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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여전히 ‘마라’인 이유

  • 고일호 목사(서울 영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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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마라’는 좌절과 고통의 현장이다. 메마른 광야에서 3일 동안이나 물을 찾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드디어 물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물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는 쓴물이었다.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진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안 모세는 부르짖어 구했다. 그리고 해결책을 응답받았다. 출애굽기 15장 2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모세는 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라고 우기지 않았다. 여론전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가 봐도 분명 그것은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었다. 쓴물을 쓴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 판단과 정직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현실을 호도하거나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마라와 같다. 곳곳에서 좌절과 절망이 쌓여 분노가 되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에겐 문제가 있다. 모세처럼 올바른 상황 판단과 정직함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바뀌지 못하고 있다. 
고일호 목사(서울 영은교회) 

<겨자씨/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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