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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난 당할 때 (욥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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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당할 때 (욥 23:10)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인 한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마침 큰 짐승을 만나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중에 아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까스로 짐승을 제압하고 나서 아들을 찾으니 아들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온 산을 뒤지다 보니 한 동굴 속에 아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아들을 잃어 버린 이 아버지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에게 차마 외아들의 죽음을 알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보 이번 사냥에는 아주 특별한 짐승의 고기를 얻어서 왔습니다. 이 고기를 요리하려면 당신이 동네에 다니면서 한 번도 고난이나 슬픔을 당해보지 않은 집의 그릇을 빌려 와야지 이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동네에 다니면서 “이 집에 고난이 없었습니까? 이 집에 슬픔이 없었습니까?” 물어봤지만 한 집도 고난이나 슬픔이 없는 집은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서야 남편은 아내에게 외아들의 죽음을 알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고통이나 슬픔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이 무겁게 느껴지고 또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집만 문제야!!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있어!! 이런 생각을 갖기 때문에 그 고통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가령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아!! 라고 생각할 수만 있어도 내 고통의 무게는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어찌 성경에 나오는 욥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욥처럼 억울하고 욥처럼 무겁고 욥처럼 괴로운 고통을 당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욥은 모든 고난의 대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지요. 먼저 욥은 의인의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같이 죄 많은 사람이 고난을 당한다면 할 말이 없지요. 아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절반은 아마 우리의 죄 때문에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왜요? 고난의 절반은 바로 내 책임에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욥이 당하는 고난은 차원이 다릅니다. 욥은 고난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보니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처럼 온전하고 욥처럼 정직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욥도 고난을 당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욥의 자녀들이 모두 7남 3녀로 10남매입니다. 이 욥의 자녀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입니다. 그러면 욥은 그 다음 날 혹 자녀들이 부지불식간에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을까봐! 말이라도 실수했을까봐! 하나님 앞에 그 열 자녀수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욥은 그토록 정결하고 욥은 그토록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욥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고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욥의 고난의 특징은 욥은 고난 속에서 한 번도 불평하거나 원망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이 고난 가운데서도 “주신 분도 여호와시오, 가져간 분도 여호와시니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왔사오니 이 모든 것에서부터 벌거벗고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고 찬양하며 노래했지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냐고” 한 번도 불평이나 원망 해본 적이 없어요. 

여러분 욥이 당하는 고난의 형태를 보면 그는 많은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욥은 재산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욥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양이 7천 마리, 약대가 3천 마리, 소가 5백 겨리, 암나귀가 5백 겨리, 종들이 무수히 많았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이 양한 마리가 굉장히 값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약대 한 마리는 요즘에 자동차 한 대 값 정도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평생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렸어요. 강탈 당해 버렸어요. 이 욥의 심정이 어떠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산은 문제가 안돼요. 욥의 열 자녀가 하루아침에 다 생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재물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자식의 생명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욥의 자녀들은요 모이면 그렇게 의가 좋았습니다. 보통 자녀들은 모이면 싸우고 다투는 자녀들도 있는데 욥의 자녀들은 그렇게 화목하고 의가 좋았는데 그 열 자녀가 잔치를 벌이다가 하루에 집이 무너져서 그만 다 생명을 잃고 말았어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상상이 되죠. 

