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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마엘의 생애 (창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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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생애 (창 21:9-21)

성경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성경의 주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그리고 유다의 아들 중에서도 다윗, 다윗의 계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만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닙니다. 이스마엘도 있고 나중에는 후처 그두라를 취해 많은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제외한 많은 아들들은 전부 비주류입니다. 

비주류의 대표는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장남이기 때문입니다.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주류가 되지 못하고 비주류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인 이스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Ⅰ. 이스마엘의 출생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잉태할 수 없는 연령에 도달하였고, 그로인해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속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에는 조카인 롯을 상속자로 생각해보기도 했고, 창세기 15장에는 집에서 기른 종 가운데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도 엘리에셀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는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자신의 몸이 아닌 애굽출신의 여종 하갈의 몸에서 상속자를 얻고자 했고 하갈이 잉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종 하갈은 자기가 잉태함을 깨닫고 여주인인 사라를 멸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하갈을 내어 쫓아버렸습니다. 

하갈은 잉태한 몸으로 집에서 내쫓겼고 광야를 방황하다가 샘물 곁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샘물 곁에 있는 하갈을 방문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9~10). 

하갈은 그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사자가 자기를 만나주셨고 지금도 보고 계신다는 것에 감격해서 그 우물을 ‘브엘라헬로이’(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분의 우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 사라에게 복종하였고 때가 되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자식의 이름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입니다.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세기 17:15~16). 

사래라는 것은 왕비라는 의미이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 많은 나라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 17:18).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마엘은 14살이 되었고 아브라함은 맏아들인 이스마엘을 기뻐했습니다. 14년 동안 이스마엘과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정당한 상속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이스마엘은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내년이 되면 아들을 낳으리라.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이삭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입니다. 그로인해 아브라함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스마엘을 향한 자신의 부성애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고 순종해야 되는 감정적인 갈등을 겪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맏아들을 낳아서 14살이 되었는데 “저 아들은 네 상속자가 아니다. 저 아들은 내쫓아라. 그리고 내년에 태어날 그 아들이 너의 상속자다.”라는 말을 듣게 된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14년을 좋아했던 맏아들을 쫓아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문제점입니다.
 

Ⅱ. 이스마엘의 성품 

샘물 곁으로 쫓겨난 하갈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마엘이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인지도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창 16:12). 

NIV성경을 보면 “형제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살리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고 도와줘야 할 형제들을 향해 항상 적개심을 품고, 다투며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세기 21:20). 

이스마엘의 직업은 궁사였습니다. 활 쏘는 사람들은 주로 사냥을 하고, 전쟁이 나면 적군의 심장을 쏘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활 쏘는 사람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공격적이고 적개심을 품으며 다투고 공격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이런 성품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창 21:8~9).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1년이 지나면 돌잔치를 해줍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1년을 살면 자생력이 생겨서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기념하여 돌잔치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잔치를 하지 않고 대신 젖을 떼는 날에 대연을 배설해줍니다. 하지만 아무나 젖을 뗄 때 대연을 배설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연을 배설해준다는 것은 이 아이가 우리 가정의 정식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표하는 것입니다. 

젓을 뗀 이삭이 약 3살 정도 되었을 때 이스마엘은 17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3살짜리 이삭을 상속자로 공표하니까 이스마엘의 마음속에 쓴뿌리가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장남인데도 나한테는 대연을 배설해준 적이 없고 나를 상속자라고 공표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니까 상속자라고 공표해주고 대연을 배설하는구나. 이삭이 우리 집에 태어남으로 인해서 나는 찬밥신세가 되었구나.” 그래서 17살짜리 이스마엘이 3살짜리 이삭을 희롱한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갈 4:29).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태어난 이삭을 이스마엘이 핍박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상속자의 위치에서 탈락된 이스마엘이 상속자의 위치로 올라온 이삭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함으로 이삭을 통해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적대적이고 투쟁적이며 공격적이고 하나님을 향해서 반항하는 성품과 행동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 아들 이스마엘은 바람직하지 않은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훌륭해도 자식 가운데 나쁜 사람이 나올 수 있으므로 자식이 잘못한 것이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버지에게 내어쫓겼어도 항상 자기편을 들어주는 어머니 하갈에게는 순종했습니다.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창 21:21). 

어머니가 애굽 여인을 취하여 주니 순종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말한대로 이스마엘은 그 자손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늘어났습니다. 아들을 12명이나 낳았고 딸도 1명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야곱도 아들 12명, 딸 1명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주류이고 이스마엘은 비주류이지만 자녀를 똑같이 낳은 것입니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바로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오늘날 아랍 사람들은 이스마엘을 그들의 선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 교도들은 이슬람 월력으로 12월이 되면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을 순례합니다. 순례를 하게 되면 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례하다 죽으면 그 즉시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이 메카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아랍이라는 것은 나라가 아닌 민족 이름입니다. 아랍 민족들은 지금 현재 아랍 연맹을 이루어 22개 국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2개 국가를 총칭해서 아랍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랍은 민족 이름이며 이스마엘 후손들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마호메트가 조상이기 때문에 아랍 사람들은 다 이슬람을 국교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라고 해서 모두 아랍 족족은 아닙니다. 

오늘날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 족속은 이슬람을 종교로 삼고 기독교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은 조용한 부류의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공격적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슬람 국가의 공격적인 분파들이 행하고 있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평생 활 쏘는 사람으로 살다가 137세에 죽었습니다. 


Ⅲ. 이스마엘의 추방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자기 남편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말합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창 21:9). 

사라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는 말에 아브라함은 걱정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창 21:11).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지금까지 17년 동안이나 맏아들로 키워왔고 온갖 사랑을 부었는데 사라가 내어 쫓으라고 하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머리로는 이삭이 상속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삭도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아우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서에게 복을 주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장남에게 향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음은 이스마엘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 21:12). 

창세기 21장 6~7절에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는 좋아서 웃었지만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태어나므로 내 맏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되는구나.” 하나님과 사라의 뜻에 따라 아브라함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맏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감정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이스마엘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 21:13). 

여종의 아들인 이스마엘도 너의 육신의 씨가 맞으므로 그로 내가 한 민족을 이루도록 복을 줄 것이니 걱정 말고 내어 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매어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였습니다. 

하갈은 쫓겨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떡과 물이 다 떨어지니까 하갈과 이스마엘은 마주보고 앉아서 방성대곡 했습니다.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창 21:16).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방성대곡을 들으시고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시어 물을 마시고 살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도 큰 민족을 이루어 22개 국가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물질적인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에 불과하지 영적인 자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현세의 복은 받았어도 영혼구원의 복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축복하셨지만 그것은 영적인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 물질의 복은 주셨어도 영혼구원의 복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한 사건을 두 가지로 해석했습니다. 첫째는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비진리를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갈 4:22~24). 

하갈과 이스마엘은 시내 산의 율법언약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라와 이삭은 예루살렘의 은혜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율법을 지키고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명백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노력하여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비진리입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하고 죄가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씀은 율법구원설과 같은 비진리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쫓아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 

하갈과 이스마엘은 율법구원설 같은 비진리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구원받은 성도 안에 남아있는 옛 성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그러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씀은 오랫동안 친숙했던 우리의 죄악 된 성품, 옛 성품의 죄악들을 내어버리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는 아닙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7~8). 

아브라함과 육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비진리를 쫓아내고 진리를 따라가며 육체의 소욕을 쫓아내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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