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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 (롬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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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 (롬 1:16-17)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기 얼마전의 일이었습니다. 고종은 일본이 불법적으로 우리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냈습니다. 이상설과 이준은 고종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의 상황을 알리지 못하고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1910년 바로 100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G20의 의장국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가의 정상들, 국제단체장들, 그리고 경제인들이 모여들어서 회의를 치뤄냈습니다. 이것을 놓고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국격이 많이 높아졌다고 자랑스럽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주로 압니다. 옛날에는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워서 외국에 나가서 일본인 행세를 하거나 중국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의 부강과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묵묵히 기도하고 애쓴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보상해주시고 그 눈물을 닦아주신 결과로 지금의 국격이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이와같은 축복은 다른데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와 원인을 찾는다면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복음에 열정을 가지고 십자가로 이 강산을 덮고 있기 때문인줄로 믿습니다.  

히틀러정권때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들을 멸시하기 위하여 가슴에 노란 별을 붙이고 다니게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두 그 별을 자원하여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옷에 노란 별을 달아주면서 저들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해준 말은 "너희는 자랑스러운 유태인임을 잊지 말아라"는 당부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유태인이 나라 없이 1800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나라를 세우는 불가사의한 힘의 근본이 되고 원천이 된 것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임을 부끄러워 하고 유태사람이 유태사람인 것을 부끄러워 하여 은폐하고 감추는 것은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민족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 믿는 다는 것과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결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그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도 할 수 있고, 전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독립운동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유태인이 유태인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 몸 아낌없이 희생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부끄러운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감추고 싶어하고 멀리하고 싶어하며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랑스러운 것은 드러내 놓고 싶어하고 가까이 두고 싶어하며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인생은 관계적입니다. 관계를 잘 가져야 행복합니다. 가난해도 관계가 좋으면 행복합니다. 부하여도 관계가 나쁘면 불행한 것입니다. 관계를 잘 하는 비결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어떤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해 갈려면 부끄러운 부분을 들추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의 부끄러운 부분은 알아도 모른척 해주어야 합니다. 상대가 내 부끄러운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 하는 부분은 못본채 하고 감추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을 알아주고 붇돋아주면 관계가 밀접하게 되고 친하게 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 하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잘 알지 못하고 핍박할 때는 그도 복음을 한없이 부끄러운 것쯤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거듭나기 이전 율법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핍박할 때에는 복으믈 몹쓸 전염병, 무서운 바이러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체험하고 난 후로부터는 복음을 가장 자장스러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3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늘 맡기심이라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어찌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인생을 바꾼 여자 친구가 있다면 그 여자 친구를 어찌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나의 아내가 나의 인생에 평강공주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내가 어찌 그를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면 남편을 어찌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어머니가 여러분의 인생의 중요한 일을 했다면 어찌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는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믿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까? 자랑스러운 것입니까? 교회를 출입하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까? 아니면 부끄럽고 창피스럽게 느껴집니까?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은 아직도 복음을 능력으로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복음을 능력으로 경험하게 되면 그때부터 복음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자랑하고 교회를 자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자기들이 십자가에 내준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좋을리가 만무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수치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철학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강한 것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복음 가지고 되겠느냐? 십자가 가가고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약하게 만드셔서 복음을 자랑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유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강한 헬라적인 사람은 약한 것처럼 보이는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능력'이라는 말은 유명한 헬라어 '뒤나미스'라는 단어로서 '타고난 본질적인 힘'을 가리킵니다.
더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모든 인간적인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며 모든 인간적인 의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절대적인 힘입니다.

복음은 도덕이나 규범이나 착하게 살아보자는 것 정도의 수준이 아닌 것입니다. 이정도의 것이면 그렇게 목숨걸고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하셨습니다. 
복음에 붙잡히고, 복음에 접속되고 연결된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자신의 역량보다 훨씬 능력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들어두면 괜찮고, 좋은 것이니 듣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다니면 착한 사람되고 좋은 사람되라고 다니는 것 정도라면 그렇게 희생을 치르면서 교회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누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복음을 능력으로 믿고 능력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능력이 능력 되려면 "믿음"이 선결조건입니다. 아무리 잘 조제된 약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복용되지 않는다면 환자를 낫게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복음이 아무리 능력이 있을 지라도 그것을 믿지 아니하면 약봉지에 담겨진 약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복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을 자랑합시다.
내가 현재 그리스도인인 것을 자랑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자랑스럽게 여깁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합시다. 
가볍게 이야기 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마가복음 8:38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어워 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교회를 부끄러운 집단으로 만드는 일을 거침없이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 앞에서 내 삶이 또한 부끄럽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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