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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제로 드려진 사람들 (민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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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로 드려진 사람들 (민 8:5-13)


오늘 본문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취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제는 제사 방식이 제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제물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은 호사가들에게는 말거리가 될 수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레위인을 요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구?

먼저 누구를 요제로 바치라고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요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레위인을 요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레위인은 누구입니까? 혈통적으로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레위의 자손 곧 레위지파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들은 야곱의 12 아들의 자손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12 지파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12 아들 중 레위지파를 빼고, 요셉에게 두 몫을 주셔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의 12 지파에 포함되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이 레위인들에게는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성직’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게 맡기신 성직은 이런 일들입니다. 우선 성전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다음으로 성전에서 찬양대로 또한 성전 관리인으로 그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성읍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레위지파는 특별한 지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특별하게 세우신 특별한 지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는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따로 세우신 특별한 지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위인들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사람들이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저 하나님의 돌보심만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현대판 레위인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라는 사람이 소위 ‘2080 법칙’이라는 것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너무도 유용한 법칙이어서 오늘날까지도 여러 영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법칙의 핵심 내용은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서 비롯됐다'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의 조직원이 그 조직의 80%의 일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체 상품 중 20%가 80%의 매출액을 차지할 뿐 아니라, 전체 고객의 20%가 또한 전체 매출액의 80%를 기여하고 있고,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하며,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레토가 이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히 개미를 관찰하고 나서입니다. 개미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20%만 열심히 일을 하여 모든 먹이의 80%를 준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60%의 개미들이 그 나머지 20%의 먹이를 준비하고, 나머지 20%의 개미들은 그저 빈둥거리며 놀고만 있더랍니다. 
파레토가 이 사실을 인간 사회에 적용해 보니 인간사회에도 마찬가지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20%의 교인들이 80%의 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20%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 80%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20%의 사람들이 오늘의 레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80%의 그리스도인들입니까? 아니면 20%의 그리스도인들입니까? 그저 하나님의 돌보심만 받고 사는 80%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쓰임을 받고 사는 20%의 레위인들입니까? 여러분들이 바로 이런 레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그러면 레위인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린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요제란 흔들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제사장이 제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아래위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 요제에 관한 내용이 30번 정도 나옵니다. 이 때 요제로 드려진 제물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화목제물로 드려진 동물의 가슴 부분, 성막 장식용으로 바쳐진 보석류, 위임식 수양의 가슴과 넓적다리 부분, 칠칠절에 드린 누룩 넣은 빵과 곡식의 첫 열매와 어린 양 두 마리, 문둥병의 정결예식에 사용된 어린 수양과 감람유 등입니다.

이 요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개적인 선포’에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과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손에 들고 흔드는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을 의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제물들은 구별된 것이고, 앞으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을 요제로 바치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요제로 바쳤을까요? 사람을 어떻게 제사장이 손 위에 올려놓고 흔들 수 있을까요? 민 4:48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제로 바치라고 명하신 레위인의 대상자 수가 8580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요제로 바치기도 쉽지 않은데,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요제로 바치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이 나름대로 연구해서 추정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레위인을 한 사람씩 제단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게 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요제를 드린 것이 아니고 제사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행동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공감하는 것은 레위인을 대신한 제물을 요제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일할 사람들을 따로 구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요제로 드리게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본격적으로 저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요제에 임하는 레위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요제를 통해서 무엇보다 두 가지 결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 공적 부담감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레위인은 요제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일꾼으로 세움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자신이 공적으로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저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자신의 신앙만 지켜오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공개적으로 자기의 신앙적 삶이 노출되고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살펴야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야 당연히 목사니까 이런 부담감을 기쁨으로 감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신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이런 부담감을 심하게 느껴본 일이 있었습니다. 

군대생활 때입니다. 1년 반 정도 군종사병으로 근무한 일이 있습니다. 군종사병은 군복에 십자가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십자가 때문에 먹는 것, 가는 곳, 심지어 하는 말까지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을 영적으로 긴장하게 해주었습니다. 더더욱 그 십자가 때문에 어디서나 복음을 전해도 으레 그러려니하고 받아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부담감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러 옷에 십자가 마크를 새겨 넣고 다닐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만은, 그렇다고 일부러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요제로 나를 드린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내가 그리스도인이고, 내가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담스럽더라도 당당하게 밝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켜줄 것이고, 여러분이 주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다른 하나, 헌신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레위인은 자신을 요제로 드리면서 앞으로는 주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순간순간 주를 위한 헌신을 결단하며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근자에 평신도 선교사역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소위 ‘BAM’(Business As Mission·선교로서의 비즈니스)을 지향하는 평신도 선교사역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이 BAM 은 과거의 

BFM(Business For Mission·선교를 위한 비즈니스)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BFM 은 비즈니스를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선교를 후원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업을 통해서 선교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BAM 은 비즈니스가 곧 선교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업 그 자체가 선교이기 때문에 사업 자체도 선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업 자체를 하나님 나라의 운동의 과정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업은 사업대로 하고 선교는 따로 시간과 물질을 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사업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요셉이나 다윗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경의 인물들은 따로 선교지로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우거나 주의 일이라고 해서 따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저들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늘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 레위인을 요제로 드린 구체적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위인들은 요제로 드려진 뒤에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레위인들보다 똑똑한 사람들, 재능이 많은 사람들, 성품이 좋은 사람들 얼마든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 책상에는 필기구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볼펜들, 만년필, 그리고 각종 형광펜이며 싸인펜 등등 어림잡아 20여개가 필통에 가득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사용하는 것은 자그마한 연필 한 자루입니다. 가격도 가장 싸고 볼품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왠지 늘 손에 잡혀서 그것만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필통에 담긴 필기구 가운데 몇 년 째 한 번도 손에 잡아보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훨씬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그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 그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느냐,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닉 부이치치가 힐링캠프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큰 감동을 준 일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감사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분은 사지가 없는 채로 태어났습니다. 8살 이후 세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부모의 기도와 사랑의 돌봄으로 성장했고, 15세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19세 때부터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40여 개국을 다니며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가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사지가 없는 이런 모습으로 주님을 위해 정말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점 때문입니다. 거침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그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 어느 위대한 설교가가 이렇게 공중파 TV 방송에서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지가 멀쩡한데도 주님을 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건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실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행동하십시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주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오늘 본문의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요제로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현대판 레위인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숨기지 마십시오. 공적으로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으로 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십시오.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실천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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