여러분 자식의 죽음과 또 비교 될 수 없는 게 아내의 상실입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아내가 집을 떠나버렸어요. 욥을 저주하면서 ‘너에게 복 대신 화를 주는 여호와를 저주하고 죽으라!’ 고 욥을 저주하면서 아내가 떠나버렸어요. 욥은 가정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가족의 상실보다 더 큰 상실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의 상실입니다. 욥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아주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기왓장으로 자기 몸을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솔직히 말해서 다 필요 없지요.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천하를 다 잃어버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의 친구들이 와서 욥을 위로하지만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친구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 말하는데 오히려 자기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 위로한답시고 말을 실수할 때가 많이 있지요. 어떤 분은 장례 당한 분에게 가서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 “안녕하십니까?”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안녕하지 못하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아니요?!” 하고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고난당하는 분들 앞에 가서 할 말이 없어요. “제가 참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이 위로가 되고 정직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참혹한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오늘 욥은 이렇게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23장 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예전 성경에는 그가 오직 아시나니 그랬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온다고 예전 성경에는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어떻게 반응하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앞에서 그냥 허물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제 끝났다고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욥은 한 가지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왔는지 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시나니,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의 고통의 원인과 내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인생의 목적지를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내 인생을 향한 분명한 뜻과 목적 섭리를 가지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늘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해요. 내게 고난이 있든 질병이 오든 아픔이 있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를 파괴하고 파멸로 몰아가고 멸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내게 어떤 고난이 올지라도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시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오직 한 가지이다. 나로 하여금 순금인생을 만들고자 함이다.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정금 같은 인생으로 순금 같은 정결함으로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내게 이런 고난과 연단을 주신다고 오늘 욥은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포항 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를 안내하는데 큰 용광로가 있습니다. 거기에 뜨거운 불을 가하기 때문에 쇳덩이가 거기에 들어가면 다 물이 됩니다.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지요. 

여러분 그 강한 쇠도 그 용광로 속에서 쇳물이 되어 흘러나옵니다. 그러면서 거기 불순물들이 자연스럽게 제거가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온 쇠는 순도가 높은 강한 쇠로서 좋은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는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잠언 7장 3절에 보니까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느니라.”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연단시키셔서 성숙한 사람으로 순결한 사람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예전에 시골에 동네에 보면 대장장이가 있지요. 거기에 가보면 거기에도 그렇습니다. 쇠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지 않습니까? 쇠를 불 속에 넣었다가 그것을 또 꺼내서 차가운 물속에 집어 넣으면 연기가 납니다. 그것을 또 망치로 때립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강도 높은 쇠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불 속에 넣었다가 찬 물에 넣었다가 또는 망치로 두들기기도 하시고 그러면서 좋은 농기구가 만들어 지는 거예요. 거기서 바로 낫이 만들어지고 도끼가 만들어 지고 소가 매는 그런 도구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쓰시는데도 그냥 쓰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를 고난의 풀무 속에 연단시킨 후에 그들을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처럼 고난을 많이 받은 민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성경에도 보면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뿐만 아니라 이어져요. 그것만입니까? 그들은 2천년 동안 그들은 각지에 흩어져서 나라 없는 설움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했으니까 깔보지 못한답니다. 그러나 과거에 당나라, 청나라 때에는 우리가 날마다 가서 조공 바치지 않았습니까? 또 그것을 안 하면 군사를 이끌고 내려와서 우리를 징계하지 않았습니까? 

자 지금 보면 뒤바뀐 것이지요. 우리 민족도 누구보다도 고난을 많이 받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니까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속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의 풀무를 선물하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는 고난 가운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내게 환난이 닥쳐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까요? 히스기야는 이사야 35장에 보니까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늘은 바로 환난과 능욕과 책벌의 날이라.” 

앗수르의 산헤립이 공격해 왔는데 그들을 감당할 힘이 없어요.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해산할 힘이 없는 것처럼 오늘은 내게 환난과 능욕과 책벌의 날이라고 그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난이 몰려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인내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고난이 오면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쓰러져 가고 마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1절에 말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들을 우리가 복되다고 말하노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인내하는 욥이 어떤 결말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나중에 욥에게 모든 것을 갑절로 갚아 주시지 않습니까? 그 결말을 보았다. 이것은 욥이 인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석탄과 다이아몬드를 비교해보면 석탄이 값이 싸지 않습니까? 다이아몬드는 아주 값이 비쌉니다. 그런데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원래 출발이 같습니다. 더 오랫동안 더 강한 열로 연단을 받으면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다이아몬드는 그 강한 열을 오랫동안 잘 인내하며 이겨냈기 때문에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그러나 석탄은 그처럼 오랫동안 연단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석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석탄 인생이 되겠습니까? 다이아몬드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한 번 옆에 분에게 여쭤보세요. “석탄이십니까? 다이아몬드이십니까?” 

