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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나의 표적(表蹟) (눅 1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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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표적(表蹟) (눅 11:29-32)


표적이라는 말을 새 번역성경에서는 표징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miraculous sign’ 초자연적인 능력이 밖으로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힘만으러는 일어날 수 없는 신비한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1) 여기서 말하는 표적이란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신 기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표적을 요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한다”(29절)고 하시면서도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30절)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처럼, 예수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어떻게 이루어 졌을까?

  
󰊱 투기(投棄)된 요나

요나는 성난 바다에 투기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투기(投棄)란 “던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요나는 니는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욥바 항구로 가서 배를 탔습니다. 바다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질 지경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을 바다에 던지며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데 요나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선장이 요나를 보고 “어찌하여 잠을 자고 있소? 일어나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라도 당신의 신이 구해준다면 죽지 않고 살아날지도 모르잖소?” 
  
사람들이 재앙을 만난 것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아보자 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사람들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이런 재앙이 내렸는지 말해보시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 질 것이요. 나 때문에 태풍이 일어난 것을 나도 알고 있소.” 사람들은 배를 육지로 이동시켜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갈수록 폭풍은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요나는 태풍의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태풍의 중심에 떨어졌습니다. 
태풍이 없으면 바다는 썩는 답니다. 바닥부터 썩는 바다를 태풍이 뒤집어 놓습니다. 태풍이 바다를 정화시킵니다.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라는 뜻인데 그는 고집쟁이입니다. 자기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습니다. 고집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을 뿐입니다(롬2:5). 성난 파도의 높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높이였습니다. 
  
옹기장이는 자기 마음에 안드는 옹기는 던져버립니다. 던져도 안 깨지면 망치로 때려 깨버립니다. 그리고 새롭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태풍의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고집쟁이는 깨부술 수는 있어도 순종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쇠고집 닭고집이라고 합니다. 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길로 가라면 산으로 갑니다. 요나가 니웨로 가라시는데 다시스로 가는 겁니다. 요나가 말했듯이 요나 때문에 태풍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분노 속에는 요나를 굴복시켜 전도자로 쓰려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를 통해 니느웨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를 통해 표적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물고기가 그를 삼켰습니다. 태풍의 바다가 그를 순종하는 전도자로 만드는 모태였습니다.
  
예수님도 버림받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혼자서 십자가에 달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셨습니다(막15:34,37). 고독한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의 아침이 있었습니다.     

  
󰊲 기도(祈禱)하는 요나

고생이 기도를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나는 3일 밤낮을 고기 뱃속에 머물게 됩니다. 요나는 거기서 기도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2:2) 
  
살려달라고 부르짖더니 주님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 주셨다. 사람들이 자기를 바다에 던졌지만, 주님께서 나를 바다 가운데 던지셨다. 주님께서 내 생명을 건져 주셨다. 나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렀다고 기도합니다. 요나는 거기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희생의 제물을 바치겠으며,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예수님의 기도는 표적을 만드는 기도였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표적 말입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기도하십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결단의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26:42,45-46)
  
표적을 만드는 과정은 버려지는 아픔과 통곡의 기도였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6:7)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계실 때 어떤 여종으로부터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부인하기를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 세 번까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마26-75). 심한 통곡이 있고 난 후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12척 밖에 안되는 함대로 133척을 거느린 일본과 맞서야 했습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않아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난중일기에 나오는 시입니다. “깊은 시름”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깊은 근심, 걱정입니다. 마음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는 근심과 걱정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표적은 깊은 시름의 산고 끝에 얻은 대승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되어라“”(눅224) 하였습니다.

  
󰊳 전도(傳道)하는 요나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2:10).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두 번째 임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3:2) 첫 번째 요나에게 임한 말씀은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라”(욘1:2) 첫 번째 임한 말씀은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제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고 난 뒤 두 번째로 임한 말씀은 처음에 하신 말씀의 반복입니다. 첫 번째 받은 말씀은 도망치는 것으로 끝냈던 그가 이번에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결과는 대박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왕까지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지도 마시지도 말 것이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그리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명했습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라”(잠24:11)
  
전도는 세일즈맨십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들 중 48%는 고객에게 딱 한번 권유합니다. 싫다면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25%는 한번 더 권하고 15%는 세 번까지 권합니다. 세 번에 끝내지 않고 한 번 더 찾아가 권하는 사람이 12%인데 그들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팔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있습니다. 포기하려고 할 때 “한번 더” 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로마인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로마의 있는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로 했습니다(롬1:10). 감옥에 갇혀서는 옥중서신을 보내어 전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17,21) l전도는 끈질겨야 성공합니다. s엘리야의 영성은 일곱 번 정신입s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가라!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다. 전도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위대한 교회는 위대한 명령을 수행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수행할 때 위대한 교회가 나옵니다.  
  
로마전성시대의 로마군대는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앞으로가!”라는 명령을 받은 군대는 낭떠러지 앞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제자리 서!”라는 명령이 있기까지는 계속 앞으로 갑니다. 그 군대를 보고 적장은 미리 항복했습니다. 그런 군대와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섹스피어는 “위인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 노력해서 위인 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을 강요당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나가 예수님임 인정하는 표적이 된 것은 날 때부터 위인이언Trj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요로 된 위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말 잘 들으면 우등생 되고, 부모님 말 잘 들으면 효자되고, 아내 말 잘들으면 공처가 되지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표적이 나타납니다. 
  
요나는 바다에 투기되었습니다. 제 고집대로 하다가 당한 일입니다. 그는 거기서 기도하며 돌이켰습니다.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서 전했더니 말이 먹혔습니다. 니느웨의 모든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의 열심으로 오천명이 모여 감사의 축제를 드리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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