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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아를 중립에 놓고 기다리라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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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를 중립에 놓고 기다리라 (행 16:6-10)  

9월 마지막 주 우리 교회에서 와서 간증 말씀을 주셨던 이혜훈 의원의 말씀이 생생합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은 이야기를 하나 남기고 가셨습니다. 항상 기아를 중립에 두고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나는 집회를 정리하면서 기아를 중립에 두라는 말씀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주차창이 복잡한 곳에 차를 세워 둘 때에는 기아를 중립에 놓아 달라는 부탁을 많이 합니다. 차를 이리 저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아를 중립에 두지 않으면 차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기아를 중립에 두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기아를 중립에 두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1.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6장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위하여 이 곳 저 곳을 다닐 때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지 못 하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두 손을 펼치고 막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지 못 하게 하는 사건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하여 그리고 환경을 통하여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 썼지만 또 그 곳으로 가지 못 하게 예수님의 영이 막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데 자꾸만 막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환경의 음성임을 영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증거를 방해하는 사건이 생기는 것이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로아로 가서 밤에 되자 잠이 들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보였습니다. 환상속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말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에게 들린 특이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유럽 복음화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루디아라는 여자가 자주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놓고 있다가 바울을 맞아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를 세운 이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기아를 중립에 놓고 적어도 6개월 이상 기다렸던 것같습니다. 


소천의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사촌이 땅을 사 배가 아픈가?
그럴 수 있지

얽히고 설켜서 죽을 것만 같은가?
그럴 수도 있지  

어디서나 나서는 자들을 보는가?
그럴 수 있지  

가진 것 다 잃고 거지 되었는가?
그럴 수 있지

어처구니없는 억울함을 당했는가?
그럴 수 있지  

하는 것 마다 연속으로 망했는가?
그럴 수 있지  

콩을 팥이라고 우기는가?
그럴 수도 있지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었는가?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렇지 우리의 인생!
그럴 수 있지  

우리는 기아를 중립에 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1948년에 퇴역한 다음 콜롬비아대학교의 학장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컬럼비아에서 공부하였기에 몇 번 그 학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학생들은 건물에서 건물로 옮겨 다닐 때에 잔디밭을 밟고 다녔습니다. 입구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푯말을 붙여 놓았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길이 아닌 곳 잔디밭으로 다녔습니다.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길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란 팻말을 붙여놔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학교 직원이 학장인 아이젠하워에게 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는 그 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편리하고 가까웠습니다.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불편하고 조금 멀었습니다.그 때 아이젠하워는 아주 간단한 해결방안을 내 놓았습니다. 학생들이 다녀 누렇게 잔디가 죽고 자연적으로 길이 난 잔디밭에 길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 길에는 꽃을 심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기아를 중립에 놓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2. 모세가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종살이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번성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던 약속을 애급에서 이루시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인구 말살 정책을 썼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 부모는 다른 부모와 달리 생명을 걸고 모세를 길렀습니다. 더 이상 숨겨 기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일강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갈대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말하는 데 이는 키가 없는 배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맡긴 배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는 항상 중립기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잘 운전하여 주셨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고 애급 궁중에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그래서 후에 바로와 대결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바울도 모세도 모두 기아를 중립에 놓았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전자저울 회사 ‘카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동진 장로님이 세운 기업입니다. 김 장로님이 처음 저울을 만들고 나자 인기가 없었습니다. 너무 정확하고 조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장사꾼들은 저울을 약간 속이면서 이익을 남기고 있었는 데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정육점에 억지로 저울 하나를 팔았습니다. 이 정육점은 정확한 저울로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박장로님은 정확한 저울로 속이지 않고 팔면서 놀라운 일이 생기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정육점이 정직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점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정육점들은 그 때서야 비로서 이 전자저울을 사기 시작하였습니다. 3개월만에 1200대가 팔렸습니다. 일약 번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대나무같았습니다. 중국 어떤 대나무는 5년 동안 땅속에서만 자라다가 6년째가 되면 한 여름에 6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카스 회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중립기아에 놓고 경영하였더니 하나님이 때가 되니 국내 시장점유율 1위가 되게 하셨습니다. 현재 550명의 직원, 연매출 600억원의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기아를 중립에 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모세 그랬습니다.

  

3. 유다가 그랬습니다.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도할 모세같은 영성있는 지도자가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전쟁에 능한 지도자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데려가시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보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7 족속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모두 죽이거나, 모두 내쫓거나 모두 종으로 만들어야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뿐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윗에 통일 왕국을 이룰 때가 100여년은 온통 전쟁이었습니다. 첫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차를 중립에 놓고 물었습니다.

“하나님! 누가 먼저 올라가 싸우리이까?” 하나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유다가 먼저 올라갈 지니라”(삿 1;2)

그래서 100여년 전쟁할 때마다 유다가 가장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12 지파가 같이 애급에 들어가서 같이 400년 살다가 같이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몇 명이 출애급하였나를 세어보았습니다.

유다지파가 74,400명이었습니다. 므낫세지파가 32,000명으로 가장 작았습니다. 군사수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급에서 유다지파를 가장 번성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런지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났습니다. 유다지파를 앞장 세워 싸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 있었음이 400년만에 들어 났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하는 일들은 모두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4.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이 땅에 흐르는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기아를 중립에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중립기아를 놓은 가장 확실한 모델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돈을 좋아 하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 냥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병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잡혔습니다. 끌려가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상에서의 선언이었습니다. 구원사역을 마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아를 중립에 놓은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1) 하나님께서 개입하기 시작하십니다.

