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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멸시를 받으신 예수님 (막 15: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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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를 받으신 예수님 (막 15:29-32)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이외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29절에는 지나가는 자들이 나옵니다. 31절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2절 끝부분에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 모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29절 말씀처럼,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또한 31절 말씀처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아울러 32절 말씀처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조차도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이미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보다 칠백 년 앞선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받으실 멸시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말씀했습니다. 

사53:3 말씀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시고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하여, 예수님에게서 그들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육체적인 고통만 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정신적인 고통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가리켜,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때의 간고는 정신적인 고통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질고는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정신적으로 또한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통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사53:4 전반부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통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전부 다 합친 것만큼이나 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심적인 간고와 육적인 질고를 많이 겪으셔야 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사53:5 전반부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한꺼번에 몽땅 다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정신적 간고와 신체적 질고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간고와 질고를 많이 겪으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53:5 하반부 말씀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의 간고는 평화가, 우리의 질고는 나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이며,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단단히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십자가 위에서 멸시를 받으신 예수님을 보다 깊이 묵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때는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들었습니다. 밤이면 인근에 있는 마을에 가서 자더라도, 낮이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유월절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내에서만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19:20 말씀과 같이, 골고다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성에서 가까웠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죄수들의 십자가를 길 가까이 세웠습니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예수님의 이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면서 열렬하게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주간 예수님은 로마의 군인들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자, 그들은 예수님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공회 의원들의 사주를 받아,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족하게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을 지나가면서, 자기들의 몸짓으로 또한 모욕하는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원대로 행하지 아니하셨다는 이유였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이는 깊은 실망과 심한 경멸을 뜻하는 몸짓으로,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는 아니야.”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면서도, 마치 그리스도인 것처럼 자기들을 속였다고 여겼습니다.   

시22:7 말씀입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행2:29∼30 말씀처럼, 다윗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멸시할 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곧이어 그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몸짓으로 예수님을 멸시하더니, 이제는 입을 열어 보다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그들이 예수님을 모욕한 말은 “아하”라는 감탄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향하여 “흥” 하면서 비아냥거린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며 업신여기는 투로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비꼬는 말이었습니다. 막14:58 말씀과 같이, 이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뇌물을 받은 거짓 증인들이 예수님을 쳐서 거짓 증언을 한 말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단지 요2:19 말씀을 보면, 삼년 전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신 적은 있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21∼22 말씀처럼, 이 때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자들은 거짓 증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막15: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며 허풍을 쳤다고 빈정댄 것입니다.  

마26:53 말씀처럼, 예수님은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잡히지 않을 수도 있으셨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잡히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으셨지만,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십여 일이 지났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사도들은 모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분명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을 지나가면서 예수님을 모욕한 자들도 상당수 섞여있었을 것입니다. 

행2:23∼24에서 베드로는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러자 행2:37 말씀과 같이, 그들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행2:38에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 결과가 행2:41 말씀에 나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 날 삼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행2:47 말씀과 같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소리 질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는 말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 우리 주변에도 지나가는 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교회를 등지고 예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압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에게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막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마27:41 말씀을 보면, 여기에 장로들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눅23:35 말씀은 이들을 가리켜 관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산헤드린, 곧 예루살렘 공회의 의원들이었습니다. 

본문은 “그와 같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또한 모욕하는 말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와 같이” 백성의 지도자들인 공회 의원들도 역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멸시하며 희롱했습니다.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지나가는 자들은 직접 예수님에게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역겹다는 듯이, 서로 자기들끼리 예수님을 희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은 자들도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요11:47 말씀과 같이, 그들은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막3:22 말씀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능력을 행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편이며, 예수님은 사탄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예수님이 남을 구원하신 것을 사탄의 능력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그 증거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희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연이어서 서로 간에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막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칭했습니다. 막15:2 말씀처럼,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자신이 유대인의 왕 곧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막14:61∼62 말씀처럼,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회 의원들이 실제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또한 그리스도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려고, 그와 같이 불렀을 뿐입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렸습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하라.” 만일 예수님이 자기가 말한 대로 이스라엘 왕이며 그리스도라면, 바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리스도임을 믿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던들,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수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때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마28:12∼13 말씀처럼, 그들은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뇌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군인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리게 했습니다. 

공회 의원들이 생각한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그 후 행6:7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분명 그들 가운데는 공회 의원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희롱하던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공회 의원들로부터 계속해서 심한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으며,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희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거짓으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소리 지르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멸시를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그들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모든 멸시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막15:32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두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의 우편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좌편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처음에는 그들 두 강도가 똑같이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공회 의원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며 서로 말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도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덩달아서 욕했습니다. 

눅23:39 말씀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처음에는 두 행악자, 곧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 모두 그와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며 욕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심한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나가는 자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회 의원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로부터 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이 심한 멸시를 받으셨지만, 맞대어 대응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멸시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때 한 강도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이 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계속하여 욕하는 다른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이와 같이 은혜를 구했습니다. 눅23:42 말씀입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이어서 눅23:43 말씀을 읽어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 강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 강도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이며,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첫째로,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둘째로,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셋째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벧전2:23∼24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심한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심한 멸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승리하시고,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멸시를 받는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맞대어 욕하지 맙시다. 예수님도 심한 멸시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맡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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