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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제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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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우리는 늘 많은 것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실패와 낙심과 고난 앞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모든 실패에도 건질 것이 있습니다.  모든 고난에서도 건질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인생의 여정은 자신을 찾는 작업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은 잘될 때 자기를 찾는 것 보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자기를 찾는 것이 훨씬 더 바르게 찾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자기 사랑의 대상을 찾으러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나의 능력이 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대개 힘들다고 합니다.  어렵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 세상을 보는 사람들입니까?  저 십자가를 보고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저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누가 억울하면 저 십자가의 주님만큼 억울하겠습니까?  누가 답답하면 주님의 십자가만큼 답답하겠습니까?  누가 분하면 주님의 십자가만큼이나 분하겠습니까?  사방의 우겨 쌈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답답하고 핍박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주님보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만족하고 보다 더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한 믿음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육신의 안식을 위하여 밤을 주시는 하나님은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시련의 밤도 주십니다.  고난의 밤도 주십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우리가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그 연단은 마침내 주 안에서 기도하는 내 기도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아직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능치 못하는 일이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을 힘입고 해방된다고 하는 말, 이것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말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믿음이라고 하는 말은 일종의 해방의 감격, 해방의 자유, 해방의 은혜에 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은 하나님이 준비하고 예비하신 더 큰 세상이 있는 것을 바라보며 오늘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십시오.  지금은 힘들고 자신의 처지가 암담해 보여도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더 크고 넓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짧은 인생이 마음의 어리석음 때문에 훨씬 더 짧아집니다.  짧은 인생이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더욱 짧아지고 맙니다.  그러나 여러분, 쓸데없는 일에 열정도 다 낭비해 버리고 불평과 원망으로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감사와 고마움과 그런 것으로 살기에도 인생이 부족합니다.  이 아름다운 인생을 그렇게 불평과 원망 없이 기뻐하고 사십시오.  사랑하며 감사하고 사십시오.  무엇보다도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십시오.  주님 안에 거하는 한 절대로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려면 믿음을 가지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저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그냥 '살려고 믿는다'라고 대답을 하겠습니다.  '잘 살려고 믿는다' 라고 대답을 하겠습니다.  사는 것, 잘 사는 것이 곧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그냥 쉬운 말로 다시 풀어쓰면 아마 "예수는 살려고 믿는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잘 사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의 반대말은 못 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못 사는 것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못살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대답을 우리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힘들어 못 살겠다"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힘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힘든 일들 때문에 우리들은 늘 "못 살겠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를 못 살게 하는 것이 힘든 일이겠습니까?  힘든 일이 없으면 우리는 정말 잘 살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힘든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풀어서 다시 말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 많고 어렵다고 하여도 믿음이 있으면 잘 살게 되고, 아무리 힘든 일 없이 편하게 잘 사는 것 같아도 믿음이 없으면 결국 못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믿음만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정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습니다.  잘 살 수 있습니다.

한동대학교 총장님이신 김영길 총장님이 학교 때문에 초기에 말도 못할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의 한동대학교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을 통하여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기적 밖에는 길이 없는 길을 걸어 왔으니 그 학교를 책임진 총장이 겪은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앞이 캄캄하고 답답한 일도 수 없이 겪었지만 이런 저런 상처도 참으로 많이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김영길 총장님과 관련된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총장님이 학교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정말 이겨내기 어려울만한 상처를 받고 집에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저런 상처를 받으면 스트레스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상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총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보통 때와 똑같이 식사도 잘 하시고 밤에 아주 숙면을 하셨다고 합니다.  김영길 총장님의 사모님은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신기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제 그런 일을 당하고도 힘들지 않느냐?"

