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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 있을진저! (암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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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암 6:1-7)


우리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모양으로 사람들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귀한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귀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 의미가 있지만 특히 사람들 사이에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약한 자, 또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돌보아 줄 것을 성경은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신 후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에게 망하라고 저주하지 않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불어 사는 것이 복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삶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장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 가인과 그의 후손 라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자신들의 욕망민을 추구한 그들의 삶은 결국 살인과 저주라는 비극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멕이 뭐라고 부르짖었습니까?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3~24)

오늘 우리는 또 다시 그와 같이 일그러진 삶의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아래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와 그에 따른 풍요로운 삶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생각합니다. 성경도 많은 경우 재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잠언의 말씀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물질적인 부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멸망이니라.”(잠 10:15)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잠 14:20) 

그러나 선지자 아모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당시 경제적인 번영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이라고 고발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두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편에는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는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가난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심지어 그들을 노예로 파는 자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부자들은 약자들을 착취하고 사치를 일삼았으며 부를 과시하며 호의호식하였습니다. 법도 또한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자들의 권력 수단이 되고 있었습니다. 가진 자들이 법을 지배했기 때문에 재판은 다만 부자들의 재산 증식에 악용되었을 뿐입니다. 부자들은 권력과 유착하여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그 부로 사치를 일삼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고발하고 있는 부는 가난과 깊은 인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자는 가난한 자를 갈취함으로써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부자에게 갈취를 당함으로써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부익부빈익빈이 바로 그 당시의 정황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물질적 풍요는 가진 자들의 그릇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부는 더 이상 하나님의 복이 아니요 그들을 멸망으로 치닫게 하는 지극히 위험한 요소일 뿐이라고 그는 담대하게 외쳤던 것입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뭐라고 외쳤습니까? “화 있을진저!”(암 6:1 상반절)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아라!” 또한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망한다!” 하나님의 일꾼인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복이 아니라 화를 선포했습니까? 부자들이 더불어 나누는 삶을 거부하고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착취한 것을 가지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평안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지만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암 6:7)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런 유혹에 빠지는 성도들이 이외로 많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이어지는 말씀으로 그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렇습니다! 더불어 나누지 않는 삶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처럼 결국 모두를 멸망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했습니다. 물질적인 부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자족하는 마음이 무엇입니까? 지금 상태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둘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우리를 더러운 욕망으로 이끌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복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일찍이 예수님도 더불어 나누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 부자가 왜 음부에서 그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까? 그는 생전에 크게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았던 것 같고 또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해야 했습니까? 

그 까닭은 그가 다만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우려고 할 때에 그가 외면한 것이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나누는 삶이야말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할 수 있는 길입니다. 또한 더불어 나누는 삶이야말로 오직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물질적인 부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생각하고 그 복을 받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물질적인 부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선지자 아모스는 부가 하나님의 복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동의 결과로 부자가 가난한 자를 갈취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라고 고발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혹시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라도 그런 재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도 선지자 아모스가 활동하던 그 당시와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까? 재물과 권세와 명성을 탐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우리를 피멸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친히 본을 보여 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받은 바 은혜를 나누는 삶을 통해서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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