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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보수(報讐) (나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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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수(報讐) 

(나 1:2-8)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1. B.C.990년경 다윗 왕의 장남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했습니다. 이 사실을 다말의 친오라비 압살롬이 알고 보복을 결심합니다.(삼하13:32) 만 이년 후 사건이 잠잠해지는 듯하자 압살롬이 모든 형제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기회를 엿보아 보복을 결행합니다. 잔치 중 암논이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압살롬은 미리 준비시켜놓은 종들을 통해 암논을 보복 살해하고 도망합니다. 다윗 왕은 이러한 자식들의 범죄에 대해 아무런 징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과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처럼 형제들간에 보복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삼하13장) 

압살롬이 도망한 후 3년이 지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도 다윗 왕은 압살롬의 죄악을 묵인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렇다고 압살롬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은 차제에 역적을 꾀하고자 은근히 아버지 다윗 왕을 비방하면서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민심을 도둑질합니다. 결국 민심을 끌어들인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키고 다윗 왕은 도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란군이 평정되고 압살롬은 도망하는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산채로 매달리자 추격하던 요압 장군이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찌르고 무기를 든 10명의 군병들이 달려와 쳐 죽여 확인 사살해 버립니다.(삼하14-18장) 

서부 액션 영화 <조나 헥스>의 주인공 조나 헥스는 오른쪽 뺨 전체에 아주 흉악하고 큰 흉터를 가진 전설적인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입니다. 현상금 걸린 사람들을 사냥하던 중 그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 그의 얼굴에 흉터를 남긴 테러리스트가 바로 현상금 걸린 것을 알고 불타는 복수심으로 그를 추격합니다. 그런데 그 테러리스트가 미국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엄청난 무기를 소유한 자로 미 정부가 현상금을 걸고 추격하던 자였습니다. 정부는 이 테러리스트를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나 헥스 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조나 헥스에게 그 사명을 맡깁니다. 조나 헥스가 마침내 복수하고 무덤을 떠나며 이렇게 말합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두 개의 무덤을 파야 한다. 한 개는 적의 무덤, 또 한 개는 자신의 무덤. 내 무덤은 좀 더 기다려야 할 듯 싶다.’ 

엊그제 서해 연평도 해안포 공격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숨지게 한 북한이 또다시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라며 적반하장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6.25 이후 북한의 숱한 공격과 테러 등으로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당했으면서 한 번도 보복공격을 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6.25 휴전 협정에 따른 군사적, 정치적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한은 북한의 도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UN연합군 사령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북한은 이를 악용하여 남한은 결코 보복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하늘이든 땅이든 바다이든 쉽게 도발 공격을 단행해온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보복 공격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무리 빗발치더라도 사실상 속수무책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는 환구시보는 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을 두고 “이런 식으로 간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며 처음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매체는 “연평도 포격 사건발생 후 한국은 매우 비통해하고 중국은 외교적인 어려움에 빠졌으며 미국과 일본은 분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만이 기를 펴고 활개를 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환구시보는 천안함 사태 이후 주로 북한을 편들어왔던 그 간의 논조와 달리 이번 26일자 사설을 통해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론하며 “북한은 사실상 독약을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북한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보복 공격으로 두 개의 무덤을 파기 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복으로 북한의 도발이 독배(毒盃)를 마신 꼴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니느웨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의 손자 니므롯이 세운 도시로 상당히 큰 도시였습니다.(창10:6-9) 니므롯은 당대 가장 힘센 사냥꾼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니느웨는 오늘날 이라크 바그다드 북쪽 40km 지점인 모술 근교입니다. 당시 니느웨는 그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난공불락의 도성이었고, 요나가 그 도성 전체를 도는데 3일이나 걸리며 인구 60만명이 사는 초대형 도시였습니다. 니느웨는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교역과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니느웨는 주변 시리아, 베니게, 블레셋, 이스라엘, 애굽 등을 정복하고 초토화시켜 막대한 부를 챙겼습니다. 그리고 정복한 나라들에 대한 포악하고 잔악한 압정으로 많은 원성과 원한을 샀습니다. 거짓과 포악, 탈취와 살육 등 니느웨의 죄악상을 나훔서 3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3:1-4)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니느웨는 오늘 본문의 경고 100년 전에도 잔인하기로 악명높은 도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여 멸망시키기에 앞서 요나를 보내,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하며 회개할 기회를 베풀었습니다. 요나는 자기 민족의 원수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원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억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니느웨 도성은 이 메시지를 듣고 왕을 비롯해 전 백성들,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힘써 부르짖어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욘3:1-10)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까? 범죄한 이방의 도시, 이방인들일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요 성품이기 때문입니다.(벧후3:9) 

