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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전운행 하십시오! (빌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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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운행하십시오! (빌 3:1-3)   

     
: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여러분은 교통신호등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은 빨리 가라고 빨간 등이라고, 황급히 가라고 황색 등이라고 하는데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러다가는 정말로 빨리 황급히 가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통신호를 잘 지켜야 합니다. 운전할 때뿐만 아니라, 걷을 때도 신호를 잘 지켜야 합니다. 또 신호등만 볼 것이 아니라 운전할 때는 보행자가 있는 지 없는 지 살펴야 합니다. 걸을 때도 신호등을 무시하는 난폭 운전자는 없는 지 조심하여야 합니다. 신호등은 안전을 위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통 신호뿐만 아니라 영적 신호도 잘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노란색 불이 켜지면 더욱 조심하여야 합니다. 빨간색 불이 켜지면 멈추어 서야 합니다. 초록색 불이 켜질 때만 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통신호등은 보면서도 영적 신호등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보아야 할 영적 신호등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에서 주의하여야 할 노란 불, 황색등은 무엇일까요?

I. 황색등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에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끝으로’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끝으로’는 ‘마지막으로’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제는’, ‘더 나아가서’, ‘덧붙여서’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여러 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1:18 4:4, 10). 로마의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편 중에 있던지 기뻐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1. 주 안에서 기뻐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기쁜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어려움 중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떤 형편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뻐함을 통하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니 기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라는 말을 노란색 등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게 기쁨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기는 하는데 기쁨이 없다면 노란색 등이 켜진 것입니다. 열심히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데 기쁨이 없다면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지치고 짜증스러운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은혜를 점검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기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은 자신이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을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안전을 위하여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안전이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안전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신앙 안전을 위하여 어려운 세상 풍파 속에서 든든히 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오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 안전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영적 안전을 위하여 거듭 들려지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안전을 위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텃밭에 방금 농약을 주고 돌아와서 아들이 손을 씻고 있었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방에서 기침을 콜록거리며 나왔습니다.
“예 아범아 텃밭에 농약 줄 때가 안됐냐!”
     
아들은 벌떡 일어나 방금 주고 와 씻고 있던 농약 통을 지고 나가며 말했습니다.
“예, 제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하였네요. 곧 주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제가 어떻게 하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행여 “어련히 제가 다 알아서 하려고요.”라고 하지나 않았을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핀잔이나 하지 않았을지. “가만히 앉아 계시는 것이 저를 도와주는 일이니 그냥 편안하게 계십시오.”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노인 양반이 뭘 참견 하냐!”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지는 않았겠지요?
     
청소년들이 부모님들에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이 ‘잔소리’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그 잔소리를 ‘설교’라고도 하지요. 이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설교 듣기를 싫어하는 지를 단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잔소리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금 짜증이 나더라도 들어야 합니다. 만약 말씀을 들으면서 짜증스럽다면 노란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또 하느냐는 마음이 든다면 노란불이 깜박이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는지, 마음에 기쁨이 있는지를 늘 점검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멈추어 서야 할 빨간 불, 적색등은 무엇입니다. 


II. 적색등

노란불이 켜지고 조금만 지나면 빨간불이 켜집니다. 노란불에서는 조심하면 되지만 빨간불에서는 멈추어서야 합니다. 우리들이 멈추어 서야 할 빨간색, 적색등은 무엇입니까?
     
2절 말씀입니다.
: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여기에는 ‘삼가고’, ‘삼가고’, ‘삼가라’로 ‘삼가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삼가다[ blevpw/블레포]는 ‘보다’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조심하다는 뜻이지만 조금 더 생각하자면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마라는 것입니다. 닮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빨간 등으로 여겨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절 첫 번째 구절입니다.
: 2a개들을 삼가고 
     
개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을 가리킵니다. 상징적으로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셨습니다(마 7:6).
     
1.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개는 사람들과 매우 친숙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개와 연관시켜서 표현하면 기분이 별로입니다. 아무리 개가 호강을 하는 세상이라고 하더라고 ‘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칭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오뉴월 개 팔자가 좋다고 해도 ‘개같이 살라’고 해서 기분 좋아 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개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삼가야 할 세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개들이 곧 행악하는 자들이요, 행악하는 자는 몸을 상해하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당시에 바울을 괴롭히는 유대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개 같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2절 두 번째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 2b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은 악한 일꾼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지 않고 은혜에 반대되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2. 악한 일꾼을 조심하십시오.
     