중립에 놓으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사작하십니다. 네가 부정하였으니 내가 긍정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에게 맡겼으니 내가 맡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중립 기아에 놓은 순간에 하나님은 마케도니아아 청년을 보여 주시면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하나님께 맡긴 순간부터 하나님이 오묘하게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유다도 그렇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가 싸울 지 하나님께 물은 순간 하나님은 유다를 지목하시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중립기아에 놓은 순간부터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한나도 그렇습니다.

둘째 아내 브닌나는 10명의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약 20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 하여 고통중에 몸부림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할 때에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중립에 놓았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도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중립에 놓았을 때 응답이 왔습니다.

우리도 모두 기아를 중립에 놓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릴 때 하나님이 개입하기 시작하십니다.
  

월간지 「좋은 생각」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영웅 나폴레옹이 폴란드로 진격하였습니다. 농촌 마을의 영주가 나폴레옹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저녁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도착하자 영주는 문밖에까지 나가 영접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온 나폴레옹은 식사가 마련된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주인은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자리도 그 다음 자리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자리에 나폴레옹을 앉게 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기분이 나빠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수행신하가 영주를 꾸짖었습니다. 

“대 프랑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이렇게 대접하면 안 됩니다. 영주는 두려움이 없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영주는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자리는 제 부모님이 앉으시는 자리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황제폐하가 제일 높으시지만 저희 집에선 제 아버님과 어머님이 제일 높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에서는 황제가 제일 높으신 분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제일 어른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높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인도하여 주십니다.
  

2) 중립에 놓고 응답은 고난부터 시작됩니다.

중립에 놓고 하나님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축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고난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간 곳을 빌립보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가서 죽을 뻔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인강에 띄웠습니다. 악어밥이 되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바로왕의 공주가 다가가기 전에 악어가 먼저 냄새를 맡았다면 모세는 악어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이 덮칠 수도 있습니다. 위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다도 그렇습니다.
전쟁에 앞장 선다는 의미는 가장 희생자가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장 전사자가 많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입니다. 인간이 생각하여 낸 사형방법 중에 가장 비참하게 죽이는 방법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중립기아 놓은 순간부터 어려움이 따르기 시작합니다.


3) 결론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축복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바울을 감옥에서 인도하여 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이 보호와 인도의 손길이 바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각종 위험을 다 물리치고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여 궁중에 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최선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유다가 그랬습니다.
전쟁에 앞장 섰던 유다를 12 지파 중에 하나님은 가장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왕이 가장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지파중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구원하여 주신 우리의ㅏ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기아를 중립에 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의 결론은 축복입니다.
  

선거할 때 인터넷에서 가장 나를 괴롭히던 목사님이 계십니다. 
내가 선거에서 나오고 금권선거 개혁에 기수가 되자 그가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강문호 목사님이 선거판에 들어서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개혁에 힘을 보태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교회 청동문에 95개 조항을 붙인 것이 종교 개혁에 불을 질렀습니다. 루터도 그렇게 큰 불이 될 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나를 강 루터라고 말합니다. 강 잔다르크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총회 특별재판위원회에서 나를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나는 두 번 거절하였습니다. 강화중앙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마지막 재판위원회가 열렸습니다.

화요일 11시부터입니다.

월요일 밤 11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하여 감리교를 바로 잡아 달라는 부탁 전화였습니다. 그 때까지 나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도 10번도 더 오가며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나가면 바른 말을 하여야 하고, 바른 말을 하면 5년만에 정상화된 감리교가 또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밤 11시에 그가 전화한 것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나가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새벽에 나가 목사님에게 새벽에 광고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집회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여야 했습니다.

113년 된 교회에서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강화중앙 장로님은 지난 선거에서 내가 사퇴한 것도 모르고 나를 찍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하나보다 교단 일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오전 집회를 없애고 재판이 열리는 종교 교회로 갔습니다. 한 목사님이 나를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은 실갱이를 하다가 11시 10분에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놀라는 눈으로 나를 챠다 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 증언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을 내가 이야기 하였습니다. 금권선거가 이루어졌음을 증언하며 8억을 요구한 이도 있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감리교에 불을 질렀습니다. 온 감독들이 모여 나를 성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혼자만의 의를 위하여 감리교를 혼탁한 집단으로 낙인 찍었다고 사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우리 선교지로 가서 선교관 기공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국민일보가 다시 보도하였습니다.

온 기독교에 불을 질렀습니다.

나는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 전체 기독교를 뒤흔들어 놓을 줄 몰랐습니다. 일파만파였습니다. 이제까지도 중립에 놓고 주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부터도 개혁의 기아를 중립에 놓고 주님의 방향 명령을 기다리려고 합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럼버스 고속도로 변에 이런 광고판이 있답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Don't believe in God. You are not alone.)  

사탄은 계속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마귀는 디아블로스입니다. 틈을 내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사탄에 속지 말고 하나님은 온전히 의지하며 중립기아를 놓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이에게 하나님은 임재하셔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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