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례식] 너희는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시 115:14-18)

첨부 1


너희는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시 115:14-18)


신앙의 자유를 찾아 죽음을 불사하고 대서양을 건넜던 미국의 청교도 조상(The Pilgrim Fathers)들의 항해는 복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사실상 영국 국교의 박해를 피하여 1620년 9월 6일 메이플라워(The May Flower)라는 작은 배에 102명(남자 78명, 여자 24명)의 사람을 태우고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 신대륙은 1492년에 콜롬버스가 스페인의 국기를 달고 발견한 땅이었습니다(콜롬버스가 이탈리아 사람인데도 스페인 국기를 달고 항해를 했던 것은 스페인 여왕 퍼디벨너 이사벨라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사경을 넘는 수많은 사연들을 간직하고 신대륙, 지금의 미국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추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드린 공식적인 감사예배가 지금의 추수감사절의 새로운 기원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저들의 감사는 원천적인 감사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이 공개된데 대한 감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고 했습니다(엡 1:9). 또 '계시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엡 3:4).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라고 했습니다(엡 3:9). 이것은 바로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비밀을 우리가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례전(Sacramentum)입니다. 성경은 이 성례전을 세례와 성찬으로만 엄격하게 규정지었습니다. 

Ⅰ. 성례입니다.

1) 성례의 정의입니다.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교수는 "성례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된 거룩한 제도로써 이 제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감각적 표징을 통하여 성도에게 제시되고 인쳐지고 적용되며 성도가 하나님께 신앙과 순종을 표현하는 예식"이라고 했습니다. 
성례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외형적 표징입니다. 그 다음은 내면적 영적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례는 표징과 의미를 표시하는 은혜의 유익들의 연합입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루터파가 말하는 장소적인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신비입니다. 따라서 성례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는 없고 외형적인데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형식주의입니다. 외형이 먼저가 아니라 영적이고 내면적인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성례는 구원의 절대적 필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교훈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무적으로 행하며 만일 고의적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말씀과 성례입니다. 
말씀과 성례는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례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양자는 하나님이 그 창시자입니다. 
① 말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성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② 말씀은 신앙을 일으키고 그 말씀을 보완하지만 성례는 그것을 보완할 뿐입니다. ③ 말씀은 온 세상에 전파 되지만 성례는 언약 가운데 있는 사람(법적세례자)에게만 시행합니다. 

Ⅱ. 세례입니다. 

1) 세례의 정의입니다.
요한복음 3장 25-26절에 『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 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의 한 성례입니다. 세례에는 불세례(성령세례)와 물세례가 있습니다. 불세례 받은 자에게 물세례가 베풀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연합하고 은혜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는 것을 표시하고 인치며 전달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세례는 물로 씻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A. A. Hodge)는 "세례는 본질적으로 물로 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외면적인 물로 씻는 의식을 정하시고 여기에 언약을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① 옛 사람이 장사되었다는 표식입니다. 
로마서 6장 3-4절에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는 표식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③ 새 생명으로 살 것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표식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 …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④ 은혜 계약의 표와 죄 씻음의 표식입니다. 
로마서 6장 5절에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6절에 『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고 했습니다. 

2) 세례의 실재입니다. 
① 세례 받는 사람은 물속에 잠그는 것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세례 받는 자에게 물을 붓든지 뿌리든지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히 9:11; 행 2:41; 고전 10:2). 세례 받을 때 침례를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허락할 수 있다고 하지(Hodge)는 주장합니다. 
② 세례를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눅 7:30; 출 4:24-26).
③ 부모가 다 믿거나 한 편만 믿는 자의 유아라도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고전 7:14; 막 10:13-16; 눅 18:15; 행 16:14, 15, 33). 
④ 세례는 어느 사람에게든지 단 한번만 베풀 수 있습니다(딛 3:5). 

Ⅲ. 성찬입니다. 

1) 성찬의 정의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행한 것으로 구약에 키더쉬(Kiddush)의 일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라 하셨고 식후에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은 성경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루터의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은 보완되어야 합니다. 
쯔빙글리의 기념설(記念說 Commemoration)은 성찬의 신비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칼빈이 주장한 영적임재설(靈的臨在說)과 기념설(記念說 Attendans and Commemoration)은 성찬의 의미에 매우 합당합니다. 
성찬식에 주님이 육체적으로 임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임재설(靈的臨在說)을 믿습니다. 

2) 성찬의 의미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상하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찬의 첫째 의미는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고전 11:26). 둘째, 성찬은 성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을 상징합니다(요 6:53). 셋째, 성찬은 영혼에 생명과 힘과 기쁨을 줌으로써 영적 양육과 성장을 도모합니다. 넷째,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 신체의 지체가 되는 성도들의 상호 연합을 상징합니다. 
성도들은 동일한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므로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10:7; 12:13). 

① 주님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제물된 사실을 기념하고 그 사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고전 12:24-26; 마 26:26-27). 로마 카톨릭의 미사(Mass)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제물, 즉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위해 드린 유일한 화목제물을 극단적으로 손상시키는 행위입니다(히 7:23, 24, 27). 

② 주님의 신비적 몸의 지체로서 서로 거룩한 교제를 위해 정해주신 것입니다(고전 12:23-26; 10:16; 12:13). 

③ 참 신자들의 모든 은사를 인치시며 영적인 성장을 위함입니다. 

④ 신자들의 맡은 모든 임무에 충성을 다짐하게 합니다. 

⑤ 성찬은 부활의 약속입니다. 
첫째부활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둘째부활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⑥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영적인 표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9절에 『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성찬의 신비는 불신자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엄격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허락하신 거룩한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된 표호를 삼고 주와 하나 되게 하고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찬을 먹고 마심에 단순한 기념으로 끝나지 말고 온전한 식음작용이 되어서 우리의 생활 전반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바른 길을 갈 수 있을 때 성찬에 참예하는 우리 모두는 복되다고 하겠습니다. 

⑦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5절에 『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찾아오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십니다. 

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②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있습니다. 
③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설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시의 일부만 가지고도 신약의 완성된 계시를 보고 기뻐했습니다(요 8:56). 주님이 찾아오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성찬예식이 아니라 떡을 통해서, 잔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내 살과 피(요 6:53, 55, 56), 내 살 내 피, 인자의 살, 인자의 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는 표현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확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그 누가 내 살을 먹으라고 한 사람이 있는가? 
이 땅에 그 누가 내 피를 마시라고 한 사람이 있는가? 
이 땅에 그 누가 나를 끝까지 사랑한 사람이 있었는가? 
이 땅에 그 누가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갈 자 있었던가? 
이 땅에 그 누가 나에게 계대적인 축복을 약속한 자 있었던가? 

부모보다, 스승보다, 형제보다, 자식보다, 친구보다, 남편보다, 아내보다 오직 주님만이 이 일을 가능케 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들이요 지금도 계속해서 복을 받는 자들입니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