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하는 믿음 (삼하 21:15-22)

첨부 1


감사하는 믿음 (삼하 21:15-2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보편적 공존관계 속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창 6:1-2). 다시 말하면 신자와 불신자, 알곡과 가라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양과 염소,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 성령과 악령, 택자와 불택자, 영생인과 영벌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는 이 세상이 마지막 심판마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Ⅰ. 역사적 상황(삼하 21:15-22)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과 블레셋 관계도 그러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블레셋 관계는 저 옛날 아브라함 때부터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창 21:22-34). 그 후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정복으로부터 시작하여 블레셋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통치 말기에 다시 블레셋의 침략을 받았습니다(삼하 21:25). 다윗은 신복들과 함께 노년의 출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삼하 21:15).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신복들과 함께 출정하여 적군과 접전하였습니다.
  
충성된 신하 아비새가 다윗 곁에서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맞섰던 적장 이스비브놉을 죽였습니다(삼하 21:16-17). 맹장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습니다(삼하 21:19). 십브개가 삽을 죽이고(삼하 21:18),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키가 크고 손가락 발가락이 스물네 개나 되는 기형적인 장수를 쳐죽이고(삼하 21:20-21) 대승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블레셋의 네 장수들, 즉 가드 사람의 장수들이 다윗의 손과 그의 충복스러운 장수들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삼하 21:22).

Ⅱ. 다윗의 용사들은 이스라엘의 등불을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노년에 그의 신복들과 함께 전쟁터에 친히 나가 전투를 지휘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블레셋 사람 이스비브놉과 접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블레셋 장수는 삼백 세겔이나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찼던 블레셋 장수 중의 장수였습니다.   다윗이 이 사람과 더불어 싸울 때 피곤을 느꼈습니다. 그의 생명에 위협이 닥쳤습니다. 이 위기를 직감했던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대적을 쳐죽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아비새는 한평생 다윗의 충복이었습니다. 그의 형은 요압이고 그의 동생은 아사헬인데, 이 세 형제가 모두 다윗의 통치 어간에 다윗과 다윗의 왕국을 지키는 큰 기둥들이었습니다(삼하 2:18, 17:25, 대상 2:15-16). 
  
아비새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을 다닐 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아니했던 자였습니다(삼하 26:8). 다윗이 암몬, 수리아 연합군과 싸울 때에도 직접 일대를 거느리고 전승을 거둔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0:10-14). 사울의 유족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할 때는 그 옆에서 격분을 참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6:9-11, 19:21). 다윗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칠 때는 세 용사(형 요압, 잇대) 중의 한 사람으로 군대 1/3을 맡아 진두지휘한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8:2, 5, 12). 베냐민 사람 세바가 반역했을 때 다윗은 아비새를 등용하여 그의 충성을 받았습니다(삼하 20:6). 그는 세 용사 중 필두에 서서 한꺼번에 적군 300명을 쳐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또 삼 인의 두목 중에 가장 존귀함을 받은 자였습니다(삼하 23:18-19, 대상 11:20). 그는 에돔 사람 18,000명을 죽인 무공의 사나이였습니다(대상 18:12).
  
그 아비새가 지금 본문에서도 다윗의 곁에서 위기를 만난 다윗의 생명을 지키고, 또 여러 다윗의 용사들도 그러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전투 승리의 현장에서 아비새를 위시한 다윗의 용사들이 정말 눈물겨운 충정을 토하는 장면을 보며, 그들의 충성어린 말들을 듣게 됩니다.  본문 사무엘하 21장 17절에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저들은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 ‘등불’이라고 함은 번영과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공의로운 권력과 통치의 상징입니다. 등불은 빛의 상징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대한 이정표를 뜻합니다.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한 저 충복들의 말속에는 ‘당신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갈 길이요,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입니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등불이 꺼짐은 이스라엘의 파멸과 소멸이요 절망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만약 다윗이 전쟁 중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바로 그것은 이스라엘의 비극이요 어두움이라고 저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다윗이 다시 전쟁에 나가는 것을 극구 반대하며 만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피맺힌 충정의 진언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저들의 가슴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등불은 저들 자신이 지켜야한다는’ 동맹적 서원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등불을 꺼지게 할 수는 없다는 저들 자신의 비장한 각오를 보여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내용이 무엇인가? 그 목적이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켜주신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받은 이스라엘의 왕권은 결코 다윗 자신의 산물이나 이새 가문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울 왕가의 산물이거나 백성 자신들의 산물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작정과 계획에 따라 나타낸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산물이라는 것이 저들의 확신입니다. 다윗이 선지자 사무엘에 의하여 장차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이미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다윗은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삼상 16:7, 12-13). 그는 처음에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삼하 2:4).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습니다(삼하 5:4). 그는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삼하 5:5). 그리고 나중에 전 이스라엘 12지파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었습니다(삼하 5:5).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3:22, 삼상 13:14).

