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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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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시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시는 이야기들,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들, 그리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병자들 가운데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이야기를 따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 특별히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이야기를 따로 기록해 놓았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병이 당시 여러 가지 병들 가운데 특별한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병자들과 달리 이 나병환자가 보인 태도가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나병 아주 특별한 병

성경을 보면 많은 질병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질병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병이 바로 나병입니다. 구약에서는 레 13장과 14장 두 장에 걸쳐 이 나병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복음서에만 13번이나 나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 10: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명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제자들에게 특히 나병환자를 치유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나병은 특별한 병으로 여겨지지만 당시 2000년 전 예수님 시대에는 나병은 아주 특별한 병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병을 특별한 병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이 나병이 왜 특별한 병으로 여겨졌을까요?

우선, 병의 증상 때문입니다.
나병은 증상이 몸에 반점이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이 반점은 서서히 이마, 코, 뺨, 그리고 온 몸으로 번집니다. 그리고 반점이 생긴 부분은 감각이 사라지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마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더 심해지면 물집이 생기고, 진물이 흐르고, 눈썹이 빠지고, 손끝이나 발끝이 떨어져나가고,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나병환자는 통증도 힘겹지만 변해가는 외모를 보면서 절망하게 됩니다. 눈썹이 사라지고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끝이 없어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심각한 나병의 증상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절망입니다.

나병에 걸려 저주스런 삶을 살던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길’이란 시가 있습니다. 나병 판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전라도 소록도로 머나먼 길을 가면서 쓴 시입니다. 그 시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나병을 안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떠납니다. 더위에 지쳐 쉬려고 버드나무 밑에서 발싸개를 벗었는데.... 발가락이 또 한 개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두 개 남았는데 저 머나먼 소록도까지 가는 동안 그 나마 남아있어 줄 런지....

사실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절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통곡하며 울부짖는 것보다 더 짙은 절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 절망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애써 태연한 척해 보지만 감출 수 없는 절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절망 때문에 힘겨운 발걸음을 내 딛습니다.

오늘 이 나병환자는 그 절망을 안고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속 깊이 담겨있는 절망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절망을 내어놓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병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 나병은 일종의 전염병입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전염이 될 수 있는 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병환자는 격리되었습니다. 마을 밖 동굴 속이나 외딴 곳에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나병환자들을 따로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일단 발병이 되면 가족들 품을 떠나야 했습니다. 정붙이고 살던 마을을 떠나야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이 병 때문에 인생 자체가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동안 지니고 있던 것들 누리던 모든 것들 그리고 사랑하며 살던 모든 사람들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특히 나병환자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에 고통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나병시인 한하운의 또 다른 시 가운데 ‘벌’(罰)이란 시가 있습니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단지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천형과 같은 벌을 받는 나병환자들의 애환을 노래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너무도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는 가눌 길 없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세워놓고’

사실 오늘도 깊은 외로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서 있는 것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이 나병환자는 이 깊은 외로움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만져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깊은 외로움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담겨있는 외로움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주님 앞에 그대로 내어놓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외로움을 다 떨쳐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병의 영적 문제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나병은 일종의 죄입니다. 특히 부정한 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절대로 성전출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할 수도 예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철저하게 하나님과 차단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강요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들 취급을 받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병환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기도할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예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깊은 어둠 가운데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이면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인 어둠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본문의 나병환자는 이 영적인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어둠 가운데 갇혀있는 분들이 계시면 주님 앞으로 달려 나오시기 바랍니다. 빨리 영적인 어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병환자의 특별한 태도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나병환자의 특별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 왔습니다.

본문 40절을 보면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나병환자가 예수께서 부르셔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발적으로 예수께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올 수 없는 가운데 나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병환자가 사람들 앞에 나오는 것은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일입니다. 더더욱 공개적인 장소에서 특정인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엄하게 금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칫 율법을 따라 돌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나병환자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로 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주 앞에 나올 수 없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어찌 보면 생명을 걸고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용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이런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말 할 수 없을 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행동하기 어려울 때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주 앞에 나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연동교회를 목회하시는 이성희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군에 입대를 했는데 하필이면 헌병이 되었답니다. 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았는데 얼마나 군기가 센지 감당할 수가 없더랍니다.

특히 주일인데도 예배드리러 갈 수가 없고 순찰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부대장에게 말씀드렸답니다. “저는 주일에는 교회에 가야합니다. 교회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교회 갔다 와서 할 일은 다 해놓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씀이 “창조 이후 헌병이 교회에 갔던 일은 없느니라.” 한 마디로 일축을 하더랍니다.
이 목사님께서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래도 저는 교회에 가야합니다. 교회에 다녀와서 업무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녀왔는데 주일 오후 비참할 정도로 맞았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또 교회를 갔답니다. 더 비참하게 맞았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에는 오히려 다녀오라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 앞에 나오려면 때로는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본문 4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가 한 말이 좀 특별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만 원하시면 나병도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만 하시면 자기를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마가복음 1장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된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앞부분을 보면 아직 그 누구도 예수님께 믿음을 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직 이런 믿음을 고백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병을 고침 받았거나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도 아직 이런 믿음을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만 보면 이 나병환자가 첫 번째로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고백이 예수님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나병환자가 믿음의 간구로 치유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그해 농사를 다 망칠 상황이었습니다. 주님들이 저마다 간절히 기도를 드렸지만 허사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온 마을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도록 청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왕상 18장 말씀을 의지하여 엘리야처럼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치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셔서 3년 넘은 가뭄을 끝내는 단비가 내렸던 것처럼 기도회 도중에 거짓말처럼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갈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한 주일학교 꼬마가 가지고 온 우산을 활짝 펴고서는 집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우산을 준비해 왔니?” “목사님께서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면 비가 올꺼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우산을 가지고 왔지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 날 비가 온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이 모여서 간절히 뜨겁게 기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소녀의 믿음의 기도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나병환자를 친히 고쳐주셨습니다. 우선 나병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나병환자의 태도가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병든 몸을 어루만져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부정한 몸에 손을 대면 부정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대셨습니다. 저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님께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율법에 금하는 것이지만 저의 몸을 어루만져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끼끗함을 받으라” 이 나병환자의 기도에 그대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기도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시면서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한 기도가 특별한 응답을 이끌어냅니다. 특별한 태도가 특별한 대우를 이끌어냅니다. 여러분이 이 나병환자처럼 더욱 열심히 하나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나병환자처럼 믿음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처럼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의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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