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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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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계 3:7-13)

빌라델비아는 오늘날 알레쉐히르(AleShehir)입니다. 이곳은 무역도시로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우편도로가 이곳을 지나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로 통했기 때문에 동으로 향하는 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는 A.D. 17년과 23년에 큰 시련을 겪었을 당시 티베리우스 황제가 도시 재건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에 새로운 가이사랴(New Caesarea)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땅이 비옥했기 때문에 포도의 집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환난을 당할 때 신앙을 저버리지 아니한 교회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빌라델비아에 암미아(Ammia)라는 여신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Ⅰ.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본문 3장 7절에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라고 했습니다.

1) 거룩하신 주로 나타났습니다.
"거룩하시다"는 말은 죄와 구별되시고 사람과 구별되시고 성도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주시라는 말입니다.

2) 진실하신 주로 나타나셨습니다.
"진실"이란 말은 거짓이 없으시고 위선이 없으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로 나타나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사야 22장 15-25절에서 구체적 진술을 얻게 됩니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영광의 열쇠를 말합니다.

이사야서에는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 』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설명입니다. 

당시에 빌라델비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살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 선민의식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리스도 자신만이 천국의 주권을 소유한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에 『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6절에 『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고 했습니다.


Ⅱ.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 니다.

본문 3장 8절에 『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1) 열린 문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 『 열린 문을 두었다 』는 말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여기 "열린 문"은 본문의 종말론적 성격을 감안할 때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구원 받은 자의 문입니다.

a. 하늘이 열리는 것을 말합니다(창 28:12, 17; 행 7:56). 
마태복음 3장 16절에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b. 믿음의 문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7절에 『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라고 했습니다. 

c. 전도의 문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4장 3절에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d. 기도의 문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e. 좁은 문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라고 했습니다. 

f. 양의 문을 말합니다(요 10:9; 히 10:19). 
요한복음 10장 1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라고 했습니다. 

g. 원수 앞에서 승리의 문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 『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h. 혼인집의 문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0절에 『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고 했습니다.


2)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킨 일입니다.

여기 『 적은 능력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은 능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미미한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세가 작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기 『 지키다 』(카이 에테레사스,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는 반의적인 강조입니다. 그 교회가 소유한 영적 자원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하여 신앙을 파수하는데 진력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교만한 자를 내치시고 적은 것을 가지고 힘쓰는 자들을 좋아하십니다.

마가복음 12장 41-44절에 『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진실은 최대주의가 아니라 최선주의입니다.

3)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일입니다.

a.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 예수아, 호세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수 1:1; 스 2:2; 민 13:8). 예수는 개인적인 성격을 띈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할 자입니다(마 1:21; 눅 1:30, 31).

b. 그리스도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인데 그는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왕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행 5:42). 예수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다(요 1:41). 예수는 구원자이다(마 1:21)는 다 같은 등식관계의 이름입니다.

c.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는 초자연적 출생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몸을 입었습니다(마 3:7; 11:27; 16:16; 27:54; 눅 1:35).

d. 인자입니다. 
인자는 예수님의 인간되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신격의 인물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단 7:13; 마 16:27, 28; 26:64). 

그 이유는 빌립보서 2장 6-7절에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고 했습니다. 

e. 주입니다. 
이 이름은 주로 예수께 대한 존경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마 8:2; 20:33). 주님이 교회와 성도의 주인이며 통치자 되신 분임을 강조합니다(마 21:3; 24:42-46). 
주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신분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행 2:36; 고전 12:3; 빌 2:11).

이러한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그 이름을 위해 살다가 그 이름 때문에 고난 받고 그 이름으로 땅에서 축복받고 그 이름을 위해 죽고 그 이름으로 구원받고 그 이름으로 영생을 누리는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15장 25-26절에 『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3절에 『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Ⅲ.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권면입니다. 

1)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3:11).

빌라델비아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① 열린 문입니다(3:8). ② 적은 능력입니다(3:8). ③ 말씀 파수입니다(3:8, 10).

2)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3:11).

면류관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①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고 시험을 참는 자들에게 주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계 2:10; 약 1:12).
②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는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딤후 4:8).
③ 충성된 자들에게 주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벧전 5:4).
이러한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면류관을 받는 조건에 충실하고 그 조건을 빼앗기지 말고 지키라는 말입니다. 


Ⅳ.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약속입니다. 

본문 3장 12절에 『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지역은 당시의 지진으로 인해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견고한 성전 기둥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으로 실물교훈을 한 것입니다. 

계시록 7장 15절에 『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승리자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아니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에서 요긴한 사명을 감당한 자는 천상교회에서도 그 사명이 중대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 18절에 『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고 했습니다.

결코 천국은 무위도식無爲徒食(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기만 함)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성경은 결코 영생에서 국한하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자들의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계 7:15) 일거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2) 그 성전 기둥에 이름을 새겨 주겠다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에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약속입니다. 주님께 충성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전 기둥에 그 이름을 새겨 주겠다고 했습니다. 견고한 가운데 새겨지는 이름입니다. 
이기는 자들에게는 ① 하나님의 소유 ② 새 예루살렘의 소유 ③ 그리스도의 소유로 삼중 소유를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거룩한 이름을 그에게 기록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의 새 이름은 그분만 아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9장 12절에 『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라고 했습니다. 

적은 능력으로 주님을 붙잡는 일을 그렇게 주님은 귀히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둥같이 든든하여 나가지 않도록 삼중으로 그 이름을 확보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선한 양심 위에 서야 합니다. 인간이 가지는 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선한 양심 위에 세워진 믿음이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을 파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승리입니다. 

아무리 적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파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는 능력이 인간의 환경이나 인간이 가지는 재력이나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파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 있지 상대적 관계에서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은 언제나 최대주의가 아니라 최선주의입니다. 최선주의가 바로 순교정신입니다. 최선주의가 바로 승리자의 길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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