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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원하는 심령으로 (시 5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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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는 심령으로 (시 51:10-15)


오마이 뉴스의 대표기자 오연호의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서 잘못한 것들만 취재하여 책을 4권이나 썼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좀 더 알아야 하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연호는 미국 현지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닫습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였는데 미국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한 결과가 바로 그 책입니다. 오작가는 결론적으로 미국은 발런티어(volunteer)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발런티어’는 자원봉사자를 의미합니다. 미국인이라면 일주일에 몇 시간, 한 달의 며칠은 자원 봉사를 해야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안 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게시판이 있고 거기다 자원지망을 기록합니다. 어디 가서, 언제, 봉사할 수 있다고 자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원봉사를 위해 며칠씩 훈련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 중 몇 시간, 며칠 동안은 자원봉사를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 년에 4천만명이 자원봉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 성적이 없으면 대학에 못 갑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하여도 봉사하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축복을 영어로 Bless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축복은 'blood(피)' 라는 단어의 동사형 bleed(피를 흘리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축복은 희생 알 줄 아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됨과 능력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영혼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 자원하여 섬김과 희생이 있는 교회가 바로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참회시입니다. 다윗이 왕궁에서 산책하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발견합니다. 그녀와 동침합니다. 죄를 감추려고 충신 우리아 장군을 전쟁에서 죽게 만듭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아내로 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의 양심이 살아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숨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러한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자원하는 심령을 구하였다는 점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여기의‘자원하는’의 히브리 원어는 ‘니디브(bydIn)’로서‘기꺼이 하는, 자발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억지로가 아니라 우러러 나오는 마음이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무엇 행하기를 원하였습니까? 

첫째로 회개하게 하소서

멕시코 지역에 ‘아나브랩스(Anableps)’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물고기는 눈이 네 개입니다. 두 개는 물속에 있어 적의 공격을 감시하고, 두 개는 물 밖에 있어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물 밖에 있는 눈은 눈물샘이 없어 오랜 시간 물 밖에 있으면 눈이 건조해져서 볼 수 없습니다. 눈에 습기가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물고기는 규칙적으로 물속에 잠겨서 눈을 적셔줍니다. 그래야 시력을 회복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도 때때로 회개의 눈물로 적셔져야 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충혈 되도록 아둥 바둥 대지만 그게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에도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이 보입니다. 그래야 갈 길이 보입니다. 그래야 살 길이 보입니다. 회개의 눈물로 눈을 적시십시오. 혹시‘앞이 보이지 않는다, 살길이 막막하다’ 는 생각으로 답답함을 느낀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원함으로 회개의 눈물로 적시십시오. 그러면 살길이 보일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은 범죄를 감추려다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일깨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다윗은 자신을 향해 마땅히 죽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을 바라보았습니다. 간음하고 살인하고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드린 제사는 헛된 제사였습니다. 전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오직 마음을 찢는 회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마음 밖에 두지 않고 마음 안에 오시도록 맞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루어져야 참된 회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의 체면, 왕의 권위도 다 버리고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회개가 되도록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침상을 띄우는 회개로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회개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 받아야 할 회개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기도하게 하소서

미국의 시카고에서 황소가 전신주를 들이받았습니다.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화재가 발생하여 그 불은 점점 옮겨졌고 급기야 전 시가지가 불바다가 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도시는 완전히 불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기자들이 화재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는데, 무디 성경학교 옆에서 불타는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무디(D. L Moody)목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자는 비꼬듯이 묻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신다고 하셨는데 왜 하나님은 교회가 불타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실까요?” 물었습니다. 

그때 무디는 “나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 큰 예배당을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당이 불타고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를 철거하려면 비용만 해도 많이 들 터인데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말했습니다. 기자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교회를 지을 돈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을 펼치면서 “돈은 가지고 나오지 못했지만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얼마 안 가서 웅장한 하나님의 교회와 성경학교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얼마 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커다란 무디 성경학교와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옵니다. 자원하여 기도하면 더욱 하나님은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다윗은 죄악 한가운데서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굳게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정한 마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자원하여 기도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죄의 권세가 누르고 있기에 우리 속에 있는 선한 마음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으로 깨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힘쓰고 애를 쓰고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정한 마음도 기도할 때 주십니다. 

기도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습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살인자였지만, 하나님께 자원하여 기도하며 매달렸기에 다시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윗은 이스라엘의 상징적 왕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자원하여 기도한 다윗에게 임한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자원하는 기도를 통하여 살리시며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봉사하게 하소서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병들어 죽어가는 흑인들을 보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상가요, 신학자요, 음악가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는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그러한 헌신적 노력으로 53세에 괴테상을 수상했고, 76세에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으며, 77세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수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워 많은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90세에는 세계의 존경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에 슈바이처 박사의 동료 교수가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생활이 보장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아프리카로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려는가?” 그러자 슈바이처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자네 손이지” 그러자 그는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네. 이 손은 하나님의 손이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노릇을 하는 거야. 자네 지금 나를 동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절대로 동정하지 말게. 나는 행복해. 보람이 있어. 나는 무척 기쁘다네. 나는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봉사는 타의에 의해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3-4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주어진 사명을 행할 때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마음으로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으로 자원함으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맡은 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원하지 않고 부득이 함으로 봉사하면 부담이 되고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겠다고 자원하여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은혜만 받고 살아가는 자세가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을 가지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자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김 받게 될 것입니다. 

인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빈자(貧者)의 성녀’라고 불리었던 테레사(Madre Teresa)는 아침이면 베개위에다 십자가를 내려놓으면서 예수께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주님이 좀 쉬십시오. 제가 주님을 위해서 일 하겠습니다.” 혹시 무거운 짐을 예수께 맡기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께 지우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은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기념하는 사람보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부디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원하여 묵묵히 십자가를 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자원하는 심령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도, 골방에서 기도하는 일도, 찬송하는 일도, 감사하는 일도, 충성하는 일도, 섬기는 일도 모두 자원하는 심령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동시에 앞서가지 말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다윗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자원하는 심령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봉사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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