지금 이 시대 인생들을 향해서도 같은 마음과 성품으로 인내하시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니느웨 도성의 뜻밖의 회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도성에 대한 심판을 거두시자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나에게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박넝쿨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는 말씀으로 인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욘4:10-11) 참으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34:6, 시 145:8) 

그런데 그 니느웨가 100년 후에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요나를 통해 회개의 기회를 줄 때 자신의 옷을 찢으며 재를 덮어쓰면서 기꺼이 회개하고 엎드렸던 니느웨가 시간이 지날수록 패역무도하여 여전히 이웃나라를 억압하고 착취와 살상을 일삼게 된 것입니다. 요나 3:1에서, “피의 도성!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 도성!”이라고 고발한 것처럼 그 죄악상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구제불능 상태가 된 것입니다.(욘3:19)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경고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 2-3절을 보겠습니다. 

(나1:2-3)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며 보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질투”하신다는 말씀은 예전에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와 구원받았으면 그 은혜와 사랑으로 감사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이전보다 더욱 더 죄악에 깊이 빠져 살기 때문에 질투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니느웨의 배신에 대해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했습니다. 니느웨의 잘못된 사랑,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잘못된 사랑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나3:4)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실 정도로 인생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 사랑하는 것을 질투하십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면 진노하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계속 등을 돌리면 그 잘못된 사랑에 대해 보복하십니다. 질투와 진노, 그리고 보복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B.C. 1410년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인 모압 근처에서 머물게 될 때였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에 빠지게 하기 위해 미모의 여인들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습니다. 미인계에 넘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에 빠졌습니다. 음란에 흠뻑 젖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인들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함께 우상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로부터 엄청난 염병이 돌기 시작해서 무려 2만 4천명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잡아다가 대낮에 내 앞에서 처형하라. 그러면 이 백성에 대한 나 여호와의 분노가 사라질 것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음행과 우상숭배한 사람들을 모두 처형하자, 여기저기에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상집 같은 상황에 한 이스라엘 사람(시므온 지파 족장 시므리)이 모세와 백성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천막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통회하는 그 순간에도 파렴치하게 음행을 자행한 것입니다. 그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그것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창을 들고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 단숨에 그 남자의 등에서부터 그 여자의 배까지 한꺼번에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불타오르는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여 결연히 일어나 단번에 처형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퍼진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25:11-13입니다. 

