으르게, 감당을 하느냐에 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에, 모임이나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입을 열어 전하면 된다. 특별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입을 다물고 침묵하면, 우리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자.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아니하는 한, 성령님이 역사하면, 우리에게 권능을 주실 것이다. 날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3. 제자들에게 부여된 동기이다(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제자들이 지켜보는데, 예수님의 몸이 둥둥 떠서, 하늘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번도 이런, 신비스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모두 다 황홀한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비행기를 타면,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보이지 않듯이, 예수님은 구름타고 하늘로 올려져 갔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다.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니까, 제자들은 놀라운 듯이, 하늘을 계속 쳐다봤다.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제자들은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천사들이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고, 동시에 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두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만, 그 증언은 참될 수 있기 때문이다(요8:17). 

그래서 이때 두 천사가, 흰 옷 입은 두 사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이제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증언을 했다.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두 천사는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이라 불렀다.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만, 가룟 출신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판 후에,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따라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갈릴리는 멸시를 받던 곳이었다(요7:52). 그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니까,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충성스런 증인들이 되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존귀하게 되려면, 주님의 증인이 되라. 두 천사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했다. 두 천사가 제자들을 꾸짖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마치, 예수님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이 여기며, 아쉬운 듯이 계속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한, 중요한 증언이 나온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늘로 올려지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하늘로서 오신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과 관련해서, 두 천사는 2가지를 증언했다. ① ‘이 예수는’ 승천하신 예수님이 그대로 다시 온다.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자국이 있으신, 예수님이다. 

②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막13:26)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의 모습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오신다. 

신천지는 예수님이 구름타고 올라가심을, 구름을 영으로 해석하여, 영으로 오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신약에 약속한 목자에게, 영으로 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육체가 부활했다. 구름을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함은, 교주를 재림주로 주장하는, 이단들의 해석방법(영지주의 가현설)이다. 예수는 죽고, 그리스도만 부활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어떤 사람에게 임하면, 그도 예수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막13: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했다. 두 천사의 증언은 제자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실 상을 가지고 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야 할 동기는 분명하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 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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