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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를 뿌리는 교회 (막 4: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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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는 교회 (막 4:26-29)


계 2-3장에는 소아시아의 7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주님의 눈에 비쳐진 7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 각 교회에 대해 칭찬하실 것은 칭찬하시고, 책망하실 것은 책망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독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교회가 둘이 나옵니다. 바로 빌라델비아교회와 서머나교회입니다. 또한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교회가 넷이 나옵니다. 바로 에베소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입니다.

주님의 눈에 비쳐진 우리교회의 모습은 어떨까요? 결코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책망만 받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대신에 빌라델비아교회와 서머나교회처럼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 어떤 교회를 칭찬하실까요? 아마도 열심히 씨를 뿌리는 교회를 칭찬하시지 않을까요?

얼마 전 한 기독교 언론 매체가 우리교회를 ‘대형교회?’로 분류한 바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교회 분류 기준으로 볼 때 우리교회가 대형교회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교회는 출석교인 수와 재정규모를 종합해 볼 때, 우리 교단 내에 8000여 교회 가운데 1% 안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초대형교회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교회평가 기준으로 볼 때, 대형교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가 이렇게 성장해 오는 과정을 살펴보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씨를 뿌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년부를 보면, 우리교회에서 자라서 청년부원이 된 사람들보다, 지방에서 올라와 우리교회 청년부에 정착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저들은 지방교회가 씨를 뿌린 사람들이고, 우리교회는 다만 열매를 거둔 사람들입니다.

또 장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초신자를 전도하고 양육해서 교인이 된 사람들보다,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타지역에서 이사 와서 우리교회에 정착한 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저들은 다른 교회가 씨를 뿌린 사람들이고, 우리교회는 다만 열매를 거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가 씨를 뿌리고 양육해서 타지로 보내거나 목회자 또는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들보다, 우리교회로 유입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결국 우리교회는 씨를 뿌리는 것보다 열매를 맺는 일을 더 많이 한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씨 뿌려 공헌한 것보다 다른 교회가 씨 뿌린 열매를 거둔 것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물론 열매 맺는 일도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매 맺는 것 못지않게 씨 뿌리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일전에 지방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일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푸념을 들었습니다. 교회학교를 열심히 부흥시키면 아이들이 자라서 대부분 서울로 떠나버린답니다. 교인들도 자리 잡고 살만하면 서울로 떠난답니다. 그래서 늘 마음 한 켠이 쓸쓸하답니다.

괜히 제가 미안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씨를 뿌리는 교회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씨를 뿌리는 교회들을 주님께서 칭찬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교회만 부흥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씨 뿌리는 일은 등한히 하게 됩니다. 그저 열매 맺는 일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런 교회를 과연 칭찬하실까요? 이제 우리교회는 열매 맺는 일보다 씨를 뿌리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요?

우리교회가 앞으로 힘써서 뿌려야 할 씨는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 ‘복음의 씨’입니다.

막 16:15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라는 말씀입니다. 노골적으로 저들을 자기네 교회로 인도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열매를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교회 내에 그리고 가정 내의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저들이 복음 안에 무럭무럭 자라서 곳곳에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산하는 위대한 역사를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들이 계속 우리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타고 훨훨 온 들판으로 퍼져나가듯이 우리나라 곳곳으로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파송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케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 밖으로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 지역 가까이에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 즉 상도동과 동작구 나아가 서울의 성시화 운동에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먼 곳으로 나아가 연약한 미자립교회나 농어촌교회 주변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 복음화를 위해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저 중국 땅에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전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쓰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둘, ‘사랑의 씨’입니다.

마 5:16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의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YMCA(기독청년회)는 1844년 영국에서 조지 윌리엄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방황하는 청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가는 일들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조지 윌리엄스는 가출하여 방황하던 소년이었습니다. 하루는 거리에서 잘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베르나르도 박사가 이 소년을 불쌍히 여겨서 거두게 됩니다. 평소에 선행을 하지 않던 사람이지만 그날따라 마음의 큰 감동이 일어나 그 소년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처럼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 덕에 조지 윌리엄스는 믿음 안에 잘 자랐고, 훗날 YMCA를 세워 놀라운 일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르나르도라는 사람이 남몰래 뿌린 사랑의 씨가 훗날 놀랍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됐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이런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숭실대학교를 비롯하여 주변의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먼 곳에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도 따뜻한 사랑의 손질을 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씨를 뿌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한 마디로 말하면 씨 뿌리는 사람은 씨 뿌리는 일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씨 뿌리는 일만 하면 됩니다. 씨가 싹이 트고, 자라고, 이삭을 맺고,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앞을 보면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가 네 종류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하나는 길 가에 뿌려졌고, 둘은 돌밭에 뿌려졌고, 셋은 가시떨기에 뿌려졌고, 그리고 넷은 좋은 땅에 뿌려졌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본문의 농부는 왜 씨를 좋은 땅에만 골라서 뿌리지 않았을까? 왜 아까운 씨를 열매를 거둘 수 없는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에 뿌렸을까? 혹 이 농부는 초보는 아닌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아닌가?’