여러분들이 다이아몬드 인생이 되려면 이것을 인내하고 견뎌내야 해요. 그냥 쓰러져 버리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좀 어려운 일도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이 내 기도 들어 주지도 않는 것 같다고 삐쳐가지고 눌러 앉으면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그 뜨거운 열과 무거운 압력을 잘 받아서 인내했기 때문에 빛나는 그런 물품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욥은 석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욥의 인생은 다이아몬드의 인생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은 빛나는 거예요. 욥과 같은 사람, 욥과 같은 고난, 그는 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고난의 대표자가 되잖아요. 그 고난을 승리하는 사람이 바로 욥이예요. 요셉도 감옥에 갔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갖가지의 고난과 수난을 당했지만 요셉은 인내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썩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단련이 되어서 순금의 인생이 되고 다이아몬드의 인생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갈 때는 석탄과 같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감옥에서 인내하고 승리하고 나오니까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 되었어요. 애굽의 바로가 요셉에게 와서 절을 하면서 그를 찬양하기까지 했어요. 여러분의 인생도 똑같아요. 여러분의 아이큐, 지능 거기서 거기입니다. 누가 고난 속에서 인내할 수 있느냐?!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흑백간의 인종 차별이 가장 심한 곳이 남아공, 남아프리카 공화국입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많이 차별했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 그는 그냥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소몰이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2년도 아니구요. 27년!!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난 가운데 승리하고 인내했기 때문에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노벨 평화상도 받았지요. 지금 나이가 아마 90이 훨씬 넘어서 노쇠해서 병들어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남아공 사람들이 날마다 와서 염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만델라 빨리 병을 낫게 해주세요.’ 그토록 그는 존경을 받는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시고 인내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하시지요. ‘환난 당할 때 감사하자.’ 왜 감사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순금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서 성숙한 인격을 갖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환난과 고통을 주시거든요. 

시편 119편에 보니까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게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 

로마서 5장 3, 4절을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아멘! 

환난은 우리에게 인내를 줍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래서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는 거예요. 환난이 온다 해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 함께 읽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흠 없는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과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올 때 감사해야 해요. 질병이 찾아와도 여러분 감사하면 질병이 떠나갈 줄 믿습니다. 사업이 힘들어도 감사하면 사업의 회복이 빨리 될 줄로 믿습니다. 

