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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6-15)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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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6-15)

1. 신앙생활의 중심은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소홀히 여기기 쉽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기도생활인 것 같습니다.

기도는 탯줄과 같습니다. 뱃속에 있는 애기가 10달 동안 건강하게 있다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음은 탯줄을 통해 엄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탯줄을 통하여 숨을 쉬고, 탯줄을 통하여 양분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호흡을 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마음이 불안하신 분이 계신가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막힌 것만 같고, 일이 계속하여 꼬이는 분이 계신가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노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와 용기가 주어질 것입니다.


2.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기도에 관한 말을 많이 하신 분 중의 한 분은 레이건 대통령이십니다. 대통령이 되어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3200여 명의 정치인들이 모여 국가조찬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을 하였습니다.

“기도의 힘은 참으로 놀랐습니다. 정치인이란 서로 원수가 되기 쉬운데 이렇게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사이에 어떤 면으로든지 서로 이해하고 서로 화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싶어 하고,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가운데, 서로 이해하려 하고, 서로 화해하려 함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농담(Joke)을 좋아했는데, 기도에 관한 농담을 종종 하였답니다. 

교회를 다니는 어린이가 산에서 곰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도망갈 수도 없어서 아이는 그 자리에 꿇어 앉아 기도하였답니다. “하나님, 이 곰에게 착한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눈을 떠보니 곰도 마주 앉아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소년은 자신의 기도가 금방 응답이 된 줄로 믿고 “이렇게 빨리 응답해 주시니 너무도 놀라운 걸”하고 기뻐하니까, 곰이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너는 무슨 기도를 했는지 몰라도, 나는 지금 식사기도를 한 거야”

그런데 레이건 대통령의 농담 속에 기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가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나만을 위한 기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왜 기도하는 법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시는지,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나,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일치하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우신지,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기도를 통하여 그렇게 느끼고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4. 우리는 이것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이라 하여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거의 날마다 드리는 기도입니다. 어떤 날은 두세 번씩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좀 더 신중하게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단계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하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들으라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기에 진정한 기도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내용으로 기도할지라도 그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과 간구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3) 간구와 소망의 단계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바라는 것이고, 용서하고 용서 받는 삶이기를 바라는 것이고,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잘못은 지나친 욕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단계입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 기도하면서 마치는 것입니다.


5.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입으로 하지 말고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주문 외우듯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이라는 단어에서 가운데 ‘기도’가 빠지면 ‘주문“이 됩니다. 예수님은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주문 외우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기도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기에 우리는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이 기도를 할 때마다 기도의 내용을 그림 그리듯이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할 때에, 온 세상을 사랑으로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때에,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3)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사는 가운데 이루어져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광경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할 때에, 하루하루 살아감을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나도 용서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6)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광야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악을 선으로 대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으로 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6. 둘째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친숙한 자세로 기도하였다는 것이고,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집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에, “우리 집안에 가장이 되시고,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존경하는 나의 아버님이시여”라고 하지 않고, “아빠” 또는 “아부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가까운 것입니다. 그만큼 친숙하게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은 늘 그렇게 하늘 아버지와 교제를 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확신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는 것도 바로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그런 권세를 허락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힘과 권세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저도 자식을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항상 자식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잡아 안정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아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험한 세상을 살다가 힘들 때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아니하고,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치지 않고, “아빠 힘들어요.”하면서 찾아와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이들이 100불이 필요하다고 하면 100불만 보낸 적이 없습니다. 더 보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지요.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러한 관계였기에,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8. 셋째로 <주기도문>의 정신은 “우리”라는 용어에 있습니다. 주기도문에 “우리”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이렇게 많이 반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말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우리>라는 말은 주기도문의 정신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모두>라는 말입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라고 하였을 때에 그 우리라는 말 속에는 어떤 사람들이 속한 것일까요? 마태복음 9:13절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말 속에는 죄인들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12제자들을 보면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드로는 품에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민족해방을 위해 일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국세청 직원으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자였습니다. 그 두 사람은 서로 마주할 수도 없고, 서로 같은 제자가 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두고 <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9. 우리나라의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분을 꼽는다면 반기문 유엔총장을 말할 것입니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을 지내신 분입니다. 그분이 한국의 외무부 장관을 지내실 때에 그분에기 있어서 <우리>란 대한민국을 말할 것입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그분에게 있어서 <우리>란 대한민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되신 분이 지금도 <우리>라는 말을 대한민국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면, 그는 4년 단임으로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난 뒤에 ‘대한민국의 우리’가 ‘세계를 품는 우리’로 바뀐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이든, 남미 사람이든, 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든, 저 북한 사람이든, 모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우리>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에, <우리>란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항상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기 있는 사람까지, 등을 돌리고 싶은 사람까지 <우리>안으로 끌어들이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마음일 때에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없이 <나>만의 마음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욕심일 수 있기에 결코 하나님과 이어지는 마음일 수 없는 것입니다.


10. 저는 덴버지역 교역자회의 총무의 일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 교회, 우리 교인, 우리 감리교회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덴버연합감리교회가 부흥하기를 아침마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덴버에서 다시 살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하는 것은 다른 몇 교회가 어려워졌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만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 속에는 다른 교인들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덴버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부흥되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나만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는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곰이 기도하는 소년을 앞에 놓고 식사기도를 하는 것과 다른 바가 없습니다.


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문 외우듯이 할 것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을 음미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그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가까이 나가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말을 잊지 말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지 않습니까?

미국은 20년 전부터 공립학교 졸업식에서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싸우스 캐롤라이나 피켄스 카운티에 있는 리버티 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을 할 때에, 로이 코스트너 4세가 자신의 졸업식 연설문을 찢고 주기도문을 암송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강단에 서서 동료학생들과 청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학교의 승낙을 받는 연설문을 준비해 왔으나 대신 주기도문을 암송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기도문을 암송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때에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으며, 코스트너는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 채 주기도문의 암송을 마치었습니다. 졸업식 후에 기자들이 찾아와서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학교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 될 수 있느냐는 취지에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기도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기도를 내가 대신하여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입술에 기도를 붙여 주셨음을 믿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임을 믿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의 기도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저기 멀리 있는 자를 위한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마음에 주기도문의 응답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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