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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지 말아야 할 자리 (약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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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말아야 할 자리
야고보 4:11-12

‘(약 4:11)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비방하거나 서로를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심판하면,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약 4:12)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그리스도교 믿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상의 종류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돌이나  금속이나 목재로 만든 형상들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 그리고 산과 바다와 커다란 나무 같은 자연물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초대교회시대에는 이런 우상들 외에도 로마제국의 황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사람 곧 황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 결과 끝까지 황제숭배를 거절한 그리스도인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룹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을 로마제국은 무신론자로 몰아서 십자가형에 처하거나 콜로세움과 같은 검투사 경기장에서 사자와 같은 동물들의 밥이 되게 하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일제의 강팍한 식민지배를 받을 때에, 일본의 천왕을 신으로 섬기라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파들 가운데는 교단이 없어진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교단들이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 결과 조선 천주교회는 신사참배와 아울러 조상에 대한 제사를 허락하였고, 조선 장로교회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의결하였고, 감리교회는 교단 본부에서 신사참배를 하도록 명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 감옥에 갔고 그 일로 인하여 순교를 했고, 하던 사업이 파산을 합니다. 심지어는 신사참배하는 문제로 인하여 학교까지 문을 닫습니다. 한국교회가 비록 역사는 짧지만 우상숭배하는 문제로 인하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탐욕이 우상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우상이 있지만 ‘우상이 무엇인가?’라고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피조물을 창조주의 자리에 놓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계셔야만 할 자리에, 피조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고,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온 우주의 주인이 되는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높임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 창조주 하나니님의 자리에 다른 것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보았다고, 하나님 외에 그런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받으실 찬양을,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존재가 받는다면 그 존재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고,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에 때로는 돈이 여러분의 우상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가족과 자녀와 친구가 여러분의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우상 자체에 대하여, 무섭게 질투하고, 심판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야고보서 4:11-1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말씀하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비방하거나 서로를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심판하면,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 속에서 깨달아야만 할 것은 
첫째로 남을 비판하는 것은, 나를 우상의 자리에 놓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을 심판하는 자리에, 신의 자리에, 우상의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을 심판하는 자로,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하나님 대신에 다른 피조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본문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합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하기를,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고, 하나님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심판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이 선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앉아야 할 자리인, 재판자의 자리에 사람이 앉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비방하는 일은, 우상을 섬기는 일보다 더 무서운 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인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아서, 사람을 심판자로 만들고, 사람을 심판자의 자리에 앉게 하는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을 비판하거나 비방하는 자리에 앉지 않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비판은 마음의 병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Gibson 박사와 Fink박사는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합니다. 하루는 그 도시에서 잘 알려진 큰 사업가이고, 유명인사 한 사람이 병원을 찾아와서 핑크 박사를 만나 말하기를, ‘나는 아주 안절부절하고 긴장상태에 있습니다. 쉬면서 안정을 찾으려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습니다. 나의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그리고 나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전혀 꺼릴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편안히 쉴 수 있는지 도와주기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핑크 박사는 그에게 말하기를, ’근래에 그런 문제를 다룬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습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이미 한 두 권의 책을 보았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런 책들이 권하는 대로 일일이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사회에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핑크 박사님은 큰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면서, 뭐 좀, 스위치를 누르면, 마술사가 척 해내듯이 나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까?"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은 핑크 박사에게 큰 도전거리를 주었고, 또 자기들이 어떤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브손 박사와 함께 직원들을 불러서, 두시간의 회의 끝에, 결정을 하기를, 과거 2년 동안의 모든 기록을 조사해서, 그 사람처럼 긴장과 불안에 싸여,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적인 요소나 특징이 혹시 없는가? 찾아보기로 했다. 그 후에 오랜 작업 끝에 드디어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이 잘못된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내어, 책망하고 비판하려는 자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그 사실을 발견한 직원들은 병원에서 그 발견을 적용하여 즉시 시험에 들어가서, 불안과 초조, 긴장 등의 문제를 가진 환자들 100명을 선정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 연구의 결과를 말해주고 시정 방법을 제시해 주었더니, 환자들은 지시에 따라 행동합니다. 