그에 대한 총장님의 대답은 참으로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명답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죽었는데 뭐?  죽은 사람이 상처 받고 화내는 것 봤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 믿음으로 김영길 총장님의 고백이 되었고 그 믿음의 고백이 그와 같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어 그를 살게 하고, 잘 살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이 "믿는다."라는 말 속에는 이런 논리적인 뉘앙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다 이해가 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와 까닭도 하나님이 우리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할 때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의미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 이유와 목적은 우리에게 선하고 유익한 것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는 고통이 됩니다.  어려움도 됩니다.  불행도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것들을 겪게 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분노하고 절망합니다.  때문에 자신을 이해시켜 달라고 합니다.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넉넉하게 만듭니다.

범죄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한계는 언제나 절망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는 인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수많은 미스터리를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교만입니다.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미스터리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몰두하지 마십시오.  내 이성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설명되어져야만 하나님을 믿거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살면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해하십시오.  그러다가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자세가 우리를 더 잘 살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자세가 우리의 내면을 보다 풍성하게 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깨닫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쓰레기 같아서 정말 버리고 싶은 일들도 나중에 보면 그러한 것들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의 크고 작은 일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고난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필연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꼭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힘든 일이 없어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든 일이 있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입니다.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오직 의인은 힘들지 않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청년 때부터 돈을 잘 벌던 어떤 장로님 한 분이 계십니다.  20대 초반부터 매일 저녁 돈을 골프 가방으로 하나씩 들고 집으로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젊은 청년이 돈을 많이 벌게 되니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보다는 세상과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맞아서 정말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큰 부도를 맞아서 자신도 부도를 내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은 다 날아가고 자신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 때는 하나님과 멀어졌지만 감옥에 갇히게 되니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세상과 짝하고 하나님을 멀리 했던 것을 철저히 뉘우치고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뉘우침과 회개가 있자 하나님은 그 장로님을 다시 풀어 주셨습니다.  다시 사업을 하게 하셨는데 다시 사업이 잘 되게 하셨습니다.  그 때는 사업이 잘 되어도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정말 믿음이 좋은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 장로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장로님, 그 때 잘 망했지요?"  그러자 그 장로님이 목사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예, 목사님. 정말 잘 망했지요.  그때 망하지 않았으면 저는 정말 망했을 겁니다."

"망하지 않았으면 망했다."는 말 속에 정말 기가 막힌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망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망하라고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꼭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아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말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무슨 말씀입니까?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핍박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위험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으시고 미워하시는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런 일들을 당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거나 잊으시거나 사랑하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알 수 없는 곤고함과 어려움 속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것은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종종 믿음이 크고 좋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저는 저와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다 이 복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을 당합니다.  믿음대로 살려고 해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당합니다.  사명을 붙잡고 산다고 해도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든 일이 절대로 여러분을 못 살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살고 못 살게 하는 것은 세상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 안에서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믿음으로 고백할 때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과 상처도 다 선이 될 것입니다.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구원이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편 62편은 힘들고 억울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힘과 지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거북이는 30살이 되면 그때부터 엄마가 되어서 사막의 뜨거운 모래밭에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약 백 알을 뜨거운 모래밭에 낳습니다.  얼마나 어둠침침합니까?  그 뜨거운 물에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묻혀 있습니다.  우겨 쌈을 당했습니다.  그 모래 속에 꽉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우겨 쌈 때문에 신성한 생명들이 어느 날 저들이 생명으로 살아서 바다를 찾아갑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모든 상급의 배후에는 인내의 삶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고난에는 건질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고난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들의 몸 가운데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보람된 일, 더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확인하고 이제부터 주 예수와 함께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정열을 쏟아 부으십시오.  저는 오늘도 우리가 이 재단에 어떤 모습으로 왔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잠기기만 하면 살 길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인간의 극한 한계상황이 언제나 하나님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고비마다 절묘한 방법으로, 삶의 절망의 순간마다 신비한 해결책으로 연약한 생명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강하게 느끼셔야 합니다.  의심 없이 느끼십시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힘들지 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지 않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고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언제 어디에서나 험한 세상을 늘 믿음으로 이겨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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