그런데 본문에는 이 농부의 씨 뿌리는 자세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농부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인 줄 알면서도 그런 곳에 일부러 씨를 뿌린 것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곳에 뿌려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농사의 결과는 농부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저 정성을 다해서 씨를 뿌리면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것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또한 어떤 시는 길가에 떨어진 것처럼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씨를 뿌릴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꼭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 믿음으로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씨를 뿌릴 때 그 씨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열매를 맺을 것을 믿으며 뿌려야 합니다.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일전에 ‘아라홍련’에 관한 기사를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함안의 성산산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연못의 퇴적층에서 연꽃 씨 10알을 발견했습니다. 연대를 측정해 보니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꽃 씨임이 밝혀졌습니다.

함안군 농업기술센터와 함안 박물관이 발아를 시도했습니다. 놀랍게도 2010년 7월7일에 700년의 침묵을 깨고 아름다운 연꽃이 그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함안군은 옛 아라가야 지역에서 붉은 연꽃이 피어났다고 하여 이름을 ‘아라홍련’이라 지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아라홍련 재배지를 박물관 근처에 크게 확대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하고 있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작은 연꽃 씨앗이 땅속에 묻혀 있다가 700년 만에 다시 꽃을 피운 것입니다. 바로 씨앗 속에 담겨있는 생명의 힘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릴 때, 사랑의 씨를 뿌릴 때 우리는 미약하지만 우리가 뿌리는 그 씨앗이 힘이 있습니다. 그 씨앗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오늘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둘, 눈물로 뿌려야 합니다.

시 126: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의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씨를 뿌릴 때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씨를 뿌릴 때 왜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씨를 뿌리는 일이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접 농사를 지어보지는 않았습니만 곁에서 거들어 본 일이 있습니다. 씨 뿌리기 전에 준비      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씨 뿌릴 땅을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쟁기로 갈고, 돌을 골라내고, 이랑을 내고... 그리고는 씨 뿌리기 전에 복토를 하고 또 거름을 줍니다. 지력을 높이려고 하는 작업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채소 한 잎조차도 큰 수고의 열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식탁에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와 사랑의 씨를 뿌릴 때 그냥 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수고가 따릅니다. 정성을 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는 씨를 뿌릴 때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농사 지으시던 이모부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봄철에 씨를 뿌릴 때 쯤 되면 작년에 추수했던 양식들이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어떤 해는 너무 배가 고파서 씨를 뿌리기 위해 남겨두었던 종자들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있답니다. 어차피 가을 추수 때까지 살아남기 힘든데 차라리 종자까지 먹고 죽자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답니다. 정말 어떤 해는 씨를 뿌릴 때 눈물로 뿌릴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비슷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국 사천성의 아미산 교회 건축을 돕고 있습니다. 제법 큰돈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미 적지 않은 헌금을 했습니다. 우리교회가 건축을 계획하고 있을 때 결정한 일입니다. 그리고 건축 중에 빚을 지어야 할 상황인데도 지원해야 했습니다.

한 편으로 아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든 씨 뿌리는 일을 중단하고 빚부터 갚고 난 뒤에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도 힘이 들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계속 씨를 뿌려갈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오래 전에 보았던 그림 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프랑스 화가 밀레가 그린 ‘씨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입니다. 해질 무렵 모자를 쓴 건장한 농부가 들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움큼 씨앗을 들고 대지를 향해 씨를 뿌리는 것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원래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파리로 가서 도시적인 그림을 그리며 출세하려고 했습니다. 34살이 되던 어느 날 자기 작품들을 본 한 청년이 “밀레는 여자만 그리는 군 그것도 벌거벗은 여자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밀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리게 된 작품이 이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는 밀레가 깨달은 화가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화가란 예술의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바로 복음의 씨와 사랑의 씨를 뿌리는 곳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바로 복음의 씨와 사랑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우리 상도중앙교회 창립 57주년입니다. 새성전시대 우리교회가 힘써야 할 일을 새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씨를 뿌리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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