바울이 가는 곳을 따라 다니면서 훼방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었습니다. 소위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그들은 모범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외형은 순진하고 순박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기회로 자기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불순한 마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파벌을 형성하여 분란을 가져오고 시기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처음 믿는 사람에게 의심을 심어주는 사람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 일하려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하셨습니다. 악한 일들을 많이 보면서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개는 특히 사나운 개나 미친개는 조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렇다면 개와 같은 악한 일꾼은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2절 세 번째 구절입니다.
 : 2c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몸을 상해하는 사람들이란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몸을 망치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일까요? 여기서는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가리킵니다. 육체적인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어떤 부분에 문신을 새겨 넣듯이 받은 할례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주의자들이고 형식주의자들입니다.
     
3. 형식주의를 조심하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에 반드시 규칙이 필요합니다. 좋은 일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습관적인 신앙이거나 형식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면서도 부활의 감격을 누리지 못한다면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자랑하고 싶어진다면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자랑은 하고 싶은데 자랑하면 빨간 불이 켜졌다고 할까 봐서 자랑을 못하여 병이 날 지경이라면 정말로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남들은 자신을 훌륭한 신자라고 칭찬을 하는데 정작 자신에게는 평안이 없다면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진 신앙에는 형식주의만 남습니다.

우리들이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개들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빨간 불이 켜졌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에 서야 합니다.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그냥 달려가면 사고가 납니다. 제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야 할 파란 불, 녹색등은 무엇일까요?


III. 녹색불

우리들이 가라는 신호로 알고 따라야 할 녹색불은 무엇입니까?
     
3절 말씀입니다.
: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우리의 신앙은 가야할 방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빨간불을 보고 서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불을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조심하느라고 그 자리에 머물러 서있는 것은 신호등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빨간색 신호에는 서야 하지만 초록색 신호에는 가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바른 신앙의 삶을 살려면 조심할 뿐만 아니라 안내자를 따라 앞으로 열심히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안전 운행을 하겠습니까? 

3절 첫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3a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여기에서 봉사하다[latreuvw/라트류오]는 고용된 하인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것은 하인으로 고용되어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메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겠습니까?  
     
1. 성령으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에 메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배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른 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도 어느 정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과 악의 갈림길 속에서 흔들립니다. 선하고 바르게 살고 싶은 양심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악한 심성이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는 언제나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곤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양면성입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매일 천안삼거리를 서성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성령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란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양면성을 줄여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양면성을 줄여가되 하나님을 닮고 마귀의 성품을 버리는 쪽으로 간격을 좁혀 가는 것이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이끌어 가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약속의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함께 계셔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배할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 해 가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성령님! 나를 인도하옵소서!”라고 자주 자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느끼는 데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께 우리의 더 많은 것을 맡길 때 성령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가라고 신호하는 두 번째 초록 불은 무엇입니까?
     
3절 두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3b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또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2. 예수님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게 훌륭한 종교인으로 행세하려는 사람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 됩니다. 일은 우리가 하는데 드러나고 영광을 받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는데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를 들어내는 일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만큼 싸움이 됩니다. 인간의 더러운 교만과 욕심이 드러나 점점 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가룟유다처럼 오히려 마귀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봉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은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하면서도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나를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자기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여야 합니다. 교회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라고 신호하는 세 번째 초록 불은 무엇입니까?

3절 세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3c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바울은 육체에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형식주의자요, 악을 행하는 사람으로, 개와 같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육체에 행한 할례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성령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육체적인 조건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사람들의 인기에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중심에 놓는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어쩌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극복하지 안 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결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은 집요하고도 끌질지게 ‘인생의 주인은 네 자신이다’고 속삭입니다. ‘네가 최고다’고,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숨을 숨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하여 조심하고 계속하여 성령을 따라 살아가기를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날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함께 있는 곳에 악처로 소문난 그 아내가 들이닥쳤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소크라테스와 한참 이야기하다가 화가 나서 소크라테스를 물어뜯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왜 가만히 계십니까?”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같이 물어뜯으면 나도 강아지가 되지 않겠나.”
     
이번에는 그 부인이 소크라테스를 막 걷어찹니다. 그래도 가만 있자 제자들이 “어찌하여 선생님 걷어차이면서도 가만히 계십니까?” 하니 “같이 걷어차면 나도 망아지가 되지 않겠나!” 하더랍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러하였다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강아지처럼, 망아지처럼 행동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앞에는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멈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행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조심하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좋은 종교인으로 가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신호를 따라 안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끌어 예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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