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 142:1-7)

첨부 1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 142:1-7) 

(1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절)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절)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절)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더운 여름을 보내고 결실의 계절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건축 중인 비전센터 관계로 김규식 선교사와 자주 연락을 취했는데, 금년 여름은 적도 부근의 그 땅보다 한반도가 훨씬 더 더웠습니다. 그 더운 여름도 한풀 꺾이고 높은 가을 하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란 찬송은 조셉 스크라이븐(J. Scriven)이 지었는데, 결혼 전날 약혼녀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캐나다로 떠나 10년 후 또 약혼하지만, 그 약혼녀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옛 친구들은 그를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제게 좋은 친구가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입니다. 

스크라이븐이 만난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여러분이 만나길 원하시는 주님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시편 창(窓)으로 바라본 ‘다윗’이란 주제로 다윗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는데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시편 142편은 1,4,7절이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놓고 중요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다윗이 지금 굴속에서 소리 내어 탄식을 하는데(1절), 

그것은 지금 자신 곁에 사람이 없음에 대한 탄식입니다(4절). 과연 그 곁에 사람이 없었을까요? 둘째, 그런 그가 ‘의인들’(7절)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이 ‘의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셋째, 기도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그는 육체가 아닌 영혼을 캄캄함에서 이끌어 내달라고 호소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질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는 지금 자신 곁에 사람이 없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시 142:4).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그때 굴속에 있는 다윗 곁에는 분명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삼상 24:3). 그런데 그는 왜 아무도 없다고 탄식하고 있을까요? 그가 간절히 찾고 있는 사람은 분명 ‘의인들’(7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 여기 의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의인’으로 지칭되는 노아(창 6:9), 욥(욥 1:1), 사가랴 부부(눅 1:6),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경건하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의인’이라는 호칭을 야고보는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그러니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 즉 기도의 동역자를 성경은 ‘의인’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기도의 동역자가 없었기에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며, 기도의 동지들을 찾았고, 그 의인들이 자신을 둘러싸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휴대폰 안에 저장된 수많은 친구들이 진정 나의 친구일까요? ‘의인들’, 즉 기도친구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그래서 억지로라도 ‘세겹줄’을 묶어 공포하고, 한주간만이라도 ‘서로’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로 묶은 것입니다.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란 다윗의 영적 열망이 오늘 우리의 열망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소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 캄캄한 굴속에서 육체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영혼을 이끌어 내달라고 기도할까요? 

7절의 ‘의인들’(개역개정 성경)이란 단어가 원어에서는 단수입니다(짜디크). 이전 개역한글 성경까지도 ‘단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도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입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면 ‘기도 동역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의인’, 즉 단수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다윗이 그 캄캄한 굴속에서 기다리는 한 사람, ‘의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 142편과 짝을 이루는 다윗의 시가 시편 22편입니다. 다윗이 기도를 이어갑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시 22:7).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시 22:16).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 22:18).

여러분, 다윗의 이 경험을 십자가 위에서 똑같이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의인’이신 그분이 다윗을 두르고 있습니다. 다윗의 경험이 그분의 경험, 그분의 경험이 다윗의 경험입니다. 다윗의 일차적 소원은 주님이 자신을 도와주시고, 주님과 합일(合一)되는 영적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다윗을 ‘캄캄한 굴속’에 던지신 분, 계속해서 그 감옥과 같은 굴속에 머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끝없는 시련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밀어 넣으시고, 또 밀어 넣으시는 바로 그분을 다윗은 찾고 있습니다. 자신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분이 자신을 에워싸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굴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당신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우리가 염두에 두는 행복과 고통보다 더 중요한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시며, 거룩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함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고통이란 도구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다윗은 그 하나님이 자신을 에워싸 주시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아이 출산 후 3일 째 되던 날 쓰러진 아내를 10여 년간 병수발해온 김병년 목사, 그가 어느 날 밤 분노에 가득 차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나도 네 뒷바라지하기 힘들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고 친 것들을 뒷바라지 하시느라 주무시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다. 내 아내는 아픈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고통 중에서도 그는 아내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뒷바라지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기에 다시 세 가지 질문으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여러분 곁에는 친구들이 아니라, 의인들이 계십니까? 이 의인들이 있기를, 또 이 의인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 곁에 진정한 의인이 계십니까? 진정한 의인을 찾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 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시기에 찾고 있습니까? 문제를 안고서도 그분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의인이 나를 감싸고, 두르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은혜가 있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