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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부자의 비유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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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자의 비유 (눅 12:13-21)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부자의 비유는 그 비유를 말하게 된 동기가 유산 나누기를 기대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우리들 주변에도 아버지의 유산을 형제들이 나누어 가질 때 형제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갈등과 불평을 치르면서 법정 소송을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대기업 창업주의 2, 3세만이 아니고 당장 개개인들의 삶도 유산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부모와 원수가 되고 동기간에 원수가 된 사례를 볼 수 있다.

주님은 비유를 말씀하기 전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주님은 생명의 가치가 무엇을 많이 가졌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셨다. 물질을 많이 가진다고 생명의 질이 높아지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을 쌓아둔다고 해서 평안이 생기고 안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유산을 나눠 달라는 중재 부탁도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탐심이 있는 한 나눠주고 중재해서 분배해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부자의 비유는 사람이 탐심에 빠져 무엇인가를 자꾸 더 손에 넣어야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삶에 대한 어리석음을 깨뜨려 주기 위한 내용이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인지 말해주려는 내용이다. 

오늘의 비유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 부자의 성공적인 삶 (눅12:16)

눅12:16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소출이 풍성하다는 것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밭에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깜부기 재앙과 황충의 재앙으로 인해 흉년이 들고 가뭄이 들어 소출이 빈약하고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한 부자는 밭에서 풍성한 결실을 거둬드릴 때 복을 받아도 크게 받은 것이다. 그는 성공 가도를 걷는 사람이다.

2. 부자의 고민하는 삶 (눅12:17)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부자의 고민은 엉뚱한 것이었다. 정신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고민 등 3차원적인 고민이라기보다는 먹거리 쌓아두기의 1차원적 고민이었다. 곡식의 소출은 많아서 좋은데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기에 고민한다. 부자의 고민은 쌓아둘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에 대한 ‘어찌할꼬’의 고민이었다. 그 곡식들을 팔아서 더 가치 있고 더 차원 높은 일을 위해 사용한다는 고민이 아니고 ‘어디다 쌓아야 할꼬’의 고민이었다.

3. 부자의 계획과 결정내린 삶 (눅12:18)

부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내린다. 쌓기 위해 ‘어찌할꼬’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 투자의 계획은 더욱 쌓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눅12:18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넉넉한 소출을 담아 둘 수 없는 곳간, 성공한 삶의 풍성한 것을 담을 수 없는 공간, 이 공간을 헐고 더 크게 짓자. 자신의 삶의 성공을 담아 두는 큰 곳간을 건축하는 것이 부자의 계획이며 결단이었다. 

부자의 계획은 지혜로운 것 같다. 부자의 결정은 합당한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지혜로운 것인가? 이렇게 쌓아두기 위해서 곳간을 새로 짓는 삶이 지혜로운 삶일까?

4. 부자가 신뢰하는 물질의 삶 (눅12:19)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부자는 성공을 신뢰하고 그 열매로서의 물질을 신뢰하였다. 그 물질을 쌓아두는 곳간의 양식으로 여러 해 동안 사용할 수 있음을 신뢰하였다. 그리고 삶의 미래를 예측하였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물질을 의지하는 물질적인 부자의 삶은 그 쌓아둔 물질을 통해 평안을 보장 받고자 하였다. 물질을 통해 안식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육적 욕구를 채우는 기쁨을 갈망했다. 

부자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다. 공부하고 대학을 가서 직장에 입사하여 월급을 받고 성공 신화에 삶을 거는 젊은이들의 삶은 다른 것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 성공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열매를 얻는 물질을 쌓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어느 아파트를 살까? 어느 땅을 살까? 어떻게 해야 여러 해 동안 재물을 쌓아둘 수 있을까?’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쌓아두는 것이 노후 보장, 미래 보장, 행복 보장이라고 결정을 내린다. 

결국 한 부자처럼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 대신 물질을 신뢰하고 안전, 평안, 기쁨, 즐거움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교회, 신앙 따위는 물질을 신뢰하는 이에게 별 것이 아니다. 재테크를 위해서 이사를 가고 교회는 아무데나 다니는 척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말씀이 여기 있음에 우리가 어디로 가니이까? 말씀이 있기에 주를 떠나지 않고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이 적어진다.

‘교회 때문에 이사 가지 않는다. 교회 때문에 교회 곁으로 이사를 왔다.’ 등 이런 이야기가 들려와야 한다. 우리는 점점 한 부자처럼 물질에 붙들려 살아간다. 물질이 시키는대로 살아간다. 물질 쌓아두는 일만 잘 되면 하나님은 잠시 잊어도 된다. 하나님을 잠시 안 믿어도 된다고 하면서 산다. 정말 이런 삶이 잘 사는 것일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 한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지혜롭지 못한 삶, Foolish, 바보, 무지한 자, 생각이 없는 자라는 것이다. 왜 이러한 삶이 어리석은가? 비유 속에 그 답이 있다.

첫째, 오늘 밤이 끝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Tonight you die. 오늘 죽는다는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계획과 미래도 없다. 준비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쌓아둔 곡식과 물질, 곳간과 창고 부지 등 다 헛된 것이 되고 무용한 것이 된다.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죽는다는 것, 삶이란 한 번 죽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라. 오늘이라도 끝이 오면 물질을 쌓아둔 것이 나와 상관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라. 그래야 지혜로운 것이다.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지혜는 내 인생의 날이 끝이 옴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매일 신하를 곁에 세워두고 “폐하, 폐하의 죽음이 하루 앞당겨 졌습니다.”라고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죽음이 끝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죽는다는 것을 헤아리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둘째, 나 외에 이웃과 친지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한 부자는 오직 삶의 초점이 물질 쌓기에 있었다. 그래서 자기의 안전, 자기의 즐거움만 생각했다. 

눅12:17~19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성공한 이후 한 부자는 “내가, 내가, 내 곳간, 내 모든 곡식” 등 “내가”라고 외치는 나의 독백에 갇혀 있다. 내 것을 보호하고 내 것으로 행복해지려고 내 생각만 하고 있다. 삶이란 많은 사람과의 관계다. 나 이외에 너, 그들, 우리들, 이웃, 친지들 등 많은 사람들의 어울림 속에서 삶이 성숙되는 것이다. 나 혼자, 내 자아에 빠지는 삶은 미분화, 미개함이고 삶을 모르는 미성숙의 어리석음이다. 

삶은 이웃이 있어서 더 즐겁고 이웃이 함께 하므로 더 신나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감격이 오고 이웃을 섬김으로써 물질이 빛이 난다. 이웃과 친지와 교회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삶을 꿈꾸라. 부자가 되어 자기 세계에 갇혀 살기보다 빈자가 되어서라도 사람들 속으로 마음을 열어두는 삶을 살라. 과감하게 물질을 나누며 이웃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삶을 살라.

셋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어리석음이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부자의 어리석음은 어떤 사람과 비교될 수 있을까? 눅12:21은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사람이 곧 이 부자의 어리석은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부자가 어리석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하면 그도 어리석은 인생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물질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웃들에게 물질을 나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약자들에게 물질을 기부하라는 것이다. 교인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헌금하지 못하는 삶, 그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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