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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2) (롬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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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2) (롬 11:33)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의 통치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 에베소서 1장 11절에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주권적이십니다.
지난 주일 성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①성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 그리고 ② 성령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기 원합니다. 

Ⅰ. 성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신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분의 마음에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성자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자들을 위해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속죄는 제한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온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자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에 『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거듭해서 언급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의 기도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단지 죄 용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6절에 『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50장 20절에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찌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찌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7장 19절에 『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고 했습니다.

오직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죄를 없이하셨는데 과거의 죄가 있고 장차 지을 죄가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에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의 형상을 닮도록 하나님 백성을 미리 정하신 때는 창세전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셨고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만족케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 편에서 볼 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를 대신하고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대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을 위해 저주를 받은바 되셨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무도 정죄 아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예외 없이 온 인류의 빚을 갚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자들은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갚지 아니할 때는 결단코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6절에 『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로마의 동전으로 가장 낮은 화폐)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희 죄 가운데 죽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1절에 『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을 위한 대제사장직의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중보적 행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에 요즘 들어 중보라는 말의 난발은 매우 유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중보 사역이 택자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성경은 로마서 8장 33-34절에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고 했습니다.

성자 그리스도에게 있는 능력은 성부 아버지의 능력과 일치합니다. 죄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죄인은 본질상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외에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이 관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본질상 원수관계를 극복하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주받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리스도에게 나오기를 원하거나 그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의 마음과 의지에 적용된 결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타고난 죄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0편 3절에 『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즐거이 』(willing)는 "자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시도록 자신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주권을 폄하하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제한된 목적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성경의 증언들입니다.

이사야 53장 8절에 『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위의 두 성경은 내용과 의미가 병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견적 교회를 세우기 전에 교회 구성원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을 선택하시고 이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엡 1:4-5).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약속한 택자에 대해 최고의 관심을 가지시고 주목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9절에 『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에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지금 살아있으며 그 분만을 위해 산다는 말입니다.

요즘 "살아있네"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굳이 설명을 붙인다면 현재 상태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활력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은 금세와 내세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이라는 단어는 절대적 의미와 상대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모든이란 단어가 예외 없이 모두가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장 5절에 『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 다(all)는 예외 없이 모두가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8장 2절에 『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다(all)는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6절에 『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8절에 『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는 차별 없이 모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Ⅱ. 성령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위位를 가지시고 항상 두 위와 격이 없는 분이십니다. 택자들을 선택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성자 하나님의 제한적 속죄와 성령하나님의 제한된 사역은 일치합니다. 성령께서 지금 세상에서 수행하시는 사명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과를 적용시키는 일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제한된 것은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의 능력과 같이 무한하십니다.

1) 성령의 역사도 주권적입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작정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작정된 자만을 위하여 피 흘렸습니다. 성령은 그 흘리신 피가 믿어지도록 택자들로 하여금 감화감동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부는 우리의 거듭남을 목적하셨고 성자는 우리의 거듭남을 가능케 하셨고 성령은 우리의 거듭남을 성취하셨습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며 인간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태에서 출생할 때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듯이 영적출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남은 영적부활(첫째부활)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죽은 시체는 스스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했습니다(요 6:63). 믿음자체가 영적산물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살후 3:2). 성령의 역사가 우리의 믿음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 성령의 역사도 제한적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라고 한 말씀과 베드로전서 1장 2절의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라고 한 말씀은 병행구절입니다. 

여기서 순종함은 믿음에 이르는 순종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효력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에 계실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계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요 1:9-11). 성령이 예수님 대신 세상에 계신다는 사실은 세상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은 성자께서 성부께로 가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세상에 계신다는 것은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마지막 날에 세상과 세상 임금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성령을 원하지 않는 큰 이유는 성령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11절에 성령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실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택자들에게만 제한됩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부 하나님은 구원받을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구원 받은 자에게 믿음을 주고 생활 현장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성화작용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며 택자에게만 주어지는 제한된 역사(work)입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신다고 했습니다(욥 5:9, 9:10).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한다고 했습니다(시 145:3).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이라고 했습니다(시 71:15).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할 수 있으리요 라고 했습니다(욥 11:7).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전 3:11).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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