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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 (삼상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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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보시는 것 (삼상 16:7-8)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까?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외모를 가꾸기도 하고 교양 있게 처신할려고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여 신임을 얻고 호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기위한 불가결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나 하는 것이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관심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고 잘 보아 주시는 것이 축복중의 제일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겉모양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여 신뢰하고 믿어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꽤 뚫어 보십니다.

시편94:9절에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자가 보지 아니하시랴"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보다 몇 천배나 정확하신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욥기11:11절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 하나 다 보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이나 다 보고 계시고 심지어는 우리인간들의 마음 중심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까지도 다 보시고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악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저런 것은 안보시나 보다. 이런 것은 모르시나 보다 왜 악한 자를 그냥 두시는 것일까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러나 다 보고 계시고 선악 간에 모든 것을 다 살피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우리의 어떤 것까지 보고 계시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출애굽기3:7절에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건져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긴 세월동안 애급의 바로의 학정에서 굴욕적인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고통을 보시지 않은 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정녕히 떠나셨구나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알고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불행한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를 복된 길로 이끌어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은 나의 형편과 사정을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즉시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복받을만한 그릇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시고 참으시는 것도 있고 응답을 안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이 혼란이 오고 말 것입니다. 농사를 하는 사람은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고 야유 예배를 가는 교회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셔야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외면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아보시고 환란가운데서 건져주시어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움을 보십니다.

창세기7:1절에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세상 사람들의 죄악이 하늘에 까지 사무쳤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노아만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에도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할 때 노아는 120년에 걸쳐서 거대한 구원의 방주를 짓고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증거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비웃고 조롱으로 노아의 외침을 일축했습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120년이란 긴 세월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며 고독한 생애를 보냈을 때 하나님은 노아 편이 되셔서 한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온 세상이 물로 멸망을 당할 때 노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비록 환경이 어렵고 실패 같으나 결국에 가서는 승리하고 성공하는 것이 의인의 생애인 것입니다. 시편34:15절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리시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함과 진실로 의로움을 정녕 굽어보시고 축복으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야보고서5: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비록 외롭고 험난한 길을 가지만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굽어보시고 마침내 축복의 사람으로 쓰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마가복음2:5절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중풍 병은 무서운 병입니다. 몸의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요즘 의학이 최고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풍병자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의술이 발달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대 이런 불행한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온갖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네 사람에게 떠메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 받을 장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병을 치료해주시고 큰 은혜를 주시고 싶어도 은혜의 자리에 오지 않으면 그러한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집 앞에 까지 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옹신 할 수도 없어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라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의 절망이 해결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향하여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자 육신의 질병의 문제도 해결 받아 즉시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신 분들도 계시고 최근 많은 사람들이 온갖 암이나 심장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일들이 많은데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도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온갖 암 덩어리가 녹아지고 약한 몸이 강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의사는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 앞으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달려 치료의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여 주시므로 깨끗하기 고침 받고 건강하게 되어질 줄 믿습니다.

중한 병이 들었다고 낙심하거나 운명이라고 체념하거나 비관하면 안 됩니다. 절망이 역전되어 오히려 더 큰일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소망가운데서 기도로 승리하시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보십니다.

열하20:5절에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낳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보셨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나이 25세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는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잘 지켜 행하며 아래로는 백성들을 사랑으로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고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형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므로 모든 것이 형통하고 풍성한 복을 받았고 막강한 군사력도 갖게 되어 나라의 위세가 온 만방에 떨쳐지자 마음에 교만이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만이 들어가자 과거의 신앙으로 살던 때를 망각하고 자신이 정치를 잘해서. 모든 것이 자신의 공로로 잘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교만이 들어가자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교만이 하늘을 치솟자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괘심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질병으로 치셨습니다. 등창으로 몸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셔서 경고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지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히스기야는 이 말을 듣는 즉시 엎어져 얼굴을 벽에 대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애절한 심정으로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계했습니다. 

(교만한 죄/ 감사치 못했던 죄/ 망령되이 살았던 지난날의 죄를 다 토설하고 한번만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겸손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맹세하며 기도할 때 히스기야 왕의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기도에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3일밖에 살 수 없는 목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므로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위기에서도 나라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육 간에 더 큰 축복을 받아 지난15년의 세월은 이전에 누렸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과 나라에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만하고 감사를 모르면 그리고 은혜를 져 버리면 채찍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선고를 받습니다.그래서 히스기야처럼 자신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시면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맹세하고 기도하면 긍휼이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십니다.

치료해 주시면 하나님과 약속하고 맹세했던 대로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므로 이전보다 더 보람 있는 업적을 남기며 하나님이 예정하신 수명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막나니 아들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거스틴은 망령된 길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모니카는 목사님을 찾아갔는데 목사님은 눈물의 기도는 언젠가는 응답받을 줄 믿고 낙심 말고 기도하라고 목사님은 권면했습니다. 모니카는 그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더욱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무렵 어거스틴은 배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는데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파선하게 되어 어거스틴은 바다에 빠져 널빤지 하나를 겨우 붙잡고 바다와 사투를 벌렸습니다. 그는 기진맥진했고 큰 절망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때 어거스틴은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벌 받을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내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평생 눈물의 기도로 사신 분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나를 한번만 살려주시면 이제부터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좋은 일 많이 하겠습니다. 하고 서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대 이것은 꿈이었습니다. 꿈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어거스틴은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목사님을 찾아가 모든 것을 자복하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는 결국 진실한 신자가 되고 생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가 기록한 참회록에서 어려서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물었던 것 까지도 고백할 만큼 철저하게 회개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헛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이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눈물이 없었던 메마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주님의 눈물의 병에 우리의 눈물을 담아봅시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계시고 잘못된 길에서 속히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히스기야 처럼 치십니다."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 이런 진실 된 물음이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도 보시고 의로움도 보시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도 보시고. 우리의 충성도 보시고.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 까지도 보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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