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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 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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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7)  
 
술을 좋아하던 분이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맥추감사절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맥추감사절을 잘못 알아듣고는 이번에 "맥주감사절이 있다면서요. 그 날은 교회에서 맥주 파티라도 있습니까? 교회에 나오면 술을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웬 맥주감사절입니까?" 그때 어느 성도가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맥주 감사절이 아니라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성도님이 맥추감사절을 맥주감사절로 오해한 것도 큰 무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맥주는 보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추수와 관련해서 두 가지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맥추감사절이고, 다른 하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말 그대로 보리를 수확하고 거두어들이는 시기인 7월 첫 주에 드리고, 추수감사절은 11월 셋째 주에 드립니다. 맥추감사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밀 추수가 끝난 직후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는 맥추절에 새로 추수한 곡물을 고운 가루로 빻아서 떡 두덩이로 만들어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왔습니다. 제사장은 가져온 떡을 요제, 곧 흔들어 드리는 제사로 드렸습니다. 또한 떡 두덩이와 함께 어린 숫양 두 마리도 함께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맥추감사에 대한 규례는 레위기 23:15-17절에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대를 사는 오늘 우리가 이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지 지키면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곧 순종을 해야 함을 말합니다. 만약 이를 거부할 때는, 거기에 따른 무서운 형벌이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순종하는 자에겐 복이,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따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 들었던 명령이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합니다. 거기에 대한 답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3:14을 보십시오. 거기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습니까?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모세의 말을 듣고 있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손도 아닌데 구지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또한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세가 이 맥추절에 대해 말씀할 때, 이 규례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 백성 된 우리에게도 적용되어 지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신 16:12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왔음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억상실증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었지 않습니까? 물으면 그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린 일을 정말 기억하지 못합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하면 언제 모세를 통해 홍해를 건너게 하였습니까? 라고 반문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물이 없을 때,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시고, 먹을 것이 없다고 할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은 기억이 안 납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야 쉽게 하나님을 배반하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까?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를 잊지 말라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고 살지 말라고 이와 같은 절기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잊지는 않습니까? 지금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혹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여 주셨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이 죄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은 죽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이 애굽에 내릴 때, 그들의 자식들과 생축에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둘째 사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히 지옥형벌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예수께서 살리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Matthew Henry)라는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 일어 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집에 들어오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하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안 되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 맥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켰을까요? 


첫째로 그들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첫 것이라는 단어와 수고하여 라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첫 것이라도, 그것이 부당한 방법으로 취한 것 하나님은 받질 않으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땅에서 수고한 것 중에서 제일 첫 것을 드려야 합니다. 첫 것을 드린다는 것은 유월절 예식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장자 재앙은 초태생에게 내린 벌입니다. 초태생이면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다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처음 것을 드린다는 의미는 초태생 장자 죽음에 대한 대속을 뜻합니다. 장자로서 죽어야 하는데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여 예물로써 대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4:18-26절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그 예물로서 대속의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예물을 말씀하실 때 빈 손 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물은 자원하는 예물입니다. 그것이 억지나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이면 하나님은 받질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헌물을 받을 만큼 가난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인색함으로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헤아려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을 받았을 때 아직 가나안에 정착하지 않은 때이므로, 앞으로 주실 복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를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74년부터 1877년까지 3년에 걸친 심한 가뭄과 엄청난 수의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경제 공황에 빠졌습니다. 1877년 4월 27일, 미네소타 주 주지사 필스버리(Pillsbury) 씨는 모든 주민에게 '감사 기도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 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실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는 것이었다. 미네소타 주민 전체의 감사 기도는 하늘을 덮었다. 

그러자 들판을 덮었던 메뚜기 떼가 며칠 사이에 전부 죽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들어 낸다고 할 때 그 기적은 믿음이 동반된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복 주실 것에 대해 감사하고 문제 해결해 주실 것에 대해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은 1년 중 전반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배푸신 복에 대해 감사하고 앞으로 나머지 반년도 복 주실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분도 복 주실 것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모든 식구들과 함께 맥 추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이었고, 신약시대에는 교회입니다. 성막과 성전에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져온 예물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도록 흔들어 요제를 드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날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열납하시도록 축복하게 하십니다. 제사장들이 흔들어 요제를 삼은 것은, 곧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교회에서 나와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나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 심지어는 우거하는 객이라도 나그네라도 외국인이라도 함께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가족 모두가 다 나와서 맥추절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맥추절에 대한 규례는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대대로 지킬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언약은 금생뿐만 아니라 내새에도 유효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맥추절에 대한 규례를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처음 익은 열매가 곧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대문입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이 첫 곡식을 요제로 흔든 다음에야 비로소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열매가 있은 후라야 우리 모두 부활할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무말랭이처럼 말라비틀어진 육체는 지니고 언제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루 게릭병(근육 무력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겨우 20세가 되던 해에 이 병에 걸렸다는 통고와 함께 앞으로 1, 2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학적인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입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랄까. 죽음이 선고가 있은 지 무려 40년 이상을 살고 있긴 하지만 1985년에는 또 다시 폐렴에 걸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말하는 기능가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그 불행과 고통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야 할까요? 당사자인 호킹(Howking)박사의 <시간과 역사>라는 책을 대하면 유달리 농도 짙은 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우리가 통상 머리말이라고 하는 부분을 그는 "감사의 말"이라는 제목 하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이 또한 전개되어 가면서 그는 계속하여 자기의 행복을 고백하고 타인에 못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단히 감격하고 있습니다. 호킹은 만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불행의 요건을 남달리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며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삶의 자세로 간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자세가 아니라면 그가 어찌 그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리나라까지 와서 강연을 하겠다는 엄두인들 내겠습니까가? 호킹은 남달리 값지고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원인은 곧 감사로 충만한 정신자세 때문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해 봅니다. 흔히 그는 현대의 살아 숨쉬는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공의 마술사'인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이론 물리학자라는 평가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는 나이 겨우 32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학문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왕립협회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Lucasian) 수학교수로서 뉴턴의 영예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건강, 지위, 재산, 가문, 학벌, 건전한 가족운 등 남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들을 한 몸에 독차지하고서도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 찌들고 비뚤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천당에 옮겨다 놓아도 거기에서도 불평거리를 찾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지옥의 삶을 살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워 보이는 삶의 여건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호킹 박사와 같이 본인의 기본적인 자세만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감사가 충만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인간임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재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날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지옥형벌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십시다. 또한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할 것에 감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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