다윗의 신복들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로 여기고 그 등불을 지켜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로 켜주셨다는 이 사실에 기초하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신앙이 아닌가? 하나님이 밝혀준 이스라엘의 등불을 지키겠다는 것은 저들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충성입니다. 참으로 대의(大義)에 살고, 대의에 죽을 줄 아는 다윗의 용사들이 아닌가?

2. 지켜야 할 등불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행복이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던 신앙가들이었습니다. 국가 존립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주권자로 세우심은 바로 이스라엘의 존립 그 자체와 직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바른 국가관, 애국관, 애족관이 성립된 것입니다. 저들에게 있어 다윗은 바로 이스라엘 국가라고 하는 존재 존립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다윗의 신복들은 그 시대에 그 사람 다윗과 함께,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사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을 지킴이 나의 나된 존재적 사명이다. 나의 나된 존재적 의미요 목적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스라엘의 등불을 지켜서 꺼지지 말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다윗의 걸음에 인간적인 오류가 있기도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다윗을 지킴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요, 나라와 민족에 대한 충성인 줄을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이기(利己)가 아닌 대의(大義)였습니다. 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조국 이스라엘 왕국을 의롭고 튼튼하게 통치함으로써, 저들과 저들 백성이 그 혜택을 힘입고 안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확고한 국가관, 민족관, 애국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저 헤브론에서 다윗을 왕으로 맞이할 때부터, 아니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쫓김을 당하는 고난의 길에서부터 백발이 되어버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당할 때도 다윗과 호흡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고, 말과 행동을 같이한 것입니다. 저들은 다윗이 임종을 맞이할 그 시간까지도 다윗과 같이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솔로몬을 가리켜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1장 36절에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5장 4절에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1장 7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왕하 8:19).   

하나님은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대대로 등불을 켜고 꺼지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를 알려주는 구속의 영광을 약속하는 예언입니다(마 1:1).
  
바로 시편 132편 17절에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라고 한 말씀입니다.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한다’라고 함이나 ‘기름 부은 자’, ‘등을 예비하였도다’라고 함은 모두 예외없이 그를 통하여 인류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예언함입니다.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등불은 마침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의의 태양으로, 세상의 빛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오실 큰 빛이라고 하였습니다(사 9:2). 그 등불의 빛을 받는 백성들에게는 면류관으로 빛날 것이요, 원수들에게는 수치로 입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32:18).
  
그렇다면 이 시대의 등불의 정체는 명백합니다. 바로 세상의 빛이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등불입니다. 그 등불을 받은 오늘의 교회가 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4-15). 그리고 그 교회로 파송받은 교회의 사자들이 별과 같이 비추는 등불입니다(계 1:19-20).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등불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 존재적 의미와 사명이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교회(성도)는 세상의 빛이요 등불입니다. 그리고 교회로 파송받은 사자들이 빛이신 예수를 반사하고 증거하는 등불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이 이스라엘의 등불이요,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그의 신복들이 모두 이스라엘 국가의 등불입니다. 저들이 숨쉬고 움직일 동안 이스라엘은 어두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블레셋 같은 사탄의 적장들이 이러한 등불을 꺼버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탄의 침략에서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사자들을 지켜야 합니다. 불타지 않고는 빛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녹아지는 촛물과 함께 타오르는 심지에서 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과 충성이 불탈 때 밝은 빛을 구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헤리 라우터(H. Lauther)는 영국 거리의 가스등에 불을 켜는 사람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거리에 등을 달아놓은 기둥을 따라서 불을 켜고 끝까지 간 사람은 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둠 속에 빛을 남기고 갔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이 말에다 한 마디를 덧붙이라고 한다면 “바로 어둠 속에 빛나고 있는 그 불이, 불을 켰던 그 사람의 화신이 아닌가!”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시여! 당신은 꺼져서는 안될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십니다. 온 인류의 등불이신 주 예수여!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빛은 꺼지게 할 수 없는 구원의 빛이십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멀리, 높이, 비추고 또 비추어야 될 생명의 빛이십니다. -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