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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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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1-28)


양주지방에 전해지는 ‘독장수의 구구’라는 설화입니다. 어느 독장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간장, 된장, 술을 빚을 때 큰 독이 반드시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독이 워낙 크고 무거워서 많이 지고 다니지 못하여 큰 독 세 개를 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종일 돌아다녀도 독은 팔리지 않고 어깨만 빠질 것처럼 아팠습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고갯길을 힘겹게 조심조심 올라가느라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고개에 다다른 독장수는 나무 그늘 밑에 지게를 내려놓고 지겟작대기로 받쳐놓았습니다. 

몸이 홀가분하여진 독장수는 지게 옆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야, 시원하다. 가만있어봐라. 저 독들을 팔아서 빚을 갚는 데 쓰고, 나머지 독들을 팔면 다른 독 두 개를 살 수 있겠지? 그 독을 팔면 다시 독 네 개를 살 수 있고, 넷을 팔면...가만있자, 이 이는 사. 이 사 팔..그래 여덟 개를 팔면,,,” 독장수는 신이 나서 머릿속으로 계속 셈을 하였습니다. 

“야, 며칠 안 가서 독이 백 개가 넘겠는 걸. 그럼 독을 판 돈으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사고 웃마을 삼돌이 각시 삼순이보다 더 이뿐 각시도 얻고, 그럼 ‘이리 오너라’ 하면 쫓아올 하인도 있어야겠지. 나도 하인을 두는 거야.” 독장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팔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팔로 지겟작대기를 밀어버리고 말았는데... 와장창하고 독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독장수는 깨어진 독 조각들을 얼른 주워들었지만 이미 독은 독장수의 꿈과 함께 산산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쓸데없이 미리 셈을 하거나 궁리하는 부질없는 소원을 ‘독장수의 구구’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예수를 찾아 온 여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내용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져 귀신들렸던 딸이 정상으로 돌아 왔으나 그 과정은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대하는 예수의 태도가 평소의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을 향한 냉담한 반응이나 경멸하는 듯한 눈빛, 인격적인 모욕이나 도저히 견디기 힘든 언어의 폭력까지도 잘 견디어내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소원대로 되리라’ 보다 선행되고 있는 바로 ‘네 믿음이 크다’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소원보다 믿음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가진 마음과 반대로 대하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정 속에 담겨진 강한 긍정의 믿음입니다. 겉으로는 그녀를 부정하시고 무시하십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 속에 담겨진 강한 긍정을 읽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이 끝까지 예수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또한 나를 향하여 들려오는 소리들은 얼마나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말들입니까?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런 일들이 생겨나더라도, 자기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말들이 들려오더라도,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아니오’ 속에 멋진 ‘예’ 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겉으로는 나의 생각, 나의 길, 나의 계획을 막으시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 더 좋고 멋진 길을 열어 놓으심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향하여 비로소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렇다면 예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더 확신해야

미국의 크리스챤들은 편지 마무리에 ‘On the Victory Side’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승리 편에 서 있다’라는 뜻인데 이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었습니다. 영국에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카톨릭 교도와 개신교도간에 내전이 벌어졌을 때 크롬웰은 개신교 장군이었습니다. 전쟁이 맹렬해서 크롬웰의 군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크롬웰은 문서나 개인 편지에 언제나 ‘On the Victory Side General Cromwell’이라고 썼습니다. 

‘나는 항상 승리 편에 서 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승리 편에 서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문서를 읽은 참모들은 그가 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확신이 점차 부대에 퍼지기 시작해 전부대원들이 ‘우리는 승리 편에 있다. 우리는 승리한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나아가는 크롬웰의 군대는 기어코 승리하여 영국을 개신교국가로 세우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확신에 거하며 승리만을 생각하고 말한 놀라운 결과이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여기의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의심하고 믿지 않았지만 가나안 여인은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메시야임을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유대인의 불신앙과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넉넉하다는 여인의 믿음은 예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신의 믿음입니다.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위력이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질병을 고칩니다. 삶의 질을 바꾸어 줍니다. 믿음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은 불신의 시대에 우리가 큰 믿음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인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가 보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하는 확고한 믿음의 확신을 통하여 소원대로 이루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더 간구해야

2010년 3월 호주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미숙아가 엄마 품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케이트 오그(Kate Ogg) 산모가 생후 27주만에 쌍둥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딸 에이미는 비교적 건강했으나 아들 제이미는 1킬로의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호흡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숨이 멎고 말았습니다. 의료진은 제이미를 살리려고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20분이 지나도록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담당의사는 아기가 사망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한 번만 안아보겠다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의사가 마지못해 허락하자 엄마는 축 늘어진 아기를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볼을 쓰다듬으면서 마지막으로 아기의 입을 열어 젖을 물렸습니다. 그리곤 기도했습니다. 아기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소원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젖을 물린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아기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면서 떠졌습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움직였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의사를 불렀습니다. 달려온 의사가 아기의 생존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후 아기는 건강을 회복해서 다른 또래의 아기들처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어미의 간절함이 죽은 아기를 살린 것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인은 간절함에 불타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간구하는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갈급함과 간구가 있는 곳에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긴박한 문제를 가지고 간구할 때 즉시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계속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구한 것을 얻을 수 있고, 찾는 것을 찾을 수 있고,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심의 간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실 만큼의 간절함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더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갈급함으로 간구하는 믿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만 바라고 소원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소원대로 이루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더 낮아져야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자기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부자가 그의 명성을 듣고 가르침을 얻고자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부자의 집은 으리으리했습니다. 정원은 온갖 화초로 가득했고, 집안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집을 자랑하느라 디오게네스에게는 단 1분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별안간 디오게네스가 그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습니다. 얼떨떨해 있는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집은 너무 아름다워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래침을 뱉을 만한 곳이 없더군요. 당신의 집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교만으로 가득 찬 당신의 얼굴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여자가 이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넉넉하다는 여인의 믿음은 끝까지 낮아지는 겸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예수의 모른 척에도 여인은 계속 엎드려 말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이는 최고의 겸손이며 최고의 경배입니다. 자신을 개같이 여기는 여인의 모습을 저자는 겸손의 극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제게는 너무 큽니다’라고 언제나 고백해야 합니다. 그 겸손이 예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 겸손이 예수의 긍휼을 발동시켰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겸손으로 나아가는 믿음을 가짐으로 소원대로 이루시기 바랍니다. 

테너 임응균(任雄均) 교수의 간증이 ‘우리는 행복한 예수쟁이들’ 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연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이태리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도 길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의 시간 강사로 10년을 하면서 고통 중에 기다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 10년의 세월 뒤에 한국예술 종합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임교수는 지난 10년의 기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을 연단하시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인내하며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구하여도 즉시 응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더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더 겸손하게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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