일정의 기간이 지난 후, 그 증상을 앓던 환자를 조사해 보니까 100명 가운데 70명의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고,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20명은 의사의 지시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남의 결점이나 잘못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하는 자세는 심리적인 불안, 고통과 심지어는 정신병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도 남에게 비판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나사렛 예수의 말씀은 학문적으로도 규명된 진리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을 비판하는 자리에 앉거나 서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성경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도 우상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여러분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기준으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분은 말씀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성경말씀을 자신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생각하지를 않고, 남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도구로만 삼습니다.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치는 죄를 지어놓고, 교회에서 징계를 내리면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용서 하지 않고, 징계를 하느냐?’라고 하면서 교회를 비방합니다. 여기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여러분을 변명하거나, 공격을 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한이자 거룩하신 뜻입니다. 성경말씀은 여러분이 지켜야 할 규범이지,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종종 자신의 경건생활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자신이 하늘의 거룩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거나 비방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전도하지 못하거나 않하는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판한다면, 그 사람도 역시 자신의 경건생활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삼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자신의 경건생활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삼은 어리석은 믿음자세입니다. 그런 경건생활은 본인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은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남을 비방하는 것도 사단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으면 네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먼저 피고인이 있습니다. 피고인을 재판하는데, 재판관, 검사, 변호사가 있습니다. 검사는 그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변호사는 그 사람이 죄가 없거나 혹은 죄가 작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재판관은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듣고, 누가 죄인인지 죄가 있으면 얼마나 큰 죄인지 구별을 해서 벌을 줍니다. 

이런 현상을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보면 이렇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이고 검사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아무리 작은 죄만 지어도 고소합니다. 변호사는 나사렛 사람 예수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모든 죄인의 죄를 변호하고, 죄를 지은 사람의 죄 값을 자신이 책임짐으로써, 죄를 해결합니다. 여러분인 피고인입니다. 죄인입니다. 자기가 죄인인데 다른 죄인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고, 율법으로 남을 심판하고, 비판하는 자리에 설 때가 많습니다. 고소하고 비판하는 일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신자들이 사단이 하는 일을, 자처해서 할 때가 많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욕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자신이 정의의 사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을 비방하고 있는 순간, 여러분은 마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찾아내서 고발하고, 고소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늘 법정에서 검사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을 변호합니다. 변호사는 할 수만 있으면, 피고인의 죄를 덮어주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벌을 작게 받게 하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다른 신을 섬기라고 강요하면, 강력하게 거절할 것입니다. 요즘도 각 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을 치우기 위해서, 기독교계에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유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이고, 하나님 앞에 큰 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우상을 섬기는 죄보다 더 큰 죄인, 남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너무나 쉽게 사람을 비판하고 비방을 합니다.

저도 가장 많이 짓는 죄가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죄입니다. 지금 여기서 저와 함께 모든 교인들이, 내가 우상을 섬기는 죄보다 더 무서운 죄인, 남을 비판하고, 판단한 죄를 지었다는 인정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스 프림이라는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천당에 갔습니다. 천당에서 받아주는 조건으로 절대로 비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천사장은 선언하기를, 단 한번만이라도 비판을 하면 천당에서 내쫓겠다고 합니다. 한스 프림은 그래서 무엇을 보든지 못 본척하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천사가 긴 재목(材木)을 가지고 복도를 가는데, 상대방 쪽에서도 똑같은 천사가 긴 재목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마주치자 서로 먼저 가겠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서로 양보 못하고, 어찌 저 모양일까 생각했으나, 약속인지라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다음날도 보니까 천사들이 우물가에 가서 물을 뜨는데, 떠서는 밑 빠진 독에 붓는 것입니다. 입술 끝까지 나오는 비판을 또 참습니다. 셋째 날은 말이 끄는 달구지에 짐을 잔뜩 싣고 가는데, 그 달구지가 수렁창에 빠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천사 하나는 이쪽에서 잡아당기고, 다른 천사는 저쪽에서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한스프림이 한 마디 하기를, ‘이 못난 천사들아, 서로가 잡아당기면 달구지가 빠지냐? 한쪽에서만 잡아 당겨야지.’라고 합니다. 그 순간 천사들이 오더니 ‘당신은 비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천당에서 나가야합니다.’라며, 천당 문 밖으로 내 쫓고는 한스 프림에게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천사는 둘이 아니라, 그 앞에 놓여있는 거울 때문에 둘로 보인 것뿐입니다. 