자녀가 속을 썩여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족하면 부족할 때 오히려 감사하면 하나님이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궁핍이라는 것, 부족한 것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더욱 더 겸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미국의 한 부부가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데 차에 기름이 막 간들간들해요. 그것을 보고 아내가 불평을 해요. “아 여보!! 차에 기름 좀 가득 넣어 놓지 이게 뭐예요. 아슬아슬하게” 그랬더니 남편이 대답을 합니다. “여보 당신 알다시피 우리 요즘 벌이가 없잖아. 그래서 기름도 조금씩 밖에 못 넣어요. 미안해.” 그래서 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잤는데 새벽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당신 혹시 차를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아니 무슨 소리냐고” 밖에 나갔더니 차가 없어요. 경찰서에서 그래요. “당신 차가 어디 고속도로에 있습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발견해서 전화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것이냐고 했더니 도둑놈이 밤에 차를 훔쳤는데 가다 보니까 기름이 없어서 그냥 서버렸습니다. 그래서 놓고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익도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 기름을 가득 넣었으면 차를 잃어 버렸죠. 번호판 바꾸고 그러면 못 찾죠. 그런데 마침 기름이 없기 때문에 도망 가다가 차가 서서 그냥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족해도 또 환난이 와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책임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우리 안수집사님 한분에게 야구공을 하나 가져다달라고 했는데 이 야구공을 보면 매끄럽지 않습니다. 야구공을 보면 실밥이 있어요. 실밥이 108개입니다. 실밥이 필요해요. 실밥이 있어야지 더 속도를 내고 변화구를 던질 수 있어요. 투수가 이것을 잘 던지면 떨어지기도 하고 휘기도 하고 그 변화구가 실밥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실밥이 없으면 야구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도 실밥과 같은 흠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우리 인생이 더 빛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또 골프공을 가만히 보면 홈이 있습니다. 그냥 매끈하고 동그랗게 만들면 되지 왜 홈이 있느냐? 홈이 있어야 공이 더 멀리 가고 공이 치는 그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딤플이라고 해요. 이 움푹 파인 홈 때문에 골프가 더 매력 있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이런 홈, 상처, 흠 때문에 우리 인생은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고난 환란 결코 여러분을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기쁨으로 맞이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면 여러분의 인생에 유익이 될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환란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냐? 기도해야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시편 50편을 보니까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요즘 청소년들의 문제가 자살 아닙니까?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고 아이들이 몰매를 맞고 돈을 뺏기고 이러니까 너무 괴로워서 혼자 끙끙 앓고 그러다가 결국은 어떻게 합니까? 유서 써놓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던가 아니면 목매달아 죽던가 이거 너무 비참해요. 부모들은 정말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아요. 야! 이놈아 아빠, 엄마한테 한마디만 했어도 너를 가만히 두었겠니. 부모에게 한 마디만 했다면 이거 정말 안타까워요. 

여러분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날 엄청난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한마디도 아뢰지 않아요. 낙심해버리고 절망해 버려요. 쓰러져 버려요. 우리 부모 되신 여호와께 여러분의 고민과 아픔을 아뢰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그고 비밀한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 고시에 합격한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 53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정선열이라는 자매의 간증이 실려 있는데 아주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자매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가정의 어려움이 생겼어요. 아버지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가지고 의식 불명이 됐어요.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있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에요. 가난이 찾아오고 돈 한푼이 아쉽게 됐어요. 

그러나 그녀를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1차 사법고시에 합격을 합니다. 그러나 2차 사법고시에는 찬 안타깝게도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병으로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수술이 끝나니까 아버지가 또 너무 병이 커져서 세상을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정선열에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나의 때를 기다리고 열심히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라. 이런 음성을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들려주셨어요. 

사실 그녀는 지금까지 사법고시 본다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어요. 그러나 이제 그는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바로 잡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결국 그 다음 사법고시 2차 시험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당당하게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시험당일 평소 때와는 달리 문제를 시간가운데 다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주님이 나를 도우셨구나. 하는 확신이 제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인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교만한 저를 회개 시키셨고 이기적인 재물의 욕심도 버리게 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저를 겸손한 판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를 성숙시켜 주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 어머니가 대수술을 받는 아픔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게서 그 모든 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게 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 91장에 보면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그런 찬양이 있죠. 2절에 보니까 거룩하신 주의 이름 너의 방패 삼으라. 환란 시험 당할 때에 주께 기도드려라.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의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환란 시험 당할 때에 주께 기도드려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연단의 과정 없이 성공한 사람 없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이 솔로몬은 고난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는 다윗의 아들로 왕궁에서 태어났죠? 아버지가 훌륭하니까 그 배경으로 고난 없이 성장했어요. 고난 없이 성장한 솔로몬의 마지막 종말을 아시죠? 가장 비참한 왕이 되어 버렸어요. 그의 사후에 나라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는 고난을 겪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 반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바울 다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두 개의 학교를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고난의 학교, 두 번째는 순종의 학교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환란이 있습니다. 환란이 찾아올 때 고난이 찾아올 때 인내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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