(민25:11-13)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음행과 우상숭배할 때, 하나님은 그 거룩한 속성상 뜨거운 질투와 진노로 다가오십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질투하시고, 질투하시기 때문에 진노하시고, 진노하시기 때문에 보복하십니다. 그래서 비느하스의 행동을 두고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1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비느하스의 행동이 곧 하나님의 마음,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것입니다. 질투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느하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염병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질투가 성도 여러분에게도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질투할 만큼 하나님만을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사랑이듯이 ‘보복은 하나님의 것입니다.’(엘 네카모트)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는 말씀, 이른바 “모세의 노래”가 신명기 32장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35절) 보복은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It is mine to avenge) 고 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타락하여 우상숭배하며 불의하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보복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보복은 내 것이라.”는 말씀은 보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러므로 보복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4장에 기록된 ‘라멕’ 이후로, 인간의 역사는 보복과 복수의 피로 얼룩져 왔습니다.(창 4:23-24)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직접 보복하고 복수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 대신 ‘복수는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94편은 ‘복수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억울한 자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시94:1-3)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불의한 일을 당한 억울한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복수해 주실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악한 자들”(미 3:9), 아무리 악한 일을 계속해도 “하나님이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알아차리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시 94:7), 하나님은 이런 악한 자들을 징벌해서 복수하시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들에게 정의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복수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약한 자들을 대신해서 복수해 주시고, 정의를 실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보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피해를 당하고도 호소할 곳도, 보복할 힘도 없는 약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복은 내 것이라.”고 하신 것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 뻔 했다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13년 한 많은 종살이 끝에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가나안 땅의 흉년으로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그들이 노예로 팔았던 동생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형들이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떨며,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에게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하셨다면서 요셉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요셉이 그 말을 듣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오히려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창50:16-21) 하나님을 대신해서 복수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날로 인기가 상승하는 다윗을 시기하여 죽여 없애버리고자 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충신 다윗은 도망자가 되었고, 사울 왕은 국사를 제껴놓고 다윗을 추격하는 추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아 도피 중에 여러 차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십’(the Desert of Ziph)광야에 도피했을 때 정보를 입수한 사울 왕이 정예병력 3천명을 투입했습니다. 그 날 밤 다윗은 사울의 진지에 잠입해 동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사울은 신하들과 더불어 무장해제한 채로 골아 떨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복 아비새가 다윗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의 원수를 보복할 절호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서 단번에 해치우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건 안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니 그는 죽을 때가 되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왕으로 택한 자를 내가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 자, 여기서 나가자’ 그리고 그곳을 떠나 맞은편 산꼭대기로 올라가 사울을 향하여 외칩니다. ‘왕은 어째서 나를 쫓고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했으며 또 내 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선을 행하는 신실한 자에게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와께서 왕을 나에게 넘겨주셨을 때에도,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왕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것처럼 여호와께서 내 생명도 소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출해 주시기 원합니다.’(삼상26:7-16) 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사무엘상24:12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상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보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다윗의 신앙을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다윗은 아무리 사울 왕이 하나님의 버림받은 왕일지라도 하나님께 그에 대한 보복 심판을 맡겼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보복은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도 해당됩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억압했던 제국(帝國)들도 하나님의 복수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나훔서 1장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니느웨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복하시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1: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을 괴롭힌 정복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나훔을 통해서 앗수르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과거 100년 전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면 그 은혜와 사랑을 간직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우상숭배와 불의를 멀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때 일을 돌아보며 회개하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오지 아니하면 진노하사 보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레19:18), 원수가 넘어질 때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16:7),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25:21-22),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원수, 우리의 대적들에 대한 보복은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를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훔 3장은 결국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한 니느웨가 B.C.612년 하나님께서 잔악한 바벨론을 도구로 삼아 철저하고 완전하게 파괴되어 멸망당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3: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니느웨가 아무리 천연적 지리 조건과 강력하고 최강의 무력을 소유(나3:3)했지라도 하나님의 보복 심판 앞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후 니느웨는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고 수 백년이 흐르면서 이곳은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쌓여 모래 언덕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현재 지명 ‘텔 쿠윤지크’) 하나님의 보복은 인간 보복의 고리를 끊고 하나님께 보복을 맡긴 자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보복을 하나님께 맡긴 자는 다윗처럼 점점 강성해는 것입니다. 인간의 보복은 두 개의 무덤만을 남기겠지만 하나님의 보복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심판으로 한 개의 무덤을 파게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끝까지 다윗을 추격했던 사울 왕은 결국 처참한 죽음으로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끊임없는 피의 보복을 막기 위해 ‘도피성’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가난한 동네이든 부자동네이든 어느 곳에서일지라도 쉽게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동네 한 가운데에 ‘도피성’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20:1-6)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찾아가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것입니다. 또한 도피성은 높이 보이는 곳에 세우도록 했습니다.(수20:7,8) 

도피성이 세워지는 곳은 전부 높은 곳, 산지였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그리로 쉽게 도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높이 보이는 곳에 도피성을 세우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셔서 도피성이 세워 진 곳이 게데스, 세겜, 헤브론, 베셀, 길르앗, 골란 등 여섯 곳입니다. 이 도피성은 모든 살인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살인을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도피성입니다. 

예를 들면, 죽일 마음 없이 사람을 밀쳤는데 넘어져 죽어버렸다던가, 함께 나무를 하고 있는데 도끼가 빠져나가서 옆 사람을 죽이게 했다든가 등 불의의 사고로 사람을 죽이게 된 자를 위한 도피성입니다. 이것은 피의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려진 조치입니다. 

(수20:2-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렇게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6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가 재판을 통해서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음이 판명되면 그 도피성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사느냐면 도피성에 거하고 있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죽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그의 과거 죄에 대해 심문하거나 보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참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도피성이 없다면 실수로 살인했을지라도 끝없이 거듭되는 피의 보복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피성은 살인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피할 수 없는 보복을 막아 참된 평화와 안식, 자유와 행복을 이끌어내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곳곳에 도피성을 두시고, 살인자의 생명을 보존하였다가 그 성의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여기 도피성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의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야만 인간이 생명을 얻고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피의 보복을 막아 그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은 인간의 보복을 막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는 도피성 안에 있는 것처럼 그 생명을 보호받으며 나아가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를 사랑하며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참된 생명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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