유리컵에 물을 절반정도 담고, 꼿꼿한 젓가락을 꽂으면 꼿꼿한 젓가락이 꺾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굴절'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깨끗이 비어있지 않고, 어떤 목적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세상만사가 똑바로 보이지 않고, 굴절되어 보이게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비판을 하거나 비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깨끗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보고 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비판 대신에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삼기 바랍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나는 너보다 선하다는 교만한 마음이 남을 비판하게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정확히 알게 되면 남을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이 죄인인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옷에 오물이 묻어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 그 옷을 입고 창피해서 다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비판할 일이 보이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유심히 살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가운데 남을 비판할 만큼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고, 빼라고 한다.’라고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죄 덩어리입니다. 남의 허물이 자꾸 보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것은, 아직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은 사람은 남을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라면, 남을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가까이 간 사람은 자신의 추한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남의 죄에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자신의 바지가 찢어졌는데 다른 사람 옷에 단추 하나 떨어진 것이 보이겠습니까? 자신의 찢어진 바지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사람은 다른 이의 옷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추 떨어진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남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성령의 밝은 빛으로, 위를 비춰보면, 성경말씀을 따라 자신을 살펴보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돌아보아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더럽고 추한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남을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안목이 열려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볼 때마다, 자신의 허물과 죄를 살펴서 회개하는 기회로 삼을 줄을 압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영적 무지엣거 벗어나 성령의 빛으로 자기의 삶을 비추어보고 자기 허물을 깨닫고, 남의 허물이 보일 때마다 삼가 자기를 살피는 신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죄를 짓는 형제자매를 어떻게 대해야합니까?
1) 눈물로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이 보일 때마다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꾸만 남의 허물이 크게 보이는 것은, 자신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꾸 남의 허물만 보이고, 남이 하는 일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허물이 보이는 생각은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온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은 인간적인 본성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사단의 속삭임입니다. 그러니 먼저 내 죄를 충분히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나서, 생각을 해보기 바랍니다. 정말 그 형제나 자매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큼, 큰 죄나 잘못을 저질렀는가? 하고.. 대부분은 내 생각 속에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본인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서도 도저히 그 형제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서면, 그 때에는 눈물로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형제나 자매를 위하여, 한 번도 눈물로 기도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를 위하여 한 번도 눈물로 기도한 적이 없으면, 그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2) 비판 대신 권면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주변에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라는 것인가? 아닙니다. 비판하지 말라고 했지, 그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형제들의 죄와 실수에 대해서 눈감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권면해야 합니다. 비방은 본인이 없는데서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것입니다. 권면은 본인을 대면하고, 자신이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미움과 분노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권면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당사자가 없을 때에 분노해서 하는 말은, 비방이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인을 직접 만나서 문제를 의논하는 것은 충고이고, 권면입니다.

충고하고 권면 하는 일은 때로는 욕을 먹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권면하기 전에 ‘나에게 권면 할 자격이 있는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짓이 눈에 거슬려서, 나를 화나게 만들어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말하는 것은 권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판이자 비방입니다. 정말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불쌍하고, 그 사람이 그렇게 살다가 망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찾아가서 말하는 것이 권면입니다. 서로 비방하고 비판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늘 비방하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도 늘 비판을 받게 됩니다. 비판하다 보면 어느새 비판하고, 비방하는 그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남을 비방하는 죄는 우상을 섬기는 죄보다 더 무서운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죄는 짓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면서, 남을 비방하는 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을 심판자의 자리에, 창조주의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내가 지켜야 할 말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않됩니다. 잘잘못을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고소하고 비방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인데, 여러분이 공연히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사단의 일을 해서는 않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남을 비판했던 허물과 죄를 지금 여기서 회개하세요. 혹시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보이면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다음에 그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세요.
그리고 뒤에서 비방하지 말고 찾아가서 권면하세요. 여러분이 그럴 때에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고, 생명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께서 영광을 